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브랜딩의 등장

1부 3화. 브랜드 패러다임의 역사


1,2화에 걸쳐 브랜딩의 패러다임이 메시지, 정체성, 경험에서 ‘관계와 우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이게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화에서는 지루하더라도 브랜딩 패러다임의 역사를 잠깐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브랜드의 어원은 ‘인장’에서 유래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제품에 꾹 찍어내던 그 인장은 누가 만든 물건인지 표시해 주는 것으로, 그가 의미하는 건 즉 “김씨네가 만들었으니 믿을만합니다”라고 품질을 보증해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이처럼 브랜드의 첫 시작은 제품 품질에 대한 보증이었습니다. 이 때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1:1 신뢰 관계가 곧 브랜드역할의 전부였습니다. 어르신들이 브랜드를 부르던 옛 말 ‘메이커’도 바로 이 생산자를 의미하는 맥락을 내포하는 거라고 해요.


그 이후 산업 사회로 넘어가면서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가 열립니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고 제품 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며 이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의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브랜드는 여전히 제품 품질을 보증해 주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1:1 신뢰관계를 넘어 왜 경쟁 제품이 아닌 우리 제품을 사야 하는지, 왜 이미 갖고 있어도 하나 더 사는 게 좋은지 이유를 설득해야 할 필요가 생겨납니다. 광고가 브랜드를 만드는 가장 중심 역할을 하던 시기입니다. 브랜드가 이미지와 메시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 브랜드를 가진 사람은 멋지고, 성공적이고, 트렌디하다 ‘는 등의 이야기를 심어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브랜드는 곧 메시지이던 시대,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라 아이덴티티를 파는 것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은 일방적이라는 것인데요. 큰 회사들이 거대 자본을 가지고 광고를 만들어 TV를 통해 메시지를 뿌려대는 게 주요한 성공 방식이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은 과잉 성숙해지고, 기술력도 발전해 품질 좋은 제품이 넘쳐나게 됩니다. 제품들이 상향평준화가 되자 오히려 경쟁은 걷잡을 수 없이 치열해집니다. 마케팅계에서는 레드오션, 블루오션, 보랏빛 소와 과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제품이 조금씩 다른 차별화 포인트를 가지고 나옵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죠. 이를 가지고 문영미 석학은 ‘이종적 동종화’ 현상이라고 칭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더 좋은 것, 부유한 것‘을 소유하는 건 크게 특별한 가치가 되지 못했습니다. 기업의 철학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소유보다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주목받습니다. 사람들은 이 경험과 철학을 인터넷을 통해 퍼 나르기 시작합니다. 모든 디자인과 마케팅에 ‘경험’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고, 브랜드는 경험을 기획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는 곧 인간성과 관계, 즉 ‘우정’인 시대가 펼쳐집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인터브랜드 한국 민은정 CCO 역시 최근의 저서를 통해 이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브랜드의 중심 개념이 what(어떤 가치가 있는가)에서 why(브랜드의 철학이 무엇인가)로, 다시 who(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반자-누구이며, 진심이 무엇인지)로 변화했다
브랜드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생각하자는 것이 why에서 who로 전환의 핵심이다. - 민은정, 저서 ‘브랜드가 곧 세계관이다’ 중에서


이런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터넷의 발달, 그중에서도 극도로 고도화된 연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초연결의 시대’라고 불리는, 모두가 모두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기성 브랜드들이 인터넷을 여전히 TV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 중 하나 또는 유통 채널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인터넷이 실제로 가져온 변화는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입니다. 앞서 몇 번 언급한 토마스 가드의 책에서, 그는 ‘인터넷은 기존의 대량 생산 시대가 가로막고 있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를 다시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 ‘고 표현합니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뿌리던 메시지를 수용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초연결의 시대에서는 브랜드와 소비자 간에 또 소비자와 소비자 간에 수많은 정보가 자유롭게 오갑니다. 정보는 더 이상 통제되지도 숨겨지지도 않게 되고 커뮤니케이션에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지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1:1 연결이 다시금 가능해집니다. 브랜드의 시작 지점이자 가장 근원이었던 지점으로 되돌아간 거죠. 물론 단순히 회귀한 것은 아니고, 그 양과 질 측면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 나선형의 구조로 회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구조도로 그려보았습니다. 토마스가드의 정리를 기반으로 내용을 보충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초연결의 시대가 브랜드를 가장 본원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소비자들은 다시금 브랜드를 하나의 사람처럼 받아들이고 친구와 같은 연결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걸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신박하다고 생각했던‘ 브랜드들 그리고 나아가 브랜딩의 여러 트렌드들이 정리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작은 브랜드가 거대한 기업보다 더 강하게 사람들을 움직이고, 개인 인플루언서가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하고, 고객이 직접 브랜드의 일부가 되며, 브랜드 팬덤이 공동체처럼 작동하는 시대를 보고 있죠. 소비자는 인스타그램이나 X에서 밈과 트렌드에 적극적인 브랜드에 호감을 갖고, 심지어 (국내에서는 드물지만)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앞으로 2부에서는 이 현상을 간단하게나마 하나씩 살펴보며 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체감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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