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날의 영수증

득템

by 악어엄마

수선화가 핀 3월의 첫 일요일, 이런 날씨에 집에 있는 것은 반칙이다.


남편은 집에 먹을 게 없다고 투정을 한다. 냉장고에 먹을 거 많잖아! 아니 그거 말고 "맛있는 거 말이야". 단 거 좋아하면서 다이어트한다는 말은 왜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주말 근무를 마치고 와서 오늘은 하루 종일 자라고 했다. 오늘은 아들이랑 둘만의 외출이다.


독일에서 일요일에 장을 보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공항 슈퍼마켓이다. 물건 종류도 다양하고 다 좋은데, 날씨 좋은 날 캐리어 끌고 놀러 가는 사람들을 보면 좀 부러울 거 같다. 둘째는 일요일에도 가게가 문을 여는 옆 나라 네덜란드로 가는 거다. 기차로 가면 집에서 나와 걷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 오십 분이다. 영화 한 편 볼 시간이면 해외여행(?)이 가능하다. 애가 심심해할까 봐 종이접기 종이를 챙겨 나왔다.


기차 안에서 아이는 창밖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나는 가끔 시간을 확인한다. 엄마는 한 달에 2.99유로짜리 가장 싼 핸드폰 요금제를 선택하기 때문에 엄마 전화에서 영상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아이는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조곤조곤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기는 니키타와 놀고 싶은데 무하마드가 자기랑 같이 안 놀면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고민이란다. 니키타는 러시아계, 무하마드는 중동계 아이다. 야, 너 얼마 전에 무하마드랑 비 오는 날 지렁이 구해주면서 진짜 재밌게 놀았다고 했잖아. 엄마 근데, 니키타는 나랑 마음이 똑같아. 하고 싶은 게 똑같다고.


네덜란드에 도착하자 아이가 직행하는 곳은 바로 장난감 가게다. 요즘 형들이랑 놀더니 마인크래프트에 빠져 버렸다. 닌텐도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사주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마인크래프트 레고를 가지고 싶어 한다. 레고 엄청 비싸다. 차라리 게임을 해라 아들아! 한글 책 한 권을 혼자 읽으면 1유로씩 적립해서 레고를 사주기로 했다. 벌써 2번째 삥을 뜯기는 중이다. 그렇지만 세일 안 하는 건 절대 사주지 않는다고 공언을 했다. 20분쯤 찬찬히 들여보더니 드디어 레고 하나를 골랐다. 벚꽃 나무가 들어있는 게 딱 봄스럽다.


사람들이 거리에 하도 많아서 마스 강 쪽으로 빠져서 시장을 찾아갔다. 네덜란드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쨍한 색감을 보며 안구정화를 한다. 1년 만에 왔는데 이 동네 왜 이리 좋아졌냐? 아니 여기는 도로가 왜 이리 깨끗한 건데? 주차장에는 독일 번호판을 단 차들이 가득하다. 아이랑 네덜란드 번호판 찾기 놀이를 한다. 딱 2대 발견했다.


남편이 네덜란드 가는 길에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 좀 사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정말 종류가 다양했던 우리 단골 수제 맥주 가게는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그래서 대신 국경을 넘는 독일사람들의 무수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형할인점으로 간다. 네덜란드 왕실 사진이 입구부터 걸려 있다. 역시 여기는 커피가 싸다. 살까 말까 하다가 집에 있는 것부터 먹자고 내려놓는다.


쇼핑카트를 아이와 같이 모는 건 사람 많은 곳에서는 거의 고역이다. 아이는 장난치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엄마는 요즘 살쪘는데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시아 코너가 눈에 띄게 커졌다. 없는 게 없다. 가격은 더 놀랍다. 독일 한인마트보다 싸다. 모구모구는 한국 편의점에서 처음 사본 음료수인데 몸에는 별로겠지만 나름대로 추억의 맛이라 아이에게 가끔 사준다. 저번에 먹어보고 아이가 너무 좋아했던 튀김우동 컵라면도 하나 넣는다. 떡국 해달라는 말에 떡도 담는다.


벨기에 맥주 세 병, 왜 이렇게 싸? 이게 2.19유로? 터키식 피자 라마춘 다섯장에 4.99유로, 아이가 직접 고른 치즈 3.38유로. 더 사고 싶지만, 욕심부리지 말자고 다짐한다. 또 오면 됩니다. 흥분하지 마세요. 막 구운 체리 파이가 세일해서 2유로. 일본 카레가 2.39유로? 태국 카레는 0.69유로? 어쩌다 보니 내 장바구니에는 한국 / 일본 / 태국 / 터키 / 벨기에 / 네덜란드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득템! 득템!


계속 아이에게 배 안 고프냐고 묻는다. 여기 생선 튀김 유명해, 안 먹을래? 싫어. 여기 저번에 갔던 햄버거집, 너 여기 밀크 셰이크 좋아했잖아. 싫어. 그러던 아이가 기차 시간이 딱 30분 남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한다. 유명한 감자튀김 가게들을 지나 역 앞의 평범한 가게로 들어간다. 국경도시라 독일어가 보통 통하는데 네덜란드어로 대답해 주길래 영어로 주문한다. 큰 사이즈 4유로, 독일과는 달리 당연히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아이는 감자튀김을 사테소스를 찍어 먹으며 맛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이야기를 해 준다. 식민지의 맛이 어떻게 길거리 간식에 녹아들은 건지 주절주절 설명하며 나도 맛있게 감자튀김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란 국기를 몸에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기차에서 쏟아졌다. 다들 웃고 떠들며 축하말을 건넸다. 전광판 한쪽에서는 이란 전쟁 뉴스가 흘렀다. 이건 6개국의 음식이 들어 있는 내 장바구니 영수증에는 안 쓰여 있는 비용 같은 거다. 집에 다 왔다. 저녁에는 간단하게 "얄라"표 라마춘이나 구워 먹자.


오늘도 사람들은 산책을 하고, 미사일이 수업 중이던 초등학교를 폭격한 뉴스를 읽고, 놀이터에서 싸우고, 독재자의 죽음을 축하하고, 세일 스티커를 확인했다. 봄날 일요일 노을은 무관심하게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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