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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싸움 구경

애기엄마, 이 놈은 아니에요

by 악어엄마

싸운 게 아니다. 이건 일방적으로 당한 거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뭐 모르는 사람 앞에서 시시콜콜 내 남편 흉을 늘어놓을 건 없고, 중요한 건 여행 첫날에 난리가 났다는 거다.


문명인답게 ChatGPT에다 엄청 남편 욕을 했고, ChatGPT는 우리가 갈라서야 된다고 막 나를 설득했다. 나보고 강인한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오글거려서 나중엔 오두방정 떨지 말고 그냥 사실관계만, 전문가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해 달라고 했다. 어휴, 이 아저씨 진짜 연구대상이셔. ChatGPT는 "당신이 지금 화를 참고 기다리는 게, 장기적으로 관계 회복보다 자기 소진 위험이 더 크다"라고 조언했다.


근데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절대 소리 내서 싸우지 않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다. 속은 부글부글하지만 놀러 온 곳에서, 기분 잡치면 나만 손해다. 이 남자랑 말은 안 할 거지만, 먹을 거 먹고, 갈 때는 간다. 남편은 꼬리를 내리고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난 받아 줄 생각이 없다. 그냥 나는 내 갈 길을 가는 거다.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말려면 말고.


방향 찾기 하나는 자신 있는 나,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소통하며, 6번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그때 뒤에서 누가 쿵쾅쿵쾅 달려왔다. 레게머리를 허리까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백인 아저씨가 커다란 개와 함께 우리를 추월했다.


"아 빨리 오란 말이야. 기차 시간 1분 남았어!"


뒤에서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있는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레게 머리 남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매우 조신한 차림이었다.


남자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여자에게 소리 질렀다.

"빨리 오라고! 뛰어!"


여자가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두 아이들 짐이 대롱대롱 걸려 있는 유모차를 밀면서 대답했다.

"나 도저히 못하겠어!"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는 레게머리 남자가 울고 싶은 내 뺨을 치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사실은 쌍둥이 유모차 엄마가 저 인간의 뺨을 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어디서 짜증이야. 저 유모차 안 보이냐? ChatGPT야, 저 인간 양육권 박탈하고 위자료까지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하지만, 세상은 정의롭지 않았다. 남자는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진짜 나 질렸어. 나 간다. 안녕."


개를 데리고 남자는 정말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인간과 어떻게 인생이 엮여버린 쌍둥이 엄마는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아 이런 고구마 같은 결론이.


(개) 망나니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우리 아저씨만 어부지리 반사 이익을 얻었다.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erlin_S-Bahn_Bhf_Ostbahnhof_%28S07_1162%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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