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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엄마, 독일 초등학교

치킨 바나나

by 악어엄마

입학식 날 아침, 시계는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8시 10분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이는 여전히 빵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다. 첫날이라 챙겨야 할 것도, 신경 쓸 것도 많았다. 독일 전통에 따라 선물과 사탕, 과자가 가득 담긴 고깔(Schultuete)을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 키만 한 고깔은 어느새 내 몫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작은 핸드백을 꺼내 들고, 꾸민 듯 안 꾸민 듯 갈색 운동화를 신었다. 이 동네에서는 과하게 꾸미는 것도 어색하다.


학교는 다행히 멀지 않았다. 종종걸음으로 강당에 도착했다. 몬테소리 초등학교라 1학년은 한 반에 다섯 명씩만 배정된다. 총 12반이고, 입학식도 두 번에 나눠서 진행되었다. 학부모 총회가 있던 5월, 나는 한국에 있었고 학교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학부모와 학교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학교 사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입학까지 3개월이나 남았는데, 나는 벌써 ‘협조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한국 체류 중이라고 답장했더니,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 들르라는 회신이 왔다.



유치원에서 내 아이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모두 같은 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서류를 확인하니, 내 아이만 다른 반으로 배정되고 나머지 세 명은 같은 반이었다. 12반 중 세 아이가 한 반인 것도 이상했지만, 왜 우리 아이만 빠졌을까.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사회 교육 전문가(Sozialpädagogin)가 반 배정을 결정했다며 자신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독일은 초등학교 4년 내내 같은 반에서 지내야 한다. 유치원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아들이 괜찮을까. 하지만 아이는 원래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성격이었다. 오히려 같은 아이들만 만나는 것보다, 다양한 친구와 어울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드디어 입학식 날, 4년간 함께할 반 친구들이 공개되었다. 아이들은 30분간 첫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부모를 향해 달려왔다. 나도 다른 학부모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구성원들을 살폈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그중 한 커플은 배불뚝이 독일인 할아버지와 젊은 태국인 엄마였다.


"이건 우리가 무슨 사회 실험 대상인가?"


나는 불경스러운 눈초리로 엄마들과 아이들의 파운데이션 호수를 스캔했다. 흠. 이 그룹, 평균이 23호보다 높다. 특히 여름 내내 밖에서 놀았던 아들은 이발을 하니 앞머리가 가렸던 이마와 얼굴의 경계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까매져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다. 모든 게 인종차별은 아니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 아이들을 보라. 30분 전에 처음 만났는데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술래잡기하고 있지 않은가. 더 웃긴 건 애들 5명 모두가 독일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외모가 다른 독일인 아이들이었다.


폴란드 이민 2세대인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자기가 더 흥분했다. "자기 때부터 바뀐 게 없다"면서. 아마도 이민 가정으로 분류되어 지원(Förderung)이 필요하다고 관리하기 쉽게 한 반으로 몰아놓은 것 같다고 뇌피셜을 풀었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이민자 출신이면 아이는 '이민 가정 출신'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게다가 왜 또 우리 반 이름은 거북이반이냐고. 이민가족 출신이 아닌 다른 유치원 친구들은 상어반에 들어갔다. 우리 아들 안 느려요. 5살 때부터 곱셈 나눗셈 다 했는데, 한 번 보여드려요? 멍청하고 지겨운 세상의 편견이랑 진짜로 본격적으로 싸워야 되는 거야? 아, 그냥 우연일 수도 있는데. 나 또 오버하는 거니. 왜 난 별거 가지고 다 불안한 걸까.


등교 이틀째, 미안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아들을 학교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입구에서 서로를 발견한 거북이반 아이들은 얼굴을 보자마자 깔깔거린다.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들과 "치킨 바나나"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며 교실로 잔망스러운 춤을 추며 들어갔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chultuet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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