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맛보는 찐 한식
금요일 오후가 되니 안식일(Sabbath)이 시작되었다. 이제 아랍 상권을 제외한 모든 곳이 문을 닫는다고 보면 된다. 대중교통도 안된다. 버스, 트램, 전철 모두.. 택시만 된다.
우린 도착한 날이 금요일 아침이요, 금요일 오후부터 샤밧이니 장을 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사모님께서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이틀 동안 총 6끼를 잘 먹었다. 마침 우리가 공항 가는 날은 손님 받는 일정이 있으셔서 찬 준비와 상차림을 도울 수 있었는데, 10명 넘는 사람들을 위한 정성 들인 상차림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먼저 첫째 날(금요일) 오후에는 쪽파와 생강을 손질했다. 쪽파가 열 단쯤 되었나. 생강도 칼로 긁어가면서 손질하는 것을 처음 해보았다. 이렇게 많은 쪽파는 파김치랑 양념청 둘 다에 쓰인다 하시며 알려주신 양념청 레시피는 아래 사진과 같다.
저렇게 손질된 재료들을 큰 플라스틱 통에 설탕 깔고, 재료 넣고, 다시 설탕으로 쌓고 하는 식으로 해서 설탕이 재료를 충분히 덮도록 통을 채우면 양념청 완성! 재료 대 설탕을 1대 1로 하셨는데 설탕은 일반 설탕보다는 황설탕이 더 잘된다 하셨다. 참고로 이스라엘에서 대파는 별로 없어서 쪽파로 대체하셨다.
양념청으로 만든 파김치는 바로 그날 저녁 맛볼 수 있었다. 저 많던 파가 요렇게 한 통 밖에 안된다고? 숨이 죽으니 부피가 거의 1/10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맛은 정말 최고였다. 한국에서 먹어봤던 것보다도 더 맛있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짜장밥이었다. 난 한국에서 급식 말고는 짜장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즐겨 찾지 않는 메뉴였는데 신기하게 이스라엘에서 먹는 짜장밥은 정말 맛있었다. 왜 모든 게 이스라엘에서 더 맛있는 걸까. 일단 사모님이 정말 음식을 잘하시는 것 같았다. 짜장밥을 만들기 위해 먼저 고기, 양배추, 양파 나머지 야채 등을 잘 볶으시고 마지막에 짜장 가루를 물에 타서 넣으셨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보니 짜장도 요리구나 싶었다. 그냥 인스턴트로만 알았는데.
결과물은 훌륭했다. 짜장도 진득하고 들어간 야채들 식감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고기가 많이 들어갔다는 거. 금방 한 따끈따끈한 짜장밥은 꿀꺽꿀꺽 목구멍에 잘 넘어갔다. 목사님 가정의 식구들 5명에, 우리를 포함한 손님 4명. 총 9명이 맛있게 먹은 짜장밥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여기는 토요일이 일요일 느낌이다. 이 날 우리는 주일 예배를 드린다. 다행히 교회가 목사님 댁에서 안 멀어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길가는 한산했는데 아마 트램이 운행을 안 해서 더 비어 보였나 보다. 거리에서는 잘 차려입고 예배를 드리러 가는 유대인 가족들을 여럿 봤다. 아니면 남자들 몇 명이서 가곤 했는데, 그들 차림이 검정 모자, 정장, 그리고 땋은 옆머리였다. 구레나룻 바로 앞부분을 길어서 땋은 머리들. 여기 오면 어디서든 한 명 정도는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 남자 옆에 여자들은(아마도 부인이겠지?) 단정한 긴치마를 입었다. 여자는 딱히 복장은 없나 보다.
어쨌든 아름다운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를 드린 후 다 같이 카레를 먹었다. 25인분이 넘는 카레를 준비하신 손길이 궁금했다. 여쭤보니 보통 사모님을 포함한 여자 집사님/권사님들께서 돌아가며 매주 식사를 담당하신다 했다. 다른 이민교회에서도 사모님께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시는 걸 생각해보면 해외에서 식당이 없는 일반적인 규모의 교회 사모님들은 교인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항상 담당하실 것 같았다. 그 수고와 헌신이 느껴지는 대목. 짐을 보니 큰 밥통 두 개에 몇 리터들이 반찬통과 많은 그릇, 수저 등이 있었다. 밥통은 하나는 밥, 하나는 밥 위에 덮일 것으로 채워져 있었고 수저만 해도 몇십 개였다. 그저 존경뿐. 우리의 점심 카레는 매운 버전, 일반 버전이 있었는데 그 안에도 각각 소고기와 닭고기가 들어있었다. 고-급 카레다. 우린 무생채 버전의 콜라비 생채도 계속 리필하면서 든든하게 잘 먹었다.
둘째 날(토요일) 오후에는 목사님 댁에 손님들 10명 정도가 오신다 하여, 우리도 도와드렸다. 어차피 오후 5-6시쯤은 되어야 대중교통도 재개되고 해서 산책 말고는 딱히 할 게 없기도 했다. 준비할 음식은 야채전, 치킨, 흰색 닭개장 등이었다. 닭개장을 위한 닭 손질은 다른 분들이 하고 계셨고, 우린 그날 밤에 출발할 짐들을 정리하고 메뉴 준비에 투입되었다.
남편의 역할은 닭 튀기기. 처음엔 집에서 직접 치킨을 하신다 해서 좀 궁금했다. 비주얼이 어떨지. 그냥 냄비에 기름 충분히 채워서 닭을 넣었다 빼는 걸까? 물론 원리는 비슷하지만 좀 더 전문적인 도구들이 있었다. 바로 음식 조리 타이머와 이동식 인덕션, 그리고 기름 잘 빠지게 하는 보관 틀도 있었다.
닭튀김은 쉬운 동작의 반복 작업이었다. 먼저 손질된 닭의 각 부분들을 튀김가루 반죽에 넣고 잘 섞는다. 그리고 저 기름 듬뿍 냄비에 9분을 재어 10-11개 정도만 넣고 충분히 튀겨준다. 왜 개수를 정하는지 남편에게 물어보니 그래야 어느 정도 일정한 온도로 튀겨질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배우며 닭 조각 40개 정도는 튀긴 것 같다.
야채전 만드는 팀도 따로 있어서 구경도 하고, 테이블 닦고 수저랑 냅킨 놓으면서 준비하고 있자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상차림.
정말 너무 만족스럽고 예뻤다. 야채전 가운데 있는 꽃은 그릇 위 나비랑 찰떡이었고, 저 오른쪽에 우리의 주인공, 치킨이 있다. 치킨은 간이 딱 맞고 겉이 바삭하게 튀겨져서 제일 인기가 좋았다. 우리가 언제 간을 했었나 싶어 여쭤보니 이스라엘 닭은 정결법(Kosher; 코셔) 때문에 닭에 간이 되어 시중에 팔린다고 한다. 그래서 약간 짭조름한 닭에 튀김옷을 입혔으니 이건 진짜 치킨이었다. 김치도 자세히 보면 네 종류(콜라비 생채, 파김치, 갓김치, 깻잎김치)나 되고. 정말 풍성했다. 인당 한 그릇씩 뽀얀 닭개장이 나왔는데 그것도 참 맛있었다. 나야 물론이고 손님들도 맛있게 먹고 가셨다.
이번 사모님 댁에 머물며 도운 경험들은 내가 앞으로 살림하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양념장은 각종 김치에 다 넣으셨다는데 그 결과가 매우 훌륭했다. 대규모 손님 상차림도 처음이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어 정말 감사했던 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