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Spirituality : '영성'과 브랜드의 관계
세계 디자인 어워드로 유명한 iF에서 발간한 iF Design Report 2024 에서 흥미로운 꼭지를 발견해 브런치로 옮겨봅니다. 제가 소개할 꼭지는 ‘Neo-Spirituality’라는 작은 꼭지이고, 이 외에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링크에서 확인해 보세요. 아래 내용은 기본적으로 레포트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나, 제 나름의 편집과 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Spirituality의 추구
‘Neo-Spirituality’라는 단어를 번역하면 ‘차세대-영성’ 정도라고 해야 하는데, 어감이 좀 애매하네요. 영성이라고 하면 저는 종교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아 영문 그대로 Spirituality라고 사용하겠습니다. Spirituality는 쉽게 말하자면 ‘초월적인 경험이나 이에 대한 욕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신적인 것, 영혼의 성장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명상이나 기도, 관조 등을 통해 개인의 내적인 삶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목적을 가진 활동들을 하는 것 모두 Spirituality를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Spirituality라는 건 ‘이성과 논리’ 만큼이나,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해요. 위키백과에서는 영성의 정의를 1. 궁극적 또는 비물질적 실재 2.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내적인 길 3. 의거하여 살아야 할 준칙으로써 가장 깊은 가치들과 의미라고 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초월하는 경험을 추구하는 게 인간 기본 본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Spirituality 자체가 종교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종교가 대표적인 사례이기는 합니다. 전통적으로 종교가 이러한 Spirituality의 욕구에 대응해 의미를 부여해 주고(영적 성장), 표현 수단을 제공해 주고(기도, 미사), 경험할 수 있는 장소(사원과 성당 등)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낮아지는 종교의 존재감, 이 틈을 메꿔가는 브랜드
여기서 재밌는 점은 현대 사회, 특히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종교의 존재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사람들은 종교에서 찾던 Spirituality를 각자의 일상에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비즈니스, 특히 브랜드들이 알차게 공략해 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오늘날 일상의 순간들에 더 고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고 제품과 서비스가 이를 열심히 도와주고 있죠. 이 얘기는 단순히 iF만의 주장은 아닌 게, 경영학 분야에서도 인간의 영성과 마음이라는 주제가 199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불명확하고 까다롭다는 특성 때문에, 연구의 진척이 크게 높지는 않아 보인다고 하네요)
이런 Spirituality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초월적 경험 Transcendental Experience 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인지적인 것뿐 아니라 모든 감각적 지각이 함께 동원되는 종류의 경험입니다. 전통적으로 종교적 공간들인 성당과 교회, 사원, 신사 등은 이런 목적에 잘 맞게 감각이 설계된 공간들입니다. 오늘날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여행을 다닐 때 성당으로 교회로, 절과 신사로 여행을 다니곤 하지 않나요? 그러한 인지적(신앙) 경험이 없어도, 감각적 경험을 즐기고자 하는 행위인 거죠. 그런데 이러한 접근 방식이 브랜드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Spiritual 한 디자인 요소’가 브랜드의 장소와 경험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요.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요즘 유난히 이런 Holistic 한 분위기를 내는 카페, 호텔, 브랜드 숍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맥락인 것 같다’고 끄덕이더라고요.
현대의 Spirituality : 루틴, 리추얼, 세리머니
iF에서는 현대의 Spiritaulity, 즉 일상에서 초월적 경험을 하고 고차원 적인 의미를 찾는 활동들로 스포츠 경기, 셀프케어, 커피, 음악과 같은 활동들 까지로 넓게 정의합니다. Spirituality가 세속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새로운 시각을 보는 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웰빙을 추구하는 것, 자기 효능감을 찾는 것,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 안정적이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활동들 역시 모두 오늘날의 Spirituality의 영역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모든 활동들이 꽤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요? 그리고 이런 활동들과 함께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있죠 : 루틴, 리추얼 등은 이런 Spiritaulity 활동을 돕는 도구이자 브랜드에서 알차게 활용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루틴(Routine) : 루틴은 구조적 성격의 반복적 행동을 뜻합니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지적 노력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전략이죠, 이 루틴은 ‘이대로만 하면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크거나 작거나 그 어떠한 것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루틴은 화장품 산업에서 특히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어요. ‘스킨케어 루틴’ 같은 것 말이에요.
리추얼(Ritual) : 리추얼은 의미적으로 조금 더 강화된 Routine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경험이나 감정적 상태 등을 바꾸는, 그중에서도 특히 긍정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요. 루틴과 같은 일상적 활동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해서 특정한 리추얼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이 나오는 강도와 세기, 인터벌 등을 커스텀할 수 있는 샤워 헤드 제품은 일상적 샤워를 리추얼로 만들어 준다고 소개하죠. 숙면을 돕는 제품을 파는 곳에서 ‘자기 전 리추얼’ 이라거나, 문구를 파는 곳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리추얼’등의 메시지도 생각나네요.
세리머니(Ceremony) : 세리머니는 일련의 ‘리추얼’들이 특정한 순서를 가지고 집행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사회적인 의미가 부여됩니다. 전통적으로는 결혼식과 종교 행사가 있고, 현대에서는 스포츠 행사 개막식 같은 것도 그 예입니다. 룰루레몬은 이 ‘세리머니’를 활용하는 브랜드입니다. 매 년 축제라고 부르는 자체 행사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웰빙을 추구하는 리추얼’들로 이루어진 집단 행사를 열죠.
나가며 던져보는 우스갯(?) 소리 : 델타항공의 키노트, 현대 자본이 만드는 Spirituality의 정점
최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델타 항공이 극적인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델타 항공은 100주년을 자축하며, 초대형 돔 스피어에서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을 열었는데요. 저는 이를 보면서 다시금 이 ‘브랜드와 Spirituality’ 주제를 떠올렸습니다.
압도적인 몰입형 스크린으로 청중을 활주로 위, 비행기 조정석, 하늘 위로 끌어들이는 것 자체로 초월적인 감각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인상적인 포인트들은 따로 있었어요. 거대한 공간에 걸맞은 느낌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는 사회자의 어조와 오프닝 비주얼은 마치 거의 종교의식의 순간 같았고, 주제가 전환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반짝여대는 무대의 조명은 스포츠 개막식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영상 밑에 달린 ‘스피어 공간의 낭비’라는 신랄한 댓글도 공감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것이 현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Spirituality의 정점 아닐까’ 하는 우스갯 생각을 하며 흥미롭게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