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화. 우정브랜딩의 징조, 첫 번째
앞선 1부(2,3,4화)에서 '우정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패러다임의 등장을 이야기했습니다. 서문에서 트렌드를 구성하는 데에는 현상과 경향성이 필요하다고 잠깐 언급했는데요, 1부에서 우정브랜딩이라는 트렌드의 경향성을 먼저 이야기했다면 2부에서는 그 현상을 하나하나 짚어보려 합니다. 그래서 2부에 붙인 별명은 '우정브랜딩의 징조들'입니다.
이번에도 결론부터 빠르게 이야기하고 가볼까요. 2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브랜드와 마케팅 씬에서 주목받는 많은 트렌드들의 본질은 결국 소비자가 브랜드에서 인간성과 관계를 기대하는 것에서 출발한 현상들이라는 점입니다.
2부 첫 화로 스몰브랜드를 가져왔습니다. 제 브런치에서 많이 다루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스몰브랜드를 매우 좋아합니다. 스몰브랜드는 말 그대로는 규모가 작은 브랜드를 뜻하지만, 단순히 작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제품, 철학, 비전 등 운영 방식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사랑받는 브랜드라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때 스몰브랜드는 마니아층의 영역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은 브랜드 씬의 하나의 줄기라고 해야 할 만큼 영향력이 커진 것 같습니다. 대기업들도 스몰브랜드를 때로는 경쟁 상대로, 때로는 매력적인 협업 상대로 여기며 그들의 트렌디함과 팬덤을 눈여겨봅니다. 서울 성수동은 사랑받는 스몰브랜드의 격전지고, 서점에는 스몰브랜드를 키워낸 사람들의 스토리를 담은 책이 즐비합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맥킨지는 2020년 미국 소비재 시장의 혁신을 이야기하며 '스몰브랜드의 폭발적 성장'을 지목했습니다. 메가브랜드가 전체 소비재 시장 성장률의 겨우 25%를 견인한 반면, 스몰브랜드는 무려 45%를 차지했다는 데이터를 발표했습니다. 신흥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The Economic Times는 인도 소비재 시장에서 '소규모 지역 브랜드들이 대기업의 독주를 흔들고 있다'며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한다는 고정관념은 힘을 잃은 지 오래고, 이들은 경쟁 구도를 재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차별화하는 방법을 대기업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대기업이 아닌 스몰브랜드에만 집중 투자하는 사모펀드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바라보면 스몰브랜드 현상은 다소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합니다.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파워 면에서 자원과 시스템을 보유한 대기업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제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느끼지 못할 리도 없고요. 사람들은 이제 이전과는 다른 이유로 스몰브랜드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스몰브랜드를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창업자의 스토리, 소비자와의 친밀한 교류, 마이크로 타겟팅 등. 그런데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스몰브랜드 뒤에는 사람이 느껴지고, 이들과 인간적 교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마크 W. 셰퍼도 저서 인간적인 브랜드가 사랑받는다(원제 Marketing Rebellion) 서문에서 자신이 마케팅 반란의 징조를 감지한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나는 고향 테네시주 녹스빌을 방문해 젊은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음료와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화장실 한편에는 지역의 소규모 회사에서 만든 비누들, 꿀&오트밀, 오이&알갱이처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재료가 표시된 다양한 종류의 수제 비누가 쌓여 있었다. 수제 비누는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아무 데서나 팔지도 않는다. 그중에는 아이보리(미국에서 과거에 유명했던 비누, 우리로 치면 '오이비누'정도 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보다 10배나 비싼 비누도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빠듯한 예산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부부가 왜 세계적인 회사가 만든 유명 브랜드 제품에 등을 돌린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물었다. "평생 아이보리 비누 광고를 보며 살았을 텐데 왜 아이보리나 다이알, 도브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 만든 비누를 사는 거예요? 이 브랜드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뭐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브랜드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 참 좋아요." 그녀의 이 간단한 말속에 심오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비즈니스,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격변의 근본 원인이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지역의 비누 회사와 설립자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후략)
전 배달의민족 마케터이자 인플루언서인 마케터 숭 역시 사람들이 스몰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로 '사람 냄새'를 꼽았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브랜드는 감정이 싹 빠진 무형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몰 브랜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사람 냄새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브랜드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창업자의 생각, 개성, 재능 등에 매력을 느끼고 반응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공감하며 브랜드를 사랑하게 된다. '대화가 통한다'고 느끼면 상대방을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요즘엔 제품을 알리는 것보다 창업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담긴 메시지를 잘 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스몰브랜드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했을 고객 한 명 한 명과의 직접적 연결을 위한 노력, 그리고 때로 시스템으로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창업자의 취향과 고민이 그대로 반영된 흔적.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인간성을 발견하고 친구 같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이 스몰브랜드를 좋아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 뒤의 인간성 때문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