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풍경이 자아내는 노스탤지어 <벨빌의 세 쌍둥이>

13년 만의 국내 개봉, 그래도 이 영화의 가치는 퇴색하지 않았다

by 오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유일한 행복인 챔피온.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인 마담 수자, 애완견 브루노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자그마한 집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전국 자전거 선수들이 모인 '투르 드 프랑스' 경기에 출전하지만, 대회 도중 정체불명의 마피아에 납치를 당하고 만다. 마담 수자는 강아지와 함께 사라진 손자를 찾아 나서고, 마피아의 흔적을 뒤따라 머나먼 항구도시 벨빌에까지 이른다. 둘은 그곳에서 우연히 세 쌍둥이 할머니를 만나 신세를 지는 한편 그들의 도움으로 챔피온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애니메이션 영화 <벨빌의 세 쌍둥이>는 마치 흥미진진한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옮긴 듯한 작품이다. 이렇다 할 대사 하나 없이 전개되는 영화의 서사는 마치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동화책을 보는 듯 감각적이고, 지극히 만화적인 캐릭터들과 20세기 중반 프랑스 한 귀퉁이를 훑는 미장센은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처럼 느껴질 정도다.

가는 허리와 목에 비하면 과할 정도로 굵은 챔피온의 허벅지나 그의 작은 얼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커다란 코. 그리고 말 그대로 네모난 '깍두기' 형태의 마피아 조직원들과 내내 여유 넘치는 태도로 일거수일투족 하늘거리는 세 쌍둥이 할머니들까지. 애니메이션이란 걸 감안해도 비현실적인 캐릭터 연출은 <벨빌의 세 쌍둥이>를 견인하는 주된 동력이다. 여기에 호루라기를 불거나 자전거 바퀴의 휠을 두드리는 마담 수자의 스톰프(stomp, 일상생활 속 물건을 활용해 리듬을 연주하는 것) 연주, 그리고 극 중 TV 화면이나 레코드판을 통해 변주되며 들려오는 바흐의 음악까지. 이들은 전반적으로 표정이랄 게 없는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며 영화에 생명력을 더한다.


챔피온의 성장과 더불어, 프랑스 도시의 평화로운 풍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로 차갑게 변해가는 전개는 고향에 대한 뭇 관객들의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무대가 되는 벨빌은 많은 사람들과 빽빽한 빌딩 숲, 그 안에 존재하는 '악한 강자'와 '선한 약자'를 함께 조명하며 세련됐지만 삭막한 도시로 그려진다. 챔피온 일행이 마피아를 피해 벨빌을 탈출하는 마지막 시퀀스, 눈앞에 영사(映寫)되는 고향 풍경을 보며 자전거를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울림으로 남는다.

대중의 관심이나 업계의 유행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한 이 영화 특유의 스타일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벨빌의 세 쌍둥이>를 한 편의 대중 영화가 아닌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건 그 때문이고, 2003년 제작된 이 영화의 가치가 13년이 흘렀을지언정 전혀 퇴색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국내 개봉했던 <일루셔니스트>(2010)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을 만든 실뱅 쇼메 감독. 그가 독창적 그림체와 혁신적인 구성을 통해 '2D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거장'으로 불린 건 <벨빌의 세 쌍둥이>가 시작이었다. 2016년 10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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