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복싱 영웅 듀란의 일대기
단언컨대 복싱은 영화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스포츠다. 링 위의 대결은 격렬하면서도 차분하고,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판세라도 순식간에 뒤집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챔피언이 되거나 반대로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다음 경기에서 벨트를 내놓는 것도 예삿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복싱을 둘러싼 개개인의 승리를 향한 투지와 집념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동기로 링 위에 오르고,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의 문제 말이다.
영화 <핸즈 오브 스톤>는 이러한 복싱 영화 특유의 드라마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실제 20세기를 풍미한 전설적인 복서 로베르토 듀란(에드가 라미레즈 분). 영화는 듀란의 어린 시절부터 30대에 자리잡기까지 20여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빈민가 출신인 그가 파나마의 영웅이자 세계적 복서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듀란의 서사를 견인하는 주된 동력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바로 그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트레이너 레이(로버트 드 니로 분)와 아내 펠리시다드(아나 디 아르마스 분)의 존재다. 밑바닥 복싱계를 전전하던 듀란이 우연히 거리에서 본 대학생 펠리시다드에게 첫눈에 반하고, 이때 마침 자신을 찾아온 베테랑 트레이너 레이와도 마주하는 도입부 장면. 이를 시작으로 듀란의 삶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전개는 복서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듀란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르는 경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영화가 복싱에 대한 열정과 승리에 따르는 영광을 전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듀란 내면의 모순을 포착해 낸 점은 인상적이다. 특히 단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싱을 해온 '헝그리 파이터' 듀란이 파나마 국민의 자존심을 짊어진 국민적 영웅이 되면서 느끼는 갈등과 번민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잇따른 승리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받는 듀란의 모습이 과거의 그와 다르지 않은 파나마시티 빈민가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장면. 그리고 파나마 운하 문제로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던 국가 분위기로 인해 듀란이 미국인 복서 슈가 레이(어셔 분)와의 대결에 내심 부담감에 휩싸이는 후반부 전개까지. '파나마의 기상'으로 불리는 그의 영웅적 면모는 감동적인 동시에 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듀란에 대한 평전이나 자서전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법한 방대한(?) 플롯은 오히려 영화가 지닌 패착이기도 하다. 복싱 경기 특유의 둔탁한 액션과 더불어 미묘한 심리전을 표현해 낸 결투 장면들은 몰입감이 상당하지만, 그에 비해 링 밖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상당수는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이러한 일상 시퀀스에서조차 좀처럼 긴장감을 풀지 않는 연출 또한 관객의 집중을 방해한다. 매 장면이 내내 짧은 컷으로 휙휙 지나가버리는 탓에 많은 메시지가 담긴 신들에도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핸즈 오브 스톤>은 실제 로베르토 듀란의 친아들인 로빈 듀란이 제작 총괄을 맡았고 파나마 정부로부터 특별 펀드 지원까지 받았다. 이 영화가 '아버지에 대한 헌사'로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비약한다면 요샛말로 '국뽕 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매력만큼은 분명하다. '돌주먹'이란 듀란의 애칭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핸즈 오브 스톤>은 잘 만들어진 복싱 영화다. 2016년 12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