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이 갖는 가치

회고록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by 박지훈

나는 회고록을 즐겨 읽는다. 특히 퇴임한 선진국의 전직 대통령, 총리와 전직 미국 국무장관이 저술한 회고록은 주문하고 나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회고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다.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인물의 회고록을 읽고 나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하고, 회고록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에 국가 간 갈등까지 발생한다.


내가 회고록을 즐겨 읽는다고 말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재미없는 걸 어떻게 읽냐’, ‘안 그래도 바쁜데 남의 이야기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회고록은 재미가 없다. 더구나 회고록은 대부분이 600쪽을 넘기는 방대한 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 ‘남은 부분을 다 읽어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회고록은 다른 어떤 장르의 책이 갖고 있지 못하는 몇 가지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다. 여기서 회고록만이 갖는 장점을 나열하고자 한다.


회고록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볼 수 있기에 시대정신과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일들을 해석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사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반면에 지도자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왜 특정 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봤는지를 살펴본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특정 소수의 의지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에서야 깨닫는 것을 지도자들은 이미 몇 년 전에 깨달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얼마 전 읽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의 회고록도 2001년에 지은 책인데, 내가 작년과 올해 깨달은 내용이 날카롭게 정리되어 있어 놀라웠다. 지도자들의 통찰력은 언제나 갖고 싶은 특징 중 하나이다.


회고록의 가치 중 또 한 가지는 바로 회고록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역사책이라는 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역사 분야인데, 지금까지 역사책을 읽으면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역사책들은 하나같이 누락된 내용이 많았고, 인과관계가 불명확해서 ‘도대체 이 사건이 왜 일어난 거지’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회고록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해결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역사학자들은 긴 역사를 서술해야 하기에 자세한 내용을 담는 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회고록에서는 저자들이 자신이 현직에 있던 몇 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훨씬 더 상세하고 인과관계가 명확한 설명이 가능하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처한 상황을 알고자 했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된 책은 다름 아닌 그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W.부시의 회고록이었다.


회고록은 작가의 주관이 깊이 내재되어 있기에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내용의 왜곡도 쉽다는 비판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단점보다는 회고록만이 갖는 장점이 너무나도 커서 회고록을 결코 재미없는 책, 쓸모없는 책으로 치부할 수가 없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 임기 전반부 4년을 다룬 회고록을 출판했다. 미국에서는 출판 하루만에 89만 부가 팔리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부디 우리나라에서도 회고록이 갖는 가치가 널리 알려져서 사람들이 누군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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