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에서 발견한 문장과 시선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새로운 책을 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저에게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그런 사람입니다. '타고난 이야기 꾼이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지'라는 평가를 넘어 '이 사람이 쓴 문장과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첫 번째 사람이니까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후 4년 만에 출간된 인생의 역사는 시를 통해 삶을 들여다본 에세이 형식의 시화(詩話)입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미국인 가장 사랑하는 시이자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 Road not taken'를 통해 바라본 '인생과 선택' 이야기입니다.
1. '가지 않은 길'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찬사로 많이 인용되는데요. 저도 신입사원 교육 때 멘토링하던 선배님이 이 시를 보내주면서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을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후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2.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하고 추천하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문단 때문일 텐데요.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고독과 아름다움. 선택의 기로에서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유한성 같은 이미지로서 말이죠.
그런데 이런 해석이 '오독'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핵심은 두 번째 문단이라는 건데요.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을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라는 문장에서 볼 수 있듯 두 갈래 길은 really about the same 즉,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갈래 길 앞에 섰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화자는 일단 통행이 드물다고 느껴지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상황을 과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두 길에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음을 밝힌다. 바로 이 순간에 화자는 중요한 진실 하나를 간파했으리라.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를 원하고, 또 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는 것.' 그래서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예감한다. 자신이 훗날 이날의 선택을 다소 미화된 방식으로 회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3. 일반인의 고민 이야기하는 예능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에서 걱정이 많아 고민인 사람에게 MC신동엽은 이렇게 조언한 적이 있습니다.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하는 것이에요. 식당에 가서 하나를 먹어요. 그리고 후회를 해요 '아 저 식당을 갈걸... ' 저 식당에 갔을 때 행복할지 불행할지 증명 못하잖아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는 것. 인생엔 정답 없어요. 선택만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 그냥 책임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4.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합니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일 텐데요. 특히 연말 연초가 되면 '올해는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하지, 다른 친구들은 이직하고 연봉도 올리는데 나도 그래야 하나, 작년에 결심했었어야 했나, 이미 늦은 건 아닌가' 등등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고민만 하다 선택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합니다.
이 시를 빌어서 이야기하면,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은 없으니, 하나의 길을 택했다면 그 선택에 책임지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가는 게 인생일 거예요.
프로스트가 이 시를 완성하자마자 그 친구에게 보낸 이유를 생각해보면 시인의 작의를 짐작할 수 있다.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란 없으니, 일단 하나의 길을 택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 물론 시인의 취지가 그런 것이었다 한들 논란이 종결되지 않는다. 작품이 발표된 후 열리는 해석의 경기장에서는 창작자 자신도 단지 한 명의 선수일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