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영장, 비밀의 레인이 열렸다

수영장에서 개헤엄 치는 부모들

by 악어엄마

수영 강좌 접수 오픈 시간이 오후 4시,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독일 시립 수영 수업 자리를 잡는 건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이랑 비슷하다. 노트북을 켜고 로그인 상태를 확인하고, 비밀번호 자동 입력이 제대로 되는지 한 번 더 눌러보고, 카드 결제 창이 뜨면 바로 넘어가도록 브라우저 탭을 두 개 띄워놓는다. 알람이 울리자 나는 거침없다. 월, 목 4시 수업을 선택한다.


총 32자리, 이 도시 남쪽에 사는 그 많은 초등 1학년 아이들에게 할당된 숫자다.


결제창으로 넘어갔다. 12번 수업에 총 140유로를 내면 된다. 완료 메일이 도착했다. 만세를 불렀다. 1년 동안 그 강좌 등록을 노렸다는 다른 엄마들이 도대체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쑥스럽다. 수능 만점 인터뷰 당하는 기분이다. 독일 초등 2학년 필수 과목인 수영을 잘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건 수영 강좌 접수 버튼이 열리는 시간을 기억하고 잽싸게 카드 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부모다.



아이를 탈의실 문 앞에 내려놓고 보내면, 나에게 정확히 45분이 생긴다. 당장 움직여야 한다. 동선은 거의 고정돼 있다. 수영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REWE 슈퍼가 있다. 오후 4시경, 이미 퇴근한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셀프 계산대로 갈 것인가 아닌가를 빠르게 결정한다. 지금 사람 많으니, 욕심부리면 안 된다. 비비고 김치 만두를 하나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뮐러 바나나우유를 하나 고른다. 요즘은 술을 거의 안 마시지만, Jever Fun 알코올 프리 맥주를 집어 든다. 맛 때문이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반복되는 이 동선 안에서 변하지 않는 물건이 하나쯤 있는 게 좋다.


수영장으로 돌아오면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이다. 수영장 입구 통창으로 아이들의 수업을 보는 사람들도 항상 네 명이다. 어린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오느라 자동문 센서 앞에서 한 번씩 막히는 아랍 엄마는, 유모차에 걸린 가방만 세 개다. 인도 아저씨는 항상 같은 회색 후드티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통창이 뚫어져라 수영 수업을 지켜본다. 언제나 통곡을 하며 수업에 들어가는 오스카의 엄마는 늘 색깔 쨍한 비니 모자를 쓰고, 들어갈 때 아이를 안고 달래다가 나올 때는 가장 늦게 나온다. 그리고 나. 장을 본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 피곤하다는 걸 광고하면서 철퍼덕 앉는다. 우리는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지만, 서로의 시간을 잘 알고 있었다.


수영 강좌가 다 끝나기 2주 전, 말은 인도 아저씨가 먼저 걸었다.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아랍 엄마도, 독일 엄마도, 나도 영어로 받았다. 역시 국제 도시답게 다들 영어를 잘한다. 학교 이야기가 나오고,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인도 아저씨 아들이 수학을 너무 쉬워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유전인 것 같다고, 아시아 유전인 거 같다면서 깔깔 웃는다.


얼마 전 담임 선생님과 월반 상담했던 걸 말할까 하다가 왠지 과한 것 같아 가만 있었다. 대신 몬테소리 학교라서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각자 다른 걸 한다고 말했다. 학년이 섞여 있어서 읽기를 먼저 하는 애도 있고, 수학을 먼저 하는 애도 있다고. 자식 자랑은 밖에서 하는 거 아닌데, 인도 아저씨가 판을 깔기 시작한다. 우리는 웃으면서 조금씩 판에 올라간다. 일곱 살인데 곱하기 나누기를 다 한다는 말이 나오고, 나는 3학년부터 출전할 수 있는 캥거루 수학 경시대회 이야기를 했다. 인도 아저씨의 큰 눈이 좌우로 돌아가면서 반짝였다.



그리고 어제, 인도 아저씨는 장바구니를 들고 수영장에 들어온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하우 아 유"라고 인사했다. 아저씨는 이미 그 수학 경시대회 문제들을 프린트해서 아이에게 풀려봤다고 했다. 프린트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들고 있었는데, 문제 위에 연필로 체크가 되어 있었다. 열 문제 중 여덟 개를 맞혔다고, 생각보다 잘하더라고. 그리고 자기 아들네 학교는 그 경시 대회에 참여를 안 하는데, 참여하도록 건의할 생각이라고 했다. 말하면서 눈이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교육 정보가 이렇게 신속하게 실행으로 넘어가는 걸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는 아직 경시대회 문제를 풀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캥거루 수학 경시대회는 계산이 문제가 아니라 문해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동의했다. "맞아요, 지금부터 읽기를 더 시켜야겠어요."


이야기가 계속되자 나는 계속 조금씩 부끄러웠다. 아쒸, 아저씨 말대로 아시아 유전인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너무 술술 나왔다. 우리 애 이야기를 꺼내고, 읽기 수준을 말하고, 학교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었다. 머리만 내놓고 개헤엄을 치며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고, 서로를 이기려는 표정도 아니었지만, 누가 더 빨리 정보를 이해하고 다음 단계로 옮기는지는 분명하게 보였다. 수영장 바닥에 붙어 있는 레인 표시처럼, 각자의 속도가 있었다. 수영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그 10분 동안, 우리는 독일에선 전혀 안 할 것 같던 이야기를 영어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나온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수건을 바닥에 끌고 오는 울 아들이 뛰어온다. 아이에게 바나나우유를 건네줬다. 방금 전까지 수학 경시대회와 리딩 능력 이야기를 하던 부모들이 각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물에서 나온 건 아이들이지만, 다들 레인에서 한참을 헤엄치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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