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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an 06. 2017

거세당한 '진실'과 '공정'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이명박근혜' 언론 암흑기 속 해직 언론인들의 투쟁

언론사는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하는 조직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눈치를 봐서도, 압박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기자에게는 상사(上司)가 없다. 그저 경험 많고 유능한 '선배'가 있을 뿐이고, 그조차 '님' 자를 붙여가며 존대하지 않는다. 앞서 언론인의 길을 시작한 동료 기자는 물론이고 최종적으로 기사를 데스킹(점검 및 수정)하는 편집국장이나 부서장, 심지어 사장이라도 마찬가지다. 일선 기자에게 이들은 다 같은 '선배'다.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런 언론사의 생태가 무너진 지난 7년의 현실을 다룬다. 시작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구본홍 씨가 2008년 YTN 사장으로 선임되면서부터다. 인정할 수 없는 '선배'의 등장에 반대해 기자들이 들고일어나고, 이 중 여섯 명이 해고당한다. 언론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복직을 주장하는 이들의 싸움은 한 달, 두 달이 되고 해가 넘어가도록 기약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와중에 YTN과 MBC의 기자 십수 명이 줄줄이 해직된다. 단지 '진실'과 '공정'을 부르짖은 이유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를 중심으로 YTN 사용자 측에 대항하는 해직 기자들의 태도는 여느 부당해고 노동자와 다르지 않게 결연하다. 하지만 이들의 해직이 '언론 장악'이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기인했다는 정황은 이들의 투쟁을 '정보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기업 생산성 향상이나 비용 절감 차원의 정리 해고가 아닌 '언론 장악'이라는 사회악에 침해당한 진실의 영역. 투명한 창이어야 할 언론이 불합리한 외압에 휘둘려 제 손발을 잘라내는 전개는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 관객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배'가 사라지고 '꼰대'가 남은 언론계를 그리는 영화의 장면 장면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돌연 사퇴한 구본홍 사장을 대신해 사장 자리에 오른 배석규 씨에 대한 해직 기자들의 한탄은 특히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진실과 정의를 추구했던 대선배가 해직된 후배들을 모른 채 하자 "선배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울먹이는 기자, 그리고 대화를 피하는 배 사장의 태도에 그가 탄 자동차 앞에 드러눕는 기자의 모습은 해직으로 인한 상처와 분노를 깊숙이 조명한다.

7년이라는 장기간의 투쟁 중에도 언론인의 자세를 견지하는 해직 기자들의 태도 또한 인상적이다. 이들이 편향적 보도를 막기 위해 YTN 보도 내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미디어가 외면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 카메라에 담는 장면들은 퍽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YTN 해직 기자 국토순례'라는 이름으로 현대차 아산공장과 쌍용차 현대공장, 유성기업, 제주도 강정마을 등을 향하는 이들은 '기레기' 소릴 듣는 이 시대 기자들의 롤모델로써 손색이 없다.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투쟁 속에서 '그날'이 오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MBC 전 노조 위원장 정영하 씨는 말한다. "회사 사옥 앞에 모든 직원을 모아 국민에게 큰절하겠다"고. 이는 바꿔 말해 "국민의 도움 없이는 '그날'을 맞을 수 없다"는 호소이기도 하다. 흔히 '창'(窓)으로 비유되는 언론이 더는 투명하지 않은 현실을 담아내면서, 이 영화는 그렇게 대중 앞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통로'가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자 나아가 혁명의 주체라고. 그리고 그 혁명의 끝에서는 모든 이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2017년 1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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