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마케팅, 친구사이로 바라보기

2부 6화. 우정브랜딩의 징조, 마지막

메가 브랜드가 외면할 수 없는 우정브랜딩의 마지막 징조는 팬덤 마케팅입니다. 요즘 마케팅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가 ‘팬덤이 있는 브랜드’죠.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말은 결국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특별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우정브랜딩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팬덤’이라는 단어가 훨씬 강렬하고, 매혹적으로 들릴 뿐입니다.


제가 ‘우정브랜딩’ 이라는 개념을 이야기 했을 때, 한 지인은 “팬덤 마케팅이라는 말이 늘 조금 불편했는데, 우정브랜딩이라는 말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하더군요. 그가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팬덤’이라는 단어가 전제하고 있는 관계의 비대칭성 때문일 겁니다. 많은 브랜드가 ‘팬덤을 가진 브랜드’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 말에는 소비자가 자신들을 아이돌처럼 헌신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일방향적 기대가 숨어 있습니다. 실제로 팬덤을 가질 만한 브랜드로 매력적으로 행동하는 곳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팬덤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때로 브랜드의 오만함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딜로이트는 팬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팬덤은 같은 대상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다. 그들은 그 열정을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며,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한다.”


즉, 팬덤 마케팅의 본질은 커뮤니티와 참여감입니다. 이 점에서 팬덤은 관람객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집단에 가깝습니다. 이런 관점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는 개념이 바로 ‘패노크라시Fanocracy’인데요. 이는 팬fan과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로, 특정 대중문화, 브랜드, 또는 인물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가 주도권을 가지는 사회 현상을 의미합니다. 팬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의 공동 창작자이자 동료로 참여하는 현상도 이런 패노크라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팬덤 마케팅의 본질은 ‘우정브랜딩’과 다르지 않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서로 연결되고, 함께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말이죠.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스타트렉』 팬덤을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팬들은 특별한 수용 방식을 가진다. 집중해서 반복하고, 감정적 가까움과 비판적 태도를 동시에 지닌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고, 팬의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어 공유한다.”

이 정의를 조금 바꿔 읽어볼까요? ‘팬’을 ‘친구’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는 친구처럼 솔직할 수 있고, 친구처럼 응원하면서도 때로는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진정한 친구처럼 다가설 때,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브랜드를 지지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팬덤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존의 브랜드가 바라온 팬덤마케팅이 ‘존경과 숭배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공감과 협력의 관계’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제는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팬덤 마케팅’이라 불러온 대부분의 현상의 본질은 우정브랜딩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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