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주변 산책
여느 평범한 금요일 아침이다. 이제 오후부터 안식일 시작. 일어나자마자 배고파서 먹은 메뉴는 어제 발라디(baladi supermarket; 2011년부터 연 이스라엘 대형 할인 매장)에서 주문한 피타(pita) 빵과 훨씬 이전부터 우리 집 냉장고를 차지했던 후무스(hummus).
피타빵은 빵 가운데가 갈라지게 만든 포켓형 빵인데 보통 중동지역에서 여러 재료(야채, 고기, 소스 등)를 함께 넣어 먹는다. 일명 샌드위치 빵이라고나 할까. 그리스에서도 전통 빵이라고 하는데 두루두루 쓰이는 빵인 것 같다. 후무스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중동 지역 스프레드라고 보면 되고.
저기 후무스 앞면에 가격이 9.50 (단위: 세켈)이라고 적혀있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3800원(9.50*400원) 정도 한다. 400g에 4000원이라 해서 그렇게 싸진 않네 싶었는데 막상 글 쓰려고 한국과 비교해보니 훨씬 싼 거였다. 쿠팡에서 찾아보니 270g에 8450원..ㄷㄷ 이렇게 이스라엘에 와서 덕을 보는구나.
아침에 후무스에 샐러드, 빵만 먹으면 좀 허전했을 텐데 다행히 미리 삶아 논 칠면조 가슴살이 있었다. Coop shop이라는 우리 집 근처 마트에서 닭가슴살보다 더 싸게 팔길래 사온 녀석이었다. 칠면조는 닭보다 좀 더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래서 싸게 파나 보다. 같은 이유로 남편은 이 녀석 사는 걸 탐탁지 않아했다. 일단 한 번 사보자는 말에 오케이 해서 사게 되었다. 커피가루 넣고 삶아서 먹으니 난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남편은 난다고. 미각에 있어서는 확실히 남편이 더 예민하다.
어쨌든 기특하게 남은 한 통의 삶은 칠면조 큐브에 케첩을 챱챱 뿌리니 아주 조합이 훌륭했다. 또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프라이팬에 데운 피타빵은 전통시장(Machaneh Yehudah Market ; 마카네 예후다 시장)에서 산 것보다 훨씬 질이 좋았다. 탄 구석도 없고 균일하게 얇았다고나 할까.
이스라엘식 샐러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이스라엘 온 지 몇 주 안된 새내기지만 이 샐러드는 앞으로도 소울푸드가 될 것 같다. 만들기가 엄청 쉽고 맛있어서. 이스라엘은 각종 유제품, 공산품, 육류, 생선 등이 비싸지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과일, 야채가 싸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이가 참 싼데 그래서 만만하게 5-6개 구매해도 가격이 1500원(3-4 세켈) 정도밖에 안 한다. 대신 여기 오이는 한국보다는 작고 아담하며 사람들이 껍질 째로 먹는데 그러니 만드는 게 더 쉬울 수밖에.
이스라엘식 샐러드는 재료가 네 가지다. 토마토, 오이, 레몬즙, 올리브유. 올리브유는 없으면 생략 가능(남편은 절대 생략 못한다고 한다). 먼저 토마토, 오이를 4 등분하고 그 단면을 길게 늘어뜨려서 적당히 가늘게 잘라준다. 거기에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뿌리면 완성! 질리지 않는 상큼하고 세련된(?) 맛이다. 강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내일 예배를 위한 찬양 연습을 한 뒤 오후가 되었다. 왜 집에만 있으면 자꾸 입이 심심할까. 쉴 새 없이 해바라기씨를 먹고 나니 더 이상 먹으면 정말 안될 것 같았다. 비슷한 타이밍에 남편이 산책을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오케이!
그렇게 3-4시쯤 밖을 나와보니 하늘이 예술이었다. 우리 기숙사도 하늘과 어우러져서 정말 예뻤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니. 이스라엘 와서 처음 1-2 주간은 매일 한 시간씩 산책했는데도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물론 주로 밤에 산책하긴 했지만.
노을이 지기 직전이었나 보다. 하늘이 휘황찬란해. 우리는 자연스레 길을 건너고 평소 루틴(routine)대로 큰길을 따라 걸었다. 걷는 길은 오르막길인데 쭉 가면 문과 캠퍼스(The Mt. Scopus campus of Hebrew University)가 보인다. 중간에 다른 기숙사가 있는데 우리의 경로는 그 안으로 이어진다. 물론 학생증을 보여주고 들어가면 마치 공원처럼 나무가 꽤 많은 길을 지나 다시 기숙사 밖을 나오는 통로가 보인다.
오늘은 타이밍이 딱 좋았는지 해가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에 담기 어렵게 빨리 줄어들어서 어느새 붉은 잔재만 남아버렸다. 그것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진으로 찍으면 보는 것만큼 안 담겨서 아쉽지만 정말 예뻤다.
그렇게 우리들의 목적지에 왔다. 기숙사 근처 공터. 기숙사 자체도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데 거기서 더 올라갔으니 다른 곳보다 지대가 훨씬 높아졌나 보다. 그래서 여기서는 경치가 훤히 다 보인다. 저 멀리 황금돔(Dome of the Rock)도. 저 아래 아랍 동네도 보였다. 여기 예루살렘에서 아랍 동네는 보통 저지대에 있다고 한다. 뭔가 정치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패스. 어쨌든 이 공터는 집에서 15-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밤에 자주 와서 야경을 보던 곳인데 또 이때 오니 새로웠다.
어쨌든 이스라엘에 사는 게 또 한 번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사는 건 현실이라 살다 보면 다른 곳보다 불편한 점도 분명 겪지만, 전 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특별한 이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어 감사하다.
오는 길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불과 30-40여분 만에 이렇게 하늘이 바뀌다니. 어둑해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여기는 하늘 맛집 예루살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