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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Oct 21. 2021

오키나와 백수3

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오늘도 역시 똑같은 루틴으로 8시 30분쯤 간신히 눈을 떠서 호텔 조식을 먹고 올라와서 ‘Do not disturb!’ 팻말을 걸고 다시 한 두 시간 더 잤다. 어제는 여행하는 맛을 제대로 느낀 첫날이라 그런지 너무 신나서 자기 전에 호텔에서 맥주를 꽤 마셨더니 눈뜨기가 좀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에너지를 비축하려면 조식을 먹어야 했다. 오늘은 국제거리를 많이 걸을 예정이니 고칼로리가 필요했으니... 어제와 비슷하게 접시를 채우고 당연히 돈지루도 한 그릇 떠서 든든하게 먹었다. 샤워를 하고 간단한 준비를 한 후에 호텔 방을 나설 때면 한참 열심히 청소를 하던 룸메이드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뻘줌하지만 며칠 후면 적응되겠지 싶어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휙 지나쳐간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국제거리의 끝자락. 딱 좋아하는 한적한 일본 도로 느낌. 초입이나 중간보다 한적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오늘 일정은 국제거리 뚜벅이 투어. 뭐 항상 뚜벅이지만 오늘은 대놓고 많이 걷는 날이라서 뚜벅이 투어. 류보백화점 대각으로 맞은편부터 시작하는 국제거리를 일단 역순으로 내려오며 구경하려고 걸어 올라갔다. 오키나와 여행을 가면 무조건 한 번은 간다는 돈키호테를 지나서 마키시 공설시장 까지 가서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대략 2/3정도 해당하는 지점이라 쉬어가기 좋은 포인트. 마키시 공설시장 앞에 서서 사거리 대각에 위치한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있는데, 날이 맑은 날 그 사거리를 이 위치에서 딱 보고 있으면 왠지 이국적이라 너무 좋아하는 풍경이다. 파란 하늘과 야자수가 규칙적으로 심어진 깔끔한 사거리 그리고 한쪽에 스타벅스 로고, 맞은편엔 오키나와의 부엌이이라 불리는 공설시장. 일본의 남국 혹은 일본의 하와이라는 말을 정말 기가 막히게 수식하는 건 이 풍경이라 생각했다. 오키나와의 식재료 향이 풍기는 자리에서 보이는 거리와 스타벅스의 간판.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하고 싶었지만 참고 일단 더 걸었다. 유이레일 마키시역을 지나서 좀 더 걸으면 국제거리의 끝에 닿는다. 거기서부터 카메라를 들고 역순으로 구경을 하며 내려왔다. 이땐 니콘 D80을 쓸 때였는데, 요즘 쓰는 미러리스와 비교해 보면 어떻게 그걸 들고 오키나와를 15일간 누볐나 싶어서 내 손목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ㅎㅎㅎㅎ.  오키나와에 오기 전까지 일했던 회사가 옥외광고를 다뤘던 전문지라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국제거리를 구경하면서 제일 많이 본건 간판이었다. 지금이야 핫 플레이스도 많고 그래서 서울의 간판이 대체적으로 예쁘지만 그 당시엔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했던 시절이라 국제거리의 간판은 정말 신선했다. 하긴 여행을 간 기분에 뭘 봐도 안 예뻤겠냐만은... 


마키시역 앞 광장 분수대에 있던 시사 조형물과 근처 골목 가게에서 발견한 슈퍼맨시사. 근엄함과 발랄함이 같은 공존하는 공간이라니. ㅎㅎㅎㅎ.


국제거리를 구경하며 걸으면서 재미있는 간판과 익스테리어, 조형물을 계속해서 카메라로 기록했다. 시사를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재미있게 활용하는 게 좋았다. 오키나와에서 액을 막는 사자상인 시사는 주로 지붕이나 기둥에 올리는데, 전통적인 수호신을 재밌고 발랄하게 활용하는 게 재밌었다. 특히 마키시역 근처에서 발견한 가게의 외부에 붙은 슈퍼맨 시사는 그야말로 시선 강탈이었다. 간판의 가독성은 결국 시선 강탈 전쟁이니까. 그나마 남쪽으로 튀어 1권을 거의 다 읽고 온 다음이라 한눈에 시사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녁에 호텔에 와서 와이파이 접속 후 검색을 해야 했을 지도... 2011년엔 포켓와이파이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통신은 호텔에 가야 가능했다. 카톡으로 친구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도, 무언가를 검색해 보는 것도. 사실상 디지로그 여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15일간 어떻게 했나 싶다. ㅎㅎㅎㅎ.


중간쯤 내려왔을 때 너무 배가 고파서 무슨 가게 인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들어갔다. 면 요리를 하는 곳 이었는데, 메뉴를 아무리 찾아봐도 라멘은 보이지 않아서 말도 안 통하는데 물어볼 수는 없으니 사진을 가르키며 손을 대고 주문을 했다. 오징어먹물로 볶아낸 야키소바 같은 거였는데, 맛있어서 만족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와이파이 접속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다시 한번 느낀 IT 강국 코리아. 카톡으로 친구들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아쉬웠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은 진짜 활어회 같은 거라서 바로 공유하지 않으면 왠지 선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라...


국제거리 초입에 도착했고, 첫날 밤에 비몽사몽으로 봤던 기념품점 측면 네온사인을 봤다. 오사카 글리코네온 만큼은 아니지만 왠지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또 한 컷.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국제거리를 걸었다.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간판, 익스테리어, 골목 풍경. 그래도 역시 골목 구경은 재밌으니까, 계속 걸으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처음 출발했던 국제거리 초입에 도착했고, 첫날 밤에 비몽사몽으로 봤던 기념품점 측면 네온사인을 봤다. 오사카 글리코네온 만큼은 아니지만 왠지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또 한 컷. 돼지를 캐릭터로 표현한 것도 귀엽고 해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로비에 앉아 와이파이를 접속하고 카톡으로 국제거리 풍경을 몇 컷 보냈다. 한참 카톡으로 수다를 떨다가 저녁거리를 사려고 호텔 근처 편의점에 갔다. 벤또와 감자칩, 오리온 삐루를 샀다. 15일간 정말 한국에 없는 맥주 원 없이 마시고 가자 싶어서 매일 매일 최대한 국내에 수입 안 되는 라인업으로 샀는데, 그래도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건 오리온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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