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팔린 추상화 소식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보통 이런 댓글이 달리는데요. "뭐? 천억? 이게 왜?"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이 쓴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는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등 현대미술을 뇌과학 측면으로 해석하며 사람들이 왜 단순한 것에 이끌리는지, 인간은 어떻게 정보(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지 등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책 입니다.
1. 상향 Bottom-up :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크게 상향, 하향으로 설명하는데요. 상향처리는 정보 처리 과정 상 뇌가 위에, 정보가 그 아래 있다고 가정하고 정보 자체에 초점을 두고 세세한 특성을 파악하는 방식입니다. 처음 보는 물체를 보면 이건 왜 이런 모양이지? 이 부분은 어떤 특성이지? 같은 사고의 과정이 발생하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살펴보는 방식은 정확도는 높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과정이예요.
2. 하향 Top-down : 한 번에 알아보기
하향처리는 뇌에서 시작해서 아래 있는 정보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경험, 지식이 바탕이 된 개인별 사고의 틀로 단번에 해석합니다. 내가 가진 사고의 틀에 맞는 정보를 우선 받아들이고, 그 외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단순화 시키는데요. 이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얻기 위한 뇌 나름의 생존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뇌는 보통 1.6kg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모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만큼 생각한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큰 고차원의 작업이고, 정보를 받아들이 때 모든 걸 상향식으로 처리하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뇌가 과부하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3. 고양이 알아보기 : AI vs 사람
개 vs 고양이 사진 분류를 AI에게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AI는 보통 사진 이미지를 학습할 때 귀 생김새, 코 모양 등 각 이미지 특성을 파악하여 학습을 하고, 새로운 이미지가 들어오면 그 특성에 맞게 확률을 계산하여 "이것은 고양이 입니다"라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상향처리 방식이죠. 그러나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은 사진을 보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향처리 방식으로 이미 만들어진 사고의 틀로 그냥 판단을 내리죠. 그리고 나서 왜? 라고 누가 물으면 그때서야 특성을 좀 더 세세히 보면서 '음, 귀 모양이 강아지랑 다르고, 꼬리도 다르고...'라고 설명하다가 '그냥 딱 보면 알지 않아?' 라고 답하게 되는거죠.
4. 이것은 무엇일까요? 처음 보는 그림 해석하기 (5번 그림은 나중에 보도록 스크롤을 조심하세요)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에서
이 그림을 처음보면 우리의 뇌는 바빠집니다. '검은색과 흰색의 차이는 무엇인지? 작은 점은 어떤 의미인지, 대체 이것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하향식의 기존 경험으로는 당최 해석이 안되니 눈은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뇌도 계속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5. 이제 보이시나요? 점 하나 찍어드렸어요
아래 그림을 보고 다시 4번의 그림을 보면 그제서야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을 닫았다 다시 열어서 새롭게 보려고 해도 이제 우리 뇌는 4번 그림을 보면서 처음과 같은 혼란과 정보 해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어떤 모양과 패턴을 발견하고 '음, 사람 모양이네'라고 처리하게 됩니다.
어떤 경험, 해석된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 뇌에서 점 하나가 찍힙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일단 그 점과 연결해보면 연결되면 그걸로 판단을 끝내버리는 거죠.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에서
이런 형태로 정보가 처리된다면 나의 '생각의 틀'이라는 건 어쩌면 내가 '경험의 범위' 만큼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경험을 위한 시도를 계속하면 생각의 틀도 커지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범위도 넓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