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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Sep 30. 2024

삶과 죽음 vs 달리기

난 2번 주자였다. 그날 그곳에 서 있을 실력이 과연 있을까 나에게 수도 없이 되뇌었던 그 순간이었다. 어차피 그곳에 왔고, 이왕 하기로 했던 거. 나의 실력이 되든말든 최선을 다해보자고 나에게 끝없이 말했던 그 순간.


얼마나 나에게 잘해보자고 되뇌었을까. 아까부터 올 것 같던 1번 주자가 오지 않는다. 우리 1번 주자보다 뒤에 있던 사람들도 이미 들어와서 2번 주자가 출발했는데 우리 1번 주자는 왜 안 오는 거지. 3번, 4번 주자와 이젠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올 사람이 오지 않으면 처음에는 궁금증이 먼저, 그다음 조바심이 따라오고 그마저 지나가버리면 걱정이 온다. 이 사람 왜 안 오는 건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그때 행사진행자가 내 배번을 부른다. 급하게 3,4번 주자와 그분께 간다. 



  1번 주자분 800미터 놔두고 쓰러지셨어요. 엠뷸런스 타고 병원에 실려가셨어요.


네????
23위에서 13위까지 제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왔는데요? 
그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텐데.. 확실한가요?


차가운 말이 들려왔다. 


배턴이 2번 주자께로 직접 전달이 되어야 경기진행이 되는데 실격처리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배턴 없이 그냥 뛰시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이 상황에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달리기를 위해 먼 곳을 왔다. 1박 2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왔는데 갑자기 온 이유가 사라졌다. 그 순간 우리가 선택한 것은 러닝포기. 30도 가까운 곳에서 한낮에 달리기를 하다 쓰러졌는데 오늘의 달리기가 무슨 대수라고. 1번 주자의 상황이 어떤지, 어떤 병원으로 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달리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새벽 3시부터 달리기를 위해 그곳을 달려갔고, 오전 내내 대기했는데 이 무슨 일인지...



그날 오후 1번 주자는 깨어났다. 회복되었다. 



남은 것은 그곳에 아직도 달리기 하지 않은 '나'만 남았다. 난 무엇을 하러 그곳을 갔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자책한다.

'그 사람 죽을뻔했는데 넌 달리기 타령이냐.'

또 다른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사람 이제 회복됐다며. 넌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얘길 들었냐. 미안하다는 얘길 들었냐. 무엇을 위해 넌 희생한 건가?'


물론 다음에도 그 상황이 되면 이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기는 다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아주 많다. 그 사람의 생사는 한순간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종일 난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저께 그 일이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계속 좋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사과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잘못된 것인 것 같지만

사과받지 못함.
나의 배려(?)를 인정받지 못함.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생사를 오간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얘기하라고 하는 것도 웃긴 이야기.


난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좀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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