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잃은 남성의 욕망, 그 비참함에 대하여
후루야(이타오 이츠지 분)는 '쓰레기'같은 영화를 찍는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할 만큼 인정받는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이제 돈벌이용으로 제작되는 영화를, 돈 때문에 맡아 연출한다. 당연히 작품에 대한 애착도 없고, 이 와중에 주연 여배우마저 촬영 현장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결국 영화는 엎어진다. 식물인간인 아내의 병원비를 대느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는 방황하는 와중에 몇몇 여자들과 만난다. 이들 중엔 그가 가르친 대학생도 있고 함께 작업한 배우도 있으며, 아내가 입원 중인 병실 간호사도 있다. 마치 줄을 서서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여자들은 잇따라 후루야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후루야는 그들과 섹스를 한다.
영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속 후루야는 일견 홍상수 감독 작품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후루야가 고고한 아티스트를 표방하면서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 그렇고, 어떤 여자들이(놀랍게도) 이런 그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점도 그렇다. "섹스는 꽃에 물을 주는 것"이라거나 "여자와 섹스를 하면 그가 무슨 색의 꽃으로 피어나는지 알 수 있다"는 그의 궤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영화는 다분히 위선적이고 현학적인 '난봉꾼'과 그를 욕망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퍽 예쁜 화면으로 담아낸다. 심지어 에릭 사티가 작곡한 '짐노페디'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속에 말이다.
남성 한 명과 다수 여성으로 구성된 영화의 관계 구도는 작위적이면서도 퍽 흥미롭다. 영화는 내내 여성을 타자화하며 남성 판타지를 한껏 자극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상에 머물지 않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그린다. 후루야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여대생, 남편 몰래 후루야와 외도를 저지르는 여배우는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루야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한편, 고고한 외피 속에 숨은 그의 보잘것없는 민낯을 만천하에 까발리기까지 한다.
두 여자와 각각 관계를 가진 후루야가 자신의 영화 GV(관객과의 대화) 무대에서 이들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한 후루야에게 분노하는 남성, 자신을 두고 서로 질투하는 두 여성은 후루야가 일궈온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유쾌하게 무너뜨린다. 중년의 후루야가 젊은 세 남녀에게 쫓기며 골목을 달리는 신은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지점이다. 겨우 추격자들을 따돌린 그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신의 학생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그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영화는 자신의 욕망을 거의 자제하지 않는 후루야를 결코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피아노 앞에 앉아 짐노페디를 연주하던 아내의 기억을 재생하며 그의 내면에도 '사랑'이 있었음을 조명한다. 일주일 동안 만나는 여자마다 섹스를 하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내의 부재에 대한 공허로 비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저 자위를 위한 그의 섹스는 물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성욕 그 자체인 셈이다. 영화 말미, 혼수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 앞에서 간호사와 벌이는 마지막 섹스 신은 그런 의미에서 강렬하다. 결국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가 역설하는 건 사랑을 잃고 욕망에 집착하는 남성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 모른다. 2017년 7월 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