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화. 우정브랜딩으로 비로소 이해되는 그들의 성공포인트
앞선 화에서 제가 우정 브랜딩이라는 개념의 도움으로 ‘신박한‘ 브랜드들이 드디어 이해되었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제가 주목했던 이 ‘신박한’ 브랜드들은 대표적으로 모베러웍스, 김씨네과일티셔츠, 슈퍼말차 등이 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제가 왜 이들을 소위 ‘신박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왜 이들이 우정브랜딩 패러다임의 대표 사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모베러웍스는 회사 ‘라인’에서 만난 동료들이 모여 함께 런칭한 브랜드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를 컨셉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데요, 이런저런 일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이 한두 개의 카테고리로 규정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그들은 메시지를 파는 브랜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모베러웍스가 브랜딩의 프레임을 바꾼 접근으로 유명세를 탄 데에는 그런 것들 보다도 그들의 접근 방식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기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를 통한 소통부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의 실체가 생기기 전부터 브랜드의 팬을 먼저 모은 브랜드가 되었죠. 저는 모티비(모베러웍스의 유튜브)의 초기 구독자는 아니었는데요. 브랜드가 유명해진 후 이 채널의 첫 동영상을 찾아 구경했다가 ‘정말 이 정도 내용과 퀄리티부터 소통을 시작했다고?’ 하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근로자의 날에 연 첫 팝업 행사에는 오픈 전부터 긴 대기줄을 이뤘는데, 사람들과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고 롤링페이퍼를 준비한 대표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김씨네 과일 티셔츠는 과일 프린트 티셔츠를 마치 시골 시장에서 파는 듯한 날것의 맥락에 가져다 놓는 유쾌함으로 많은 팬덤을 모았습니다. 티셔츠의 퀄리티에 대한 의견의 분분함은 좀 있는 듯 하지만, 저는 그래도 티셔츠가 꽤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유쾌함과 티셔츠가 예쁨 정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난 팬덤 파워를 자랑한다는 겁니다. ‘바이럴 패션 브랜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오프라인 팝업을 열 때마다 긴 대기행렬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지인들과 분석 아닌 분석을 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이 브랜드는 사실 대표의 팬덤, 그러니까 인플루언서 브랜드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과, 이를 넘어 ‘브랜딩은 일단 하고 보는 기세다, 이 기세에 끌리는 사람들이 팬이 된다’는 등의 결론으로 얼렁뚱땅 마무리 난 기억이 있습니다.
슈퍼말차 브랜드는 국내에 말차를 크게 유행시킨 첫 주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슈퍼말차가 저에게 신박하게 느껴졌던 건 더현대에서 열렸던 팝업을 방문한 이후였습니다. 이 브랜드는 분명 말차 브랜드인데, 팝업에선 막상 말차 제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타 브랜드와 협업한 말차맛 디저트부터 슈퍼말차의 BI가 적용된 옷과 양말, 컵, 비누와 휴지까지. ‘얘네는 뭘 파는 데지? 말차 팬덤 굿즈 판매소인가?’ 싶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브랜드가 빠르게 커서 당시 브랜드의 규모보다 팝업의 규모가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그 브랜드가 팝업만을 위해 모든 제품을 만들어 낸 건 아니었죠. 슈퍼말차는 이미 말차 제품보다도 ‘말차’를 키워드로 콜라보를 한 제품이 더 많은 브랜드였습니다.
이런 브랜드들이 저에게 ‘신박’했던 이유는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브랜드의 전제 조건과는 맞지 않는 사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브랜드라고 주장하려는 현상을 반대하고, 또 모든 게 브랜드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 마인드는 틱톡 편에서 드러나는데, 저는 무려 틱톡은 브랜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브랜드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 조건 같은 것들을 넘어야 했죠. 그동안 이 브랜드들이 제 마음속에서 가장 충돌을 일으켰던 ‘브랜드의 전제조건’들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브랜드는 어떠한 제품/서비스를 판다
- 그가 주는 ‘효익(Benefit)’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 브랜드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이전까지 브랜드가 메시지, 정체성 또는 핵심 경험이기 위해서는 앞선 전제 조건들을 갖고 있어야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곧 ‘무엇 What’으로 정의되는 패러다임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들은 전제조건을 만족하지는 못하는데도 이들이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전제조건이 잘못된 걸 수 있죠. 이건 분명 ‘브랜드의 정의’가 바뀌지 않고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이었습니다. 제가 우정 브랜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이 브랜드들이 설명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우정브랜딩의 패러다임에서, 브랜드는 곧 ‘누구 Who’ 인지의 문제로 정의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니, 전제조건들도 적합하지 않게 된 게 당연합니다. 이 우정브랜딩 패러다임의 전과 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앞선 패러다임에서는 소비자는 브랜드에게 ‘너는 나에게 무슨 의미야?(=뭘 해줄 수 있어?)’라고 묻는 거라면, 우정 브랜딩 시대에서는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묻습니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상호적인 관계로, ‘가치’를 교환하는 관계에서 ‘우정’을 교환하는 관계로 변화합니다.
이런 변화를 이 ‘신박한 브랜드’ 들은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했다고 정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체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용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사용자와 생산자의 눈은 모두 상향 평준화되었다. 분명 사용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 때다. 없는 데 있는 척하는 친구보다 없으면 없다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지 않은가, 우리는 진솔한 관계를 맺는 브랜드가 되고 싶었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 믿었다.” - 책 프리워커스 중
“브랜드는 소비자가 만들어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소비자를 가두는 이야기는 모두 브랜드 가이드에서 빼버렸어요. 오직 말차의 대중화, 편의성을 강조하되 나머지는 고객이 온전히 해석할 여지를 드리고 있습니다.” - 슈퍼말차 롱블랙 인터뷰 중
모베러웍스를 만든 모빌스그룹은 저서 프리워커스에서 ‘진솔한 친구 같은 관계를 맺는 브랜드가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우정브랜딩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 본질을 모주 깨닫고 있었던 것 같아요. 슈퍼말차 대표 역시 변화를 체감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정브랜딩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소비자와 공동제작을 하고, 참여감을 주는 겁니다. 슈퍼말차 대표는 이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우정브랜딩의 주요한 특징들은 3부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고, 1부의 남은 마지막화에서는 브랜딩 패러다임의 역사를 잠시 다뤄보려 합니다. ‘우정브랜딩’이라는 게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루하더라도 브랜딩 패러다임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