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꿈에 대하여
한 사람의 일상이란 대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개인의 하루하루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먼지만큼이나 사소하고, 각별한 관계가 아니고서야 오늘 누가 무슨 일을 겪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을 오롯이 들여다볼 기회도, 자신이 겪은 일상을 타인에게 하소연할 기회도 사라져만 간다. 사람들은 모두 고독하지만 정작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이다.
옴니버스 영화 <어떤 하루>는 이런 개인의 일상을 마치 현미경처럼 깊숙이 들여다본다. 초등학생부터 20대 청춘, 그리고 40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세 여자의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제각기 다른 결로 존재하는 이들의 상처와 바람을 가만히 응시하며 자칫 그냥 지나쳐버렸을 세계를 스크린 밖 관객에게 내민다. 각각 30분 내외의 세 단편이 보여주는 나날들은 희로애락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내밀하고 복합적인 개인의 속내를 조명한다. 여기에는 고통 속에서도 쓴웃음을 짓게 하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희망을 꿈꾸게 하는 묘한 울림이 있다.
첫 단편 ‘가을단기방학’은 엄마 없는 열한 살 소녀 연주(최수인 분)의 이야기다. 이혼한 부모 탓에 할머니와 사는 연주는 가을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여행 사진을 찍어오라는 숙제를 받는다. 재혼한 엄마를 찾아 홀로 머나먼 울산을 찾은 연주는 좀처럼 엄마와 만나지 못하고, 놀이공원을 비롯해 도시 곳곳을 거닐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창 엄마의 빈자리가 클 나이인 연주의 심리를 세심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린 연출이 인상적이다. 이미 다른 가족이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연주의 홀로서기와 맞물리는 지점은 아릿하다. 관람차를 배경으로 홀로 찍힌 연주의 사진은 특히 여운이 길다.
두 번째 이야기 ‘로라’는 엄마이자 아내인 40대 여성 로라(김영서 분)의 특별한 하루를 다룬다. 젊은 시절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도심 외곽에서 남편과 펜션을 운영하는 로라는 한 뮤지컬 팀을 투숙객으로 들이며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낀다. 공연 초대까지 받은 그는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떠나 뮤지컬을 관람하고, 이를 통해 잊었던 꿈과 마주한다. 영화는 다 자란 딸을 떠나보내고 팍팍한 현실에 파묻힌 중년 여성의 내면을 깊숙하고도 폭넓게 비춘다. 청춘 시절에 대한 향수와 무대를 향한 동경이 혼재된 로라의 심리, 그리고 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는 중년의 삶에 대한 잔잔한 위로이기도 하다.
마지막 단편 ‘속죄’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 벅찬 20대 여성 연희(이지민 분)의 이야기다. 연희는 치매 환자인 엄마를 돌보는 와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나름 미래를 설계하던 그는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을 상황에 처하면서 극한의 위기에 빠진다. 영화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20대 가장의 지리멸렬한 삶을 뼈아프게 조명한다. “나도 힘들다”며 자신을 해고하는 아르바이트 고용주에게 “힘들단 말 참 쉽게 하시네요”라고 말하는 연희의 대사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강제 퇴거조치를 앞두고 사채 빚도 마다하지 않는 연희,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존감을 내팽개치는 남동생의 에피소드들 또한 무게감이 상당하다.
<어떤 하루>는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학생들이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영화 속 세 단편에서 이 시대를 사는 청춘의 시선이 엿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 외로웠던 과거,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고되기만 한 현재, 그리고 현실에 쫓겨 꿈 따위는 잃을까 두려운 미래까지. 머지않아 거대한 세상과 홀로 마주할 청춘의 영화인들이 바라보는 삶이란 그런 형태일지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 일상을 내보이는 그들의 영화가 갈구하는 건 바로 자신들을 향한 관심일 것이다. 작을지언정 소중한 누군가의 하루에 대한 따뜻한 시선 말이다. 2017년 6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