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술작품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좋아했어요)
대구에 살고 있을 때에도 서울에 유명한 전시회가 열리면 당일치기로 ktx 타고 올라와서 전시 보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곤 했었죠.
대구에서도 유명 전시회는 항상 다녀왔고, 동성로 갤러리도 종종 들러서 작품도 보고.... 20대에 돌이켜보면 정말 한 일이 많았는데요...ㅡㅡ;; 그중에 한 부분이 전시회였네요. 미술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고, 볼 줄도 몰라요. 그 느낌이 좋아서 마구마구 보러 다녔네요. 전시회에 간다는 것. 세상 하나밖에 없다는 것. 어떤 생각으로, 어떤 환경에서 이 작품을 그렸을까 생각하면 벅차오르는 그 마음을 느끼고 싶어 전시회에 또 가고 또 가고...
특히나 전 피카소를 좋아했어요. 대학교 다닐 때 한 학기 마지막 리포트를 입체주의의 변천사로 피카소 포함해서 싹 다 조사해서 발표한 적도 있었을 만큼요. 유럽여행 가서도 피카소를 많이도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시회는 저랑 오래도록 바이바이 하게 됩니다. 생각할 틈도 없었죠.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아이들이 좀 컸고요. 이제 여유가 좀 납니다.
피카소 전이 있다는 얘길 듣게 됩니다. 전시는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이제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난 아직 가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가도록 전 아직 전시회도 안 가고 뭘 했나요. 사실 '피카소전'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아이들에게 엄마랑 같이 피카소 보러 가자고 주구장창 설득했죠.
엄마가 좋아하는 작품이 한국에 왔으니 함께 감상하러 가자고요.
애들은 얼리버드 4월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say no를 외칩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동기부여가 되라고 피카소의 생애, 피카소의 작품 등등을 유튜브로 보여주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결같이 say no에요.
그러다 어제가 됐어요.
사실 며칠 전부터 좀 우울했어요.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저녁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고요.
그 사이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싸우는 아이들 말리고...
'내가 이러려고....'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또 그 생각 했다고 더 우울해졌죠.
그 우울을 견디지 못할 상황이 된 거죠.
'아... 내가 이러다가 결국은 아이들만 보고 있다가 피카소전도 놓치겠구나.. 유럽 미술관에 가서도 출장(?) 중인 작품이 많아서 제대로 못 본 작품도 많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전시회 갔다 올 동안 충분히 집에 있을 만큼 컸는데 왜 이 아이들을 놓지 않고 있느냐.'
'내가 아무리 좋다고 얘기한 들 아이들에게 피카소는 피카소가 아니야.'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더 이상 아이들이 가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늘만은 내가 피카소전을 꼭 가야겠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은 나의 빈자리를 느끼고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하겠지..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바로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에게 확인합니다.
"엄마 지금 피카소전 갈 건데 같이 갈래?"
정말 듣기 싫어요. no라는 대답. 역시나 대답은 no였어요. 잘 다녀오라고 인사까지 합니다.
뒤도 보지 않고 바로 집을 나와 예술의 전당으로 갑니다. 예술의 전당까지 20분 걸립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을 난 이렇게도 오래 걸려서 갑니다. 대구에서도 예술의 전당을 갔는데. 그때보다 오늘이 더 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0대 때 봤던 피카소 작품과 막 40대가 되어 보는 피카소 작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처럼
다른 눈빛으로 다른 시각으로 다른 마음으로 작품을 들여다봅니다.
그때는 피카소의 눈으로만 작품을 봤다면 이제는 여인의 눈으로도 피카소를 들여다봅니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던 동판화 작품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도자기 작품은 입체주의를 입체로 만나보니 더욱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는 피카소 작품들.
솔직히 아이들을 안 데리고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only 저를 위해서요.
충분히 행복했고, 고요했고요, 저를 잡고 흔들고 있었던 우울감을 많이 떨쳐낼 수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갇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너무도 참고 있었나 봅니다.
아이들에게서 잠시 멀어져 혼자 그렇게 원했던 것을 하니 절로 우울감이 스르륵 내려갔나 봅니다.
왜 까꿍이와 나꿍이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왜 보여주고 싶었을지.
나의 욕심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 아이들은 피카소를 잘 모릅니다.
저처럼 피카소에 대해서 파헤친 적도 없었고요.
제대로 된 전시회를 데리고 간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오랜만에 전시회를 간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그 경험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전시회를 가자고 강요했으니 아이들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왜 데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이제껏 전시회 다운 전시회를 데리고 가지 않았으니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던 겁니다.
전시회라는 곳이 이런 곳이고,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림으로 보는 작품과 실제로 보는 작품은 정말 너무도 큰 차이가 나니까요.
아이들도 저와 같은 감동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어요.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만 경험하게 하는 것 vs 엄마가 억지로 유도해서라도 경험시켜주는 것
이제껏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아이를 키우는 기준을 잡아준 것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오늘과 같은 피카소전이었겠지요.
요즘은 그 경험을 어떻게 시켜줄 것인지에 대해, 그 경험을 과연 엄마가 '억지로' 유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또,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하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세상,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을 때, 선행 교육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아이들의 호불호가 아주 선명해집니다. 본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시도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성향인 것인지, 이때의 아이들의 성향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는 요즘 저를 가장 머리 아프게 만드는 큰 숙제거리입니다. 막상 해보면 "엄마~ 너무 재미있어요!" 하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시도하기조차 싫어하고, 그것을 위해 외출하기 싫어합니다.
휴... 아무튼....
이제는 전시회에 관해서는 강요하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했습니다.
또
라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윌리엄 웨그만 전시도 진행 중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전시회를 보여주겠다는 것을 포기는 하지 않았어요.
일단 아이들에게 홈페이지 보여주고 갈지 안 갈지 물어는 보겠습니다.
강요하지 않게요. 말하다가 화는 날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ps
전시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뭐 하냐고, 배고프지 않냐고, 엄마가 없으니 어떻냐고.
아이들은 저의 전화를 기다릴 줄 알았는데
왜 벌써 전화했냐고 합니다 ;;;;;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있어서 좋았다고 하네요.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들도 자신들만의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왠지 씁쓸하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