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인물들과 흑백 화면으로 그려진 한강, 그 모순의 세계
젊은 가톨릭 사제가 한강 다리 난간 밖에 죽을 각오로 서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선택한 신부의 길이 그녀를 죽게 했다"고 신을 원망하며. 이때 허름한 행색의 한 남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건다. "당신이 뛰어내릴지 말지를 갖고 일행과 5000원을 걸고 내기를 했다"며 "뭐가 됐든 얼른 하"란다. 사제가 "사람 목숨을 갖고 내기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묻자, 남자는 "죽겠다는 사람이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이내 기다리다 못해 뒤돌아선 남자 뒤로 사제가 강물에 몸을 던진다.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그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든다.
초보 신부 명준(기태영 분)의 자살 기도.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며 그를 구하는 노숙자 장효(봉만대 분). 이러한 영화의 첫 시퀀스가 보여주듯 <한강블루스>는 어딘가 비틀어진 인물들로 가득한 작품이다. 자살 실패 후 명준이 합류한 노숙자 집단에는 수녀가 되고 싶어 하는 미혼모 마리아(김희정 분)가 있고, '마음은 여자'라면서도 아버지로서 딸의 결혼을 축복해주고 싶은 트랜스젠더 추자(김정석 분)도 있다. 인적 드문 겨울의 한강 둔치에서 살아가는 네 사람. 흑백 화면으로 그려지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가 그리는 모순의 세계 그 자체다.
길을 잃고 표류하는 인물들을 다루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모순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극 중 추자가 물에서 끌어올린 명준을 보고 그의 바지를 내린 뒤 "괄약근에 힘이 들어간 걸 보니 살아있다"고 말하거나, 못 마시는 술을 마셔 병원에 실려 간 장효가 명준과 함께 병원비를 내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는 에피소드. 이 외에도 줄곧 이렇다 할 맥락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만담 같은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은 비극적인 상황을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면서 영화 특유의 '웃픈' 분위기를 조성한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한강 둔치의 이미지를 퍽 낯설게 보여주는 연출 또한 <한강블루스>의 주요한 동력이다. 영화는 인적 드문 겨울의 한강변 곳곳을 카메라로 훑는데, 이는 흔히 소풍과 산책으로 대표되는 여유로운 한강 공원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캠핑이 아닌 노숙을 위해 설치된 텐트, 물이라곤 없는 텅 빈 수영장, 물 위가 아닌 지상에 서 있는 오리배 등 영화가 바라보는 한강은 차갑고 고독하다. 여기에 홀로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장효, 선탠용 의자에 나란히 누운 추자와 마리아의 모습은 그렇게 한강을 '집시들의 아지트'로 변모시킨다. 브라운 톤이 감도는 흑백 영상으로 보이는 그들의 한강은 마치 평행우주 저편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 같다.
"견디기 어려운 슬픔은 도대체 어디서 오나요?" 마리아의 이 질문은 영화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모두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결핍 속에 빠져 있고 이는 엄청난 고통이 되어 그들의 삶을 잠식하지만, 영화는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다. 네 가지 인생의 작은 지점들을 잠시 '한강'에 모아 놓고, 그저 위로의 무력함을 확인시킬 뿐이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 수녀가 될 수 있다'는 마리아처럼 "그래도 살아야겠다"며 한강을 떠나는 이들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상실에서 발견으로, 무가치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리고 죽음에서 삶으로의 전환. 추자가 딸에게, 장효가 아내에게 돌아가고, 명준이 '구원자'가 되어 한강 다리에 오르는 귀결을 통해 <한강블루스>가 해내는 나름의 치유다. 2016년 9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