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티아 스피어스 브라운,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정희진은 그의 저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는 인류 역사 전반을 지배해 온 전제였을 뿐 아니라 그간의 언어와 사유 체계가 만들어지는 데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이분법, 짝의 논리가 그것이다. 이분법은 반반으로 분리된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이다. 우리가 흔히 '남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미국 중심적, 서울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논리는, 말하는 주체와 그에 의해 규정된 대상의 존재를 전제한다.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를 규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이다. 즉 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양성이 이렇듯 인간 구성을 설명할 수 없는 구분법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성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양육하려고 한다. 남자아이는 남자답게 여자아이는 여자답게 말이다. 심지어 지인이 출산하면 선물할 내복도 남자아이는 블루, 여자아이는 핑크로 고른다.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의 저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은 인간의 범주화 능력으로 만들어진 체계이고 실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남성들간의 차이, 여성들간의 차이보다 크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젠더 차이를 다룬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실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밝혀낸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우울증에 관한 젠더 차이를 설명하는 연구를 소개한 부분이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의 벤저민 행킨 교수와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린 에이브럼슨 교수는 우울증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찾아냈다. 이들에 따르면 우울증에서 젠더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여자아이들은 머릿속으로 그 사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생할 가능성이 남자아이들보다 높다. '반추'라고 불리는 이러한 사고 과정은 CD 플레이어가 똑같은 트랙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도록 프로그래밍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반복 재생되는 사건이 부정적인 경우에,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사건을 반추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된다."
왜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반추'하는 경향이 강한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여자아이들이 부정적인 상황을 경험했을 때 남자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되는 압력이 더 크기 때문은 아닐까. 타인에게 불만이나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그것을 숨기도록 요구 받았기때문에 말이다. 여자아이들이 태생적으로 우울증에 더 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가 우울증에 더 잘 걸리게끔 조장된 것이다.
나도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을 겪으면 몇번이고 그 상황을 곱씹는다. 그 당시 내가 한 말, 상대방이 한 말을 복기한다. 내가 지었던 표정이나 말투에서 꼬투리 잡힐 만한 것은 없었는지 점검한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반복해서 생각하고도 부족하다 싶으면 친구에게 물어본다.
"내가 화낼만 한 것 맞지?"
인터넷 맘카페에도 비슷한 류의 질문들이 자주 올라온다.
"제가 예민한건지 봐주세요."
"제가 기분나쁜게 오버하는 걸까요?"
"모르는 분한테 욕 들었는데 혹시 제가 민폐일까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요. 제가 이상한거에요?"
기분 나쁘고, 욕을 먹고, 어이가 없는 일을 겪고 몇번의 자기 검열을 거치고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확인 받아야 나의 잘못이 아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니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자아가 분열되지 않는게 이상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