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청춘들의 이야기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은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하드코어 펑크 밴드다. 20대 청춘의 두 밴드 멤버들은 '펑크 정신'으로 모인 친구들과 함께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영화 스태프나 욕실 인테리어 디자이너에서 급식실, 편의점, 이자카야, 냉면집 아르바이트까지. 이들은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은 채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두 밴드는 도쿄에서 열리는 펑크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일본 투어에 나서고, 거대한 일본 펑크 신 곳곳의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뜻깊은 시간들을 보낸다.
X나게 공부하고 X나게 스펙 쌓고 X나게 취직하고 X나게 뒤져.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하는 밴드 파인더스팟의 동명 자작곡 가사다. 열 손가락으로 충분히 셀 수 있을 만한 관객 앞에서, 그들이 부르는 이 노래는 차라리 악을 쓴다는 표현이 걸맞아 보인다. 영화는 이처럼 강렬하다 못해 시끄럽기까지 한 하드코어 펑크 음악들을 중간중간 끊임없이 전시한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생경한 공연에 어안이 벙벙해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분노가 마음을 건드린다. 영화 속 누군가의 말처럼 펑크는 "무지하게 화가 나서 그걸 발산하는 음악"이니까.
스스로를 '펑크'라고 칭하는 이들에게 음악은 창작이기에 앞서 표현이다. 이들이 만들고 노래하는 곡들은 대단한 명작을 만들겠다는 욕구가 아니라 분출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에서 탄생한다. 평상시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X발'이나 'X나' 따위의 육두문자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이들은 그때그때의 기분을 거의 아무런 여과 없이 표현하고, 이는 음악을 통해 가장 격렬하고도 효과적으로 발산된다.
일견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의 삶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청춘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단순히 딴따라이자 한량의 모습을 넘어 사회 운동으로까지 확대되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대추리, 쌍용차,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와 농민 등 약자를 위해 싸우고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파인더스팟 기타리스트 심지훈의 모습은 특히 아릿하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입건돼 1000만원이 넘는 벌금형에 처해진 그가 경찰서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이들을 거창한 대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떠받드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 속 '펑크'들은 다만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에 대해 참지 않을 뿐이다. 이런 그들의 분노 중 일부는 힙합 음악을 비하하거나 마이크로 자신의 이마를 '깨는' 등 편협하고 과장된 태도로 드러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받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는 게 아니라, 부당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막무가내로 욕을 내지르는 셈이다. 이 와중에 밖에서 온갖 분노를 한껏 발산한 이들이 집 안의 부모 앞에서는 그저 골칫거리 아들로 여겨지는 장면들은 퍽 코믹스럽다. 펑크를 벗어난 그들의 모습은 여느 20대 청춘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노후 대책 없다>를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스컴레이드의 베이시스트 이동우다. 그는 촬영부터 연출, 편집,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홀로 해냈다. 마치 작곡, 작사에서 녹음과 홍보,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DIY로 진행하는 이들의 음악처럼 말이다. 조악한 퀄리티의 음향과 영상 속에서도 이들의 '펑크'에 진실성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제멋대로에 위태로운 일거수일투족은 구제불능에다 못 미더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나름 유의미한 공동체를 지켜가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멀기만 한 노후의 안정을 위해 기꺼이 현실의 부당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뭣도 없는 주제에 뭉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내지르는 이들의 청춘이 훨씬 멋지니까 말이다. 2017년 6월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