독일 유치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면
아이의 유치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비욘이라는 아이가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은 비욘이 싫다고, 자꾸 괴롭힌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선에서 대처했다. 유치원 같이 어른들이 상주하는 보호망이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끼리 갈등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비욘이 나보고 친구를 때리라고 했어.”
더 물어보니 아들이 다행히 싫다고 했단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선생님에게 당장 문제를 이야기했다. 사실 예전에 면담할 때부터 짐작은 했다. 선생님들이 비욘이 아들을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뭔가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문제제기 결과는 당장 나타났다. 선생님들도 이미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은 걸 확인한 뒤 선생님은 비욘 엄마, 마티나를 유치원으로 불러 모든 상황을 복도에서 설명했다. 유치원 안에서는 애들 사진도 함부로 못 찍는 독일에서 지나가던 학부모들이 그 모든 걸 다 들었다.
"비욘이 다른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폭력을 씁니다. "
선생님은 차분하게 마티나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사실 놀라운 건 마티나였다. 이 엄마는 대인배였다.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걸 인정했다. 게다가 마티나는 하원할 때 기다리고 있다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선생님에게 괜히 말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미안해했다.
비욘이 받은 벌은 바로 유치원판 접근금지 명령이었다. 놀이터에서 선생님이 가까이 없으면 비욘은 우리 아이에게 절대로 접근할 수 없었다. 비욘은 우리 아이와 같은 실내 공간에 둘만 있을 수도 없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이런 게 실제로 가능하다고? 그런데 정말 비욘과 아이가 따로 놀고 있었다. 한 며칠 정도 하겠지 했는데, 벌써 2주가 됐다. 오늘 유치원에 데리러 갔더니, 아이와 비욘이 같이 이야기를 하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선생님 둘이 매의 눈으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장 쇼킹했던 건 선생님의 코멘트였다. 선생님은 아들한테 비욘이 자꾸 이상하게 굴면 같이 때리라고 했다고 한다. 정확한 부위까지 가르쳐 주며 아이에게 비욘을 한대 치라고 했다고. 당시에는 너무 황당하여서 할 말이 안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는 선생님 편이었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2미터가 넘는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남자일 가능성은 여자가 전투기 조종사일 비율보다 낮다는데, 우리 반 담임 선생님들은 둘 다 남자다!)
금쪽이 잘못은 부모 잘못이라는데 이 경우는 진짜 모르겠다. 비욘의 엄마 마티나는 정말 모범생 같은 삶을 산다. 유치원이 속한 사회 재단 사무실에서 근무해서 통창으로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거의 실시간으로 본다. 3시 조금 넘으면 퇴근해서 아이와 보낼 시간도 충분하다. 직업상 아이 발달에 대한 지식도 엄청나다. 몇 살 때 무엇이 발달해야 하는지, 아이 성장의 이론적 기틀이 탄탄하다. 심지어 가족들도 가까이 살아서 육아 부담이 크지도 않다. 남편은 돈 잘 버는 엔지니어다. 이런 완벽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어쩌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게다가 마티나는 소위 사회취약계층 가정의 문제아들을 상담하며 돕는 일을 한다. 내가 마티나라면 솔직히 자괴감을 많이 느낄 거 같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건 정말 오은영 박사 아들이 금쪽이인 경우다.
진짜 너무 궁금해서 아동 발달 연구를 찾아봤다. 아이가 힘을 과시하려는 행동은 성장 과정의 일부이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유치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종종 권력을 실험해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며, 초등학교에 가면 대부분 사라진다고 한다. 근데 비욘과 우리 아들이 이번에 같은 초등학교를 지원했다는 게 복병이긴 하다.
물론, 6살짜리의 인생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싶진 않다. 당연히 어딘가에는 어른들의 욕망, 기대, 통제의 결과가 만든 알고 보면 참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이 "복잡한 이야기"에 무리하게 엮이는지 잘 지켜보는 것뿐이다. 나는 대인배가 아니라서. 내 아들을 괴롭히고, 다른 아이를 때리라고 강요했던 비욘을 솔직히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유연하다. 어제의 문제아가 오늘의 모범생이 되며, 어제 싸운 아이과 오늘은 웃으며 놀 것임을 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부모 아래서도 이렇게 문제가 생기니 육아의 정답이란 건 정말 없는 것 같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우리 아들도 언젠가는 엄청 내 속을 썩이게 될 것임을 인정한다.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자식이구나라는 만고의 진리를 오늘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