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년 여성 여행 플랫폼 '노는법' 바바그라운드 허정 대표
40~50대 중년 여성에게 여행은 어렵다. 20~30대 여행자들처럼 혼자서 덜컥 새로운 곳을 여행하기도 조심스럽고, 남녀가 섞인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하고 함께 여행을 즐기기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중년 여성의 여행은 보통 오랜 친구나 동창, 때론 가족들과 함께 삼삼오오 이뤄진다. 말하자면 일정을 맞춰 같이 갈 지인이 없다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중년 여성을 위한 여행 플랫폼 ‘노는법’은 이런 4050 여성을 위한 여행 상품을 제공한다. ‘오늘 가장 젊은 순간을 특별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여행지를 찾아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돕는 바바그라운드 허정 대표(34)를 지난 16일 만났다.
몇 년 전 10개월 정도 해외 배낭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등 유명하지 않은 여행지를 다니면서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났다. 재미있는 건 나이 지긋한 중년 자유여행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한국인 중년 여행자들을 본 적도 있지만 거의 단체 패키지 위주였다. 우리나라 중년 분들이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고, 이걸 사업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머니가 정년 퇴직 이후 고민하신 부분도 창업의 계기가 됐다. 퇴직 이후 이제 좀 즐기고 싶은데, 뭐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기존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서비스를 소개해드렸는데, 젊은이들이 쓰는 걸로 당신이 뭘 할 수 있겠냐고 하셨다. 실제 중년이 안전하고 건전하게 즐기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은 거의 없었다.
고객들을 만나다 보면 “정신차려 보니까 40대가 됐더라”라는 얘길 자주 듣는다. 보통 40대 여성은 자녀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즈음인데, 바쁘게 살다 중년이 되면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찾고 돌아보는 게 중요해진다. 이 분들이 노는법을 통해 여행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말이다.
4050 여성 중 기혼자는 77% 이상으로 월등히 많다. 그러다 보니 남녀가 섞여 즐기긴 어렵다. 지금까지는 네이버 밴드 같은 곳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류하는 모습들이 있는데, 개인정보 노출이나 불건전 사용자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 여성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서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지금 주력하는 건 농촌진흥청, 각 지자체와 협력해 기획하는 농가 여행 상품이다. 체험과 식사, 숙박, 휴식까지 농가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상품을 기획해 제공한다. 농촌에서 민박업을 하시는 현지 분들이 자신의 공간에 도시 여행자들을 초청하는 형태다.
코로나 이후 ‘촌캉스’란 말이 각광받게 됐다. 농촌 로컬 자산에 대한 발굴 이슈가 강해지고 있다. 농가들이 3차 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중이고, 지자체에서도 관광업 장려 차원에서 쏟아놓은 예산이 있어 시설적으로 잘 구축된 곳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과 제휴를 맺고 지역별 농가 인프라를 여행 상품으로 기획하게 됐다. 지금은 농진청의 농가 체험 사업에 노는법이 주요 파트너가 됐고, 벌써 내년 사업을 문의하는 지자체들과의 협의도 진행 중이다.
보통 농가라고 하면 허름한 시골집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기획하는 여행 상품들은 다르다. 경관이 빼어나거나,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한정식집 이상의 식사를 맛볼 수도 있다. 숙소 건물 자체가 웬만한 에어비앤비 숙소 이상으로 좋은 경우도 많다. 이런 공간에서 친절한 호스트와 이야기하며 지역의 삶에 대해 들어볼 수 있고, 다도를 익히거나 찜질방을 이용할 수도 있다.
4050 세대에게 여행은 ‘스스로를 위한 대접’이다. 젊은 세대가 주도적으로 식당과 숙소를 찾아 즐기는 걸 추구한다면, 중년 여성은 제대로 세팅된 여행 프로그램을 누리는 걸 선호한다. 노는법을 통해 만난 호스트에게서 ‘이 사람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면 그게 가장 큰 만족이다.
농촌체험은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한 차별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각종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원데이클래스나 일일 체험 상품도 제공한다. 여기에 찜질이나 온천 등 중년 여성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소싱할 계획도 있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중년 여성 대상의 종합 OTA(Online Travel Agency)다. 기존 메이저 업체들은 20~30대가 대부분이고, 중년층은 10%대에 불과하다. 40~50대 인구가 850만명이고 60대까지 포함하면 1200만명인데, 이들을 아우르는 플랫폼이 되고 싶다.
지금 주력하는 농가 체험의 경우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다. 지금 입점 농가가 30곳 정도인데, 올해 안에 50곳 이상이 될 예정이다. 농가 호스트 입장에서도 한달에 수백 만원씩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중년 여성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는법은 여행 플랫폼이기에 앞서, 또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돼야 한다고 본다. 노는법을 통해 그 분들이 여가시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좋은 호텔 상품을 판매한다고 해서 중년 여성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2019년 12월 설립된 바바그라운드는 시니어 여가 플래폼 ‘노는법’으로 제13회 초기관광벤처에 선정된 바 있다. 농촌진흥청과 협력해 ‘촌캉스 상품’ ‘대접받는 여행상품’ 등 중년 여성 특화 농가 여행 상품들을 기획, 서비스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보증기금 주관 ‘스타트업 네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