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장마가 시작되었다. 일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자연현상에는 긍정적, 부정적 양면성이 존재한다. 장마가 늦게 시작되면 무더위가 느리게 찾아와 보다 시원한 여름철을 보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는 가뭄이나 저온으로 인한 농작물의 발육저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맘때면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두꺼비이다. 예로부터 두꺼비가 나오면 장마가 든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두꺼비가 나타나서 장마가 오는 건지 혹은 그 반대인지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으나, 장마철이 되어 대기가 눅눅해지면 이 양서류는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두꺼비는 대개 어둡고 습한 두엄간이나 담벼락 밑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개구리나 도롱뇽과 같이 피부가 점액질로 덮여 있는 양서류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습성이다. 이러한 섭생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피부가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생존본능일 것이다.
두꺼비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도 사라지고, 그의 먹이가 되는 파리나 메뚜기도 자취를 감춘 오늘날, 뚫린 곳이라고는 머리 위 하늘밖에 없는 심산유곡이라 하더라도 두꺼비를 구경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 호감이 가는 외양은 아니지만, 며칠 전 여름의 진객 두꺼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텃밭에 두꺼비가 나타난 것이다. 피부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쭈글쭈글하고, 거무튀튀한 표피 위로 부스럼같이 생긴 검은 돌기까지 점점이 박혀 있다. 하늘로 향해 솟은 들창코는 장맛비에 속수무책으로 침수가 될 판이다. 새까만 눈동자 위에 일직선으로 나 있는 갈색의 눈꺼풀이 아미(蛾眉)처럼 보여, 그나마 몰골의 흉측함을 쬐끔이나마 완화시켜 주고 있다. 뒷다리에 선명하게 보이는 물갈퀴가 앞다리에는 보이지 않는다. 주로 육상에서 생활하다 보니 앞다리의 물갈퀴는 퇴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하찮은 미물에도 진화론이나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는 거창한 자연의 법칙은 적용되는 모양이다.
생김새가 비호감이라 두꺼비가 우리 선조들로부터 박대당하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로부터 이 생명체는 가정의 평안과 재복(財福)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복스럽고 탐스럽게 생긴 사내아이를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칭하거나, 금붙이를 두꺼비 형상으로 만들어 보관해 왔던 풍습은 이를 반영한다. 이 영물(靈物)은 또한 지혜와 의리를 상징하는 동물로도 형상화되고 있다. 두꺼비에게 밥을 챙겨주던 처녀가 마을 사당의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을 때, 자기 목숨을 바쳐 지네를 죽이고 처녀를 구했다는 설화는 두꺼비의 신의와 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구멍 난 독에 물을 채워 놓으라는 계모의 횡포에 맞서 자기 몸으로 구멍을 막아 콩쥐로 하여금 위기를 벗어나게 했던 두꺼비는 지혜와 희생정신의 표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두꺼비가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걸음걸이는 점잖고 느릿느릿하지만 개구리나 도마뱀처럼 경박하지 않다. 두꺼비는 코모도 왕도마뱀처럼 오른쪽과 왼쪽 다리를 번갈아 내딛으며 마침내 밭 가장자리의 덤불 속으로 사려졌다.
시골집 입구에 위치한 계단 난간에도 두꺼비가 조각되어 있다. 가족들의 건강과 가정의 번영을 기원하며 조상들이 설치한 조형물이다. 그 덕택인지 우리 후손들은 온 지구를 휩쓰는 괴질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장맛비를 뿌리던 시커먼 구름이 살짝 걷히더니 하얀 햇살이 속살을 드러내었다. 남쪽 산등성이를 넘어온 미풍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나무 숲 속으로 사라진다. 길 건너편 고구마 밭에는 고구마 꽃이 피었다. 빗물을 머금은 채 활짝 웃고 있는 꽃봉오리가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하다.
곧 소멸되리라 여겨졌던 역병이 온 세상을 덮친 지도 1년 반이 지났다. 지네의 독보다도 더 지독하고, 콩쥐 계모보다 더 간사한 이 병원체가 조만간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끈질긴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이 재난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두꺼비에게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