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강력한, '보이지 않는' 재난 <판도라>

'원전 공포'에 세월호, 청와대 비선 이슈까지 담았다

by 오늘

어린 시절부터 원전 인근 바닷가 마을 월촌리에서 살아온 재혁(김남길 분). 과거 아버지와 형을 원전 사고로 잃은 뒤 홀로 된 노모(김영애 분)와 형수 정혜(문정희 분), 어린 조카와 사는 그는 마지못해 발전소에서 일하면서도 언젠가 연인 연주(김주현 분)와 가족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는 게 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노후된 발전소 원전 한 기에 균열이 발생한다. 냉각수가 유출된 데 이어 해당 원전이 폭발하면서 결국 막대한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고, 사태 축소와 정보 통제에 급급한 발전소와 정부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영화 <판도라>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도 남다른 재난 블록버스터다. 다른 나라 얘기로만 들려오던 원전 사고를 중심에 둔 건 물론, 베일에 싸여있던 그 어두운 실체를 파헤치고 또 파헤쳐 스크린에 담아냈단 점에서 그렇다. 누구나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위험한지에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원전의 존재. ‘경제 발전’이란 미명 하에 축소, 편집된 그 부작용과 위험의 실상을 고발하고 경고한다는 점만으로도 <판도라>는 유의미한 작품이다.


사고 이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향하는 재혁이 가족과 생이별하는 영화의 전개는 퍽 익숙한 신파 서사로 다가온다. 여기에 무능한 발전소 측과 행정 당국을 대신해 구조 작전을 일선에서 지휘하는 전 발전소장 평섭(정진영 분)은 휴먼 드라마 특유의 영웅적 면모를 그대로 답습한다. 가족과 동료를 위한 용기와 희생정신이 인간애의 경지로까지 확대되는 작위적인 후반부 스토리 역시 눈에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온 힘을 모아 원전 사고의 지리멸렬한 후폭풍을 조명하는 에피소드들 덕분에 <판도라>는 현실 속 위협을 효과적으로 상기시키는 힘을 갖는다. 초기 대응 미숙으로 2차, 3차 사고가 발생하고,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가래로도 못 막게 되면서 벌어지는 연쇄적 재난은 공포를 넘어 피로감마저 자아낸다. 쏟아져 내리는 냉각수로 온몸에 방사능을 뒤집어쓰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가는 발전소 직원들, 그리고 이들을 구하려다 역시 방사능에 피폭되는 이들까지. 원전 폭발을 두고 “다 탈 때까지 놔둔다고 꺼지는 불이 아니다”라는 평섭의 말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원전 사고의 위협을 대변한다.


사고 현장 속 사투와 교차되며 영화의 또 다른 줄기를 이루는 ‘콘트롤 타워’의 서사는 현시점과 맞물려 큰 시사점을 남긴다. 유능한 발전소장 평섭이 권력에 밉보여 한직으로 밀려났다거나 대통령 비서관이 비선 개입 문제로 해직당했다는 설정 등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현실 정치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사고의 중대성이 뒤늦게서야 대통령에게 보고되면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당국과 청와대의 행태, “가만히 있으라”며 주민들의 신속한 피난조차 방해하는 대처는 세월호 당시 사고를 정면에서 비추며 폐부를 찌른다. 이같은 비극의 재현은 “국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자백’과 일선에서 몸을 던지는 재혁 일행의 대비에서 정점을 찍는다.

<해운대>와 <부산행> 등의 계보를 잇는 재난영화이면서도 스펙터클보다 휴머니즘을 강조한 <판도라>의 선택은 오락성 측면에서는 패착이기도 하다. 해일로 인해 고층 빌딩이 수도 없이 무너지거나 수백 명의 좀비가 내달리는 두 영화에 비하면 <판도라>의 시각적 효과는 그다지 대단치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판도라>가 이들 영화보다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는 건, 앞서 말했듯 ‘원전 사고’를 다룬다는 점에서다.


10km, 20km, 심지어 100km 멀리까지 도망친다 해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당사자는 물론 그 자식에게까지도 전해질 수 있는 재난의 여파. 단언컨대 <판도라> 속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가장 강력한 재난'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전율은 전에 없던 종류의 것이다. 그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는 거냐"며 목놓아 '엄마'를 외치는 극 중 재혁의 절규와도 다르지 않다. 2016년 12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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