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만에 찾은 고향 산하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벼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였고, 활짝 핀 코스모스들이 가을바람에 나부낀다. 텃밭의 작물들도 가을 햇볕을 받아 영글어가고 있다. 한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이젠 그 결실을 맺으려 하는 것이다.
농작물이 익어가는 이맘때면 농촌은 다소 한가하다. 집 주변과 텃밭을 둘러본 다음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야산으로 향했다. 추석 연휴기간에 늘어난 몸무게도 줄이고 가을 정취도 만끽할 수 있는 등산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산은 높이가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산 정상에서는 멀리 떨어진 남해안을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산 입구에 서 있는 천년사찰은 여전히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역시 옛날처럼 맑고 투명하다. 절 건너편 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다소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오른다. 이곳은 초등학교 소풍 때 자주 방문했던 장소이다.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숲 속의 갈참나무들은 높다랗게 자라 하늘을 찌를 기세이다. 나무 사이로 뛰어다니는 다람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앙증맞다. 잠시나마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른 지 30여 분만에 등산로 주변에 마련된 체육공원에 도착하였다. 앞이 탁 트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데 바로 앞 소나무 가지 위에 산새 서너 마리가 앉아 지저귀고 있다. 청량하고 우아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자연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은 곤줄박이와 박새였다. 곤줄박이와 박새는 둘 다 참새목 박새과의 조류이다. 따라서 이 두 종의 새는 같은 집안 출신이며, 박새가 그 집안의 장손이라 할 수 있다. 검은색과 회색이 도는 박새와는 달리 곤줄박이는 얼굴과 가슴이 노란색을 띠고 있어 보다 화려해 보인다.
귀엽고 앙증맞은 이 새들을 보니 이들과 좀 더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대부분의 새들은 땅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 또한 이 먹거리를 좋아하기에 해마다 텃밭에 땅콩을 심는다. 간식으로 챙겨 온 땅콩을 배낭 속에서 끄집어내어 손바닥에 올려놓은 후 휘파람으로 새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곤줄박이 한 마리가 손바닥으로 날아들어 땅콩 한 조각을 물더니 잽싸게 도망간다. 이에 비해 박새는 아직 인간이 두려운 듯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를 눈치채고 땅콩 한 알을 멀찍이 떨어진 땅바닥에 던져주니 순식간에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쪼아 먹는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몸짓으로 표현할 수도 없지만, 이들 생명체와 마음속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인 것이다.
이 가슴 설레는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옆에 있는 등산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손에 땅콩을 쥐어준 다음 다시 새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나타나 손바닥 위의 땅콩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곤줄박이 한 마리는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내 핸드폰 위에 앉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내 손에도 땅콩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지금 내 눈 앞, 채 10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야생의 새 한 마리가 천진난만하게 노닐고 있다.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장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이 가냘픈 생명체를 바라보는 순간, 쥐눈이콩처럼 작고 새카만 곤줄박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곤줄박이 눈동자 속의 순수함과 친근함이 내 가슴속으로 전달되었다.
자연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로우(H. D. Thoreau)는 19세기 중엽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 속에서 생활한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그에 의하면 밭일을 하다가 발견된 새끼 들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는데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떠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야생동물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공포감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사례이다. 우리가 야생동물에 친근하게 대할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포획이나 살상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들은 인간과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원에서는 철새나 텃새들이 거리낌 없이 사람 곁으로 다가와서 먹이를 구한다. 야생의 사슴들은 수시로 골프장에 나타나 사람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풀을 뜯는다. 이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기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덫이나 독극물로 야생동물을 사냥하던 우리의 환경 속에서, 이들이 사람의 인기척만 나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행동은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수백 미터나 떨어지게 했다.
어린 시절, 꿩이나 비둘기를 보면 돌팔매질을 하거나 새총을 쏘던 전과(?)가 있는 우리들에게, 곤줄박이가 보여준 천진난만하고 호의적인 행동은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그들에게 저지른 과오에도 불구하고 곤줄박이는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로 다가온 것이다. 곤줄박이의 이러한 행동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를 수백 미터에서 수십 센티미터로 좁혀놓았다. 앞으로도 두 존재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곤줄박이의 깃털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