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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pr 05. 2022

동대문, ‘패스트 패션’ 넘어 ‘리얼타임 패션’ 꿈꾸다

[인터뷰] 패션 도매 플랫폼 스타트업 ‘골라라’ 박단아 대표

패션 업계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시장도 없다. 매 해, 매 시즌마다 새로운 유행이 생기고, 이를 반영한 ‘신상’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국내에서 패션 동향을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동대문시장이다. 동대문에서는 매일 새 옷이 디자인되고, 유통되고, 소비자에게 선보여진다.


이른바 ‘K패션 도매 플랫폼’을 표방하는 골라라(박단아·박성민 각자대표)는 동대문 패션 시장을 IT 기술로 혁신해 나가는 스타트업 기업이다. 국내 패션 업계의 중심인 동대문의 특수한 패션 유통 구조와 독보적 인프라를 온라인 상에 구현하고 있다. 국내 패션 종사자와 도·소매상, 해외 바이어까지 아우르는 ‘동대문 패션’의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박단아 대표(36)를 지난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골라라 박성민(왼쪽)·박단아(오른쪽) 대표 (사진=골라라)


동대문은 좋은 옷을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박 대표가 동대문시장을 사업의 주 무대로 삼은 이유다. 동대문 패션 시장 규모는 연 30조 원으로 국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잔뼈 굵은 디자이너·제작자·도매상이 긴밀하게 교류하며 역동적인 시장 그 자체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오랜 시간 쌓여 온 동대문시장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환경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동대문 패션 시장의 기반, ‘사입’을 돕다


동대문시장은 수많은 개별 도·소매상 간의 거래가 얼키고설키며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존재가 바로 ‘사입삼촌’이다. 사입삼촌은 구매자의 의뢰를 받아 동대문에서 상품 픽업 및 반납을 대신하는 사람을 뜻한다. 골라라는 이러한 사입 과정의 비효율성을 기술로 해결하고 있다.


“동대문은 말하자면 각개전투를 하는 곳이에요. 사입삼촌이 소매상과 개별 매칭 되다 보니 한 도매 매장에 A 삼촌도 들리고, B 삼촌도 들리고, C 삼촌도 들리면서 중복 노동이 발생하죠. 사입삼촌의 수익이 들인 노동력과 비례하지 않는 것도 문제예요. 보통 거래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가져가는데, 매장 10곳을 돌며 각각 100만 원어치 상품을 사입했을 때나 한 매장에서 1000만 원어치 상품을 사입한 경우나 같은 돈을 버니까요.”


골라라는 소매상이 온라인으로 도매상의 상품들을 검색하고 주문에서 결제까지 할 수 있는 가교 역할도 한다. 의류 도매 거래는 소매상의 취급 상품 수량과 규모에 따라 방식이 제각각인데, 이 과정에 필요한 기능들을 서비스에 탑재하며 거래 편의를 제공하는 중이다. 현재 국내 1만 5000곳 이상의 도·소매상이 골라라의 온라인 주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세금계산서 처리와 송금 등 거래처마다 일일이 처리해야 하는 정산 업무도 골라라 내에서 간편하게 처리 가능하다.


“소매상 입장에서는 시즌 별로 잘 나가는 상품군을 찾고, 여러 상품을 비교해 잘 팔릴 만한 상품을 선택하는 게 중요해요. 저희는 이런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기능들도 서비스하고 있어요. 상품마다 패턴과 소재, 디자인 요소 등  다양한 시각적 정보를 데이터화 하는 건 기본이고, 계절이나 날씨, 기온에 따른 품목별 판매량을 분석해 어떤 아이템이 인기 있는지도 알려주죠.”



‘재고 리스크’를 해결하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만들고 파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재고’다. 온라인 기반의 사전예약, 공동구매가 일반화되면서 소매상은 재고를 떠안지 않고 비즈니스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도매상의 경우는 다르다. 신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기 어렵고, 때문에 섣불리 대량 생산을 했다가 재고 리스크를 홀로 짊어질 수도 있다.


“재고 문제는 도매상과 소매상, 소비자까지 모두에게 손해예요. 어떤 소매상이 고객 공동구매로 티셔츠 100장을 주문했다고 쳐요. 그런데 도매상은 기존 재고가 부족하고 당장 생산할 여건도 안 돼서 50장만 공급하고 나머지는 환불해주기로 한 거예요. 고객 50명은 옷을 못 사고, 소매상과 도매상은 각각 티셔츠 50장의 판매 수익을 놓쳐버린 거죠.”


재고 리스크를 줄이려다 손해를 보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박 대표는 ‘선주문 후생산’과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강조한다. 동대문시장은 상품 기획에서 생산, 판매까지 패션 유통의 사이클이 세계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돌아가는 곳이다. 샘플 상품을 빠르게 선보여 시장 반응을 보고, 이를 토대로 판매량을 예측해 생산 단계부터 재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골라라의 소매상 유저 데이터를 분석하면 상품 판매량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요. 상품을 조회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하기까지 행동 패턴을 보면 실제 주문과 별개로 관심도가 보이거든요. 도매상들은 이런 데이터를 보고 빠르게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신상품을 출시하는 누구나 소량 생산을 원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소량 생산 제품의 시장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겁니다.”



‘패스트 패션’ 넘어 ‘리얼타임 패션’으로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동대문 의류는 가격 경쟁력이 낮다. 그럼에도 해외 바이어들이 동대문을 찾는 이유는 품질 때문이다. 정식 시판 전 샘플 하나를 만들어도 상품성이 뛰어나고, 해외에서 패션 유학 중인 학생들은 졸업작품을 ‘굳이’ 동대문시장에 맡기기도 한다. 문제는 기껏 잘 만든 샘플 상품이 대개 헐값으로 중국에 넘겨져 대량생산된다는 점이다.


“동대문에서 만든 옷은 디자인도 품질도 좋은데, 최근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든 옷을 유통하는 비율이 높아졌어요. 우리나라보다 생산 비용이 낮은 중화권, 동남아 옷이 국내에 팔리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만, 그 옷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메이드 인 동대문’의 경쟁력은 샘플링이에요. 히트 상품의 시작은 잘 만들어진 샘플이고, 동대문은 좋은 샘플로 패션 샘플링을 하기에 최적의 시장이죠.”


박 대표가 글로벌 패션 시장을 노리는 건 그래서다. 다품종 소량 생산 기반의 동대문 시장 인프라는 전 세계 패션 업계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새로운 상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이 와중에 히트상품을 찾아내 성공적인 대량 생산의 물꼬를 트기까지. 골라라 서비스는 홍콩과 대만, 중국에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플랫폼을 통한 전체 거래액은 올해 기준 월 1000억 원 정도다.


“저희 목표는 동대문 시스템을 전 세계 패션 시장과 연결해 동대문을 패션의 메카로 만드는 거예요. 해외 어디서든 옷을 디자인하고 처음 샘플링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동대문이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동대문이 가진 ‘패스트 패션’의 정체성을 ‘리얼타임 패션’으로까지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옷이 ‘상품’이 되는 첫 단추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꿰어낼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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