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동전

by 여송

지독한 겨울 가뭄이다. 시골집 주변의 산천초목들은 타들어가는 목마름으로 활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습기라곤 한 줌도 없이 바싹 마른 바람이 들판을 가로질러 내달린다. 논 가운데로 곧게 뻗은 신작로에서는 흙먼지가 보얗게 피어오른다.


대기는 건조하지만 바람은 북풍에서 남풍으로 바뀌었다. 집 앞마당에서는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이들이 서로 부딪칠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따스해진 날씨에 한결 경쾌하게 느껴진다. 겨우내 걸치고 있었던 패딩 점퍼가 마귀할멈의 망토처럼 무거워 보인다.

비록 험난한 세상살이에 나의 감수성은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지만, 모처럼 찾아온 온화한 날씨에 칙칙한 실내에만 머무르고 있으면 조물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간단한 등산 장비를 챙겨 집에서 다소 떨어진 산으로 향했다. 양지바른 남쪽 언덕에서는 아지랑이가 일렁거린다. 승무를 추듯 현란하게 나부끼는 이 봄의 전령은 추운 날씨에 깊이 잠들었던 나의 몸속의 세포들을 깨워 일으킨다. 봄은 벌써 우리 주변에 와 있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벌써 차들이 제법 모였다. 온 세상을 뒤덮은 역병으로 실내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앞다투어 봄나들이를 나왔다.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벌써 가을 단풍을 맞는 듯하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등산로 입구의 연못도 어느덧 말끔히 녹아내렸고, 간간이 부는 봄바람에 연못 표면 위에는 잔물결이 일렁거린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날리는 먼지로 바짓가랑이가 금세 흑갈색으로 물든다. 이래저래 필요해서 낀 마스크는 숲 속으로부터 폐부로 이르는 공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소독저처럼 바싹 마른나무줄기에도 새싹을 돋게 하는 봄이라지만, 전염병을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한 내 몸의 봄은 아직 아득해 보인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소나무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쉼터가 반갑기 그지없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능선 위로 끌어올린 다음 좀 쉬어가기로 했다. 군데군데 자리한 벤치에는 먼저 올라온 나들이객들이 자리하여 숨을 고르고 있다. 저 아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사바세계에서는 무표정했던 군상들도 여기에서는 모두 밝고 경쾌하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여 어깨를 짓눌렀던 배낭을 벤치 위에 내려놓는 순간, 거무튀튀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건 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하얀색 백동전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검붉게 변색되었고, 동전 표면 곳곳에 슨 녹으로 글자나 그림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위엄으로 가득 찬 세종대왕의 하얀 용안(龍顏)은 여름휴가철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구릿빛으로 변하였고, 권위의 상징인 기다란 수염은 봉두난발(蓬頭亂髮)이 되고 말았다. 동전 뒷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1978이라는 숫자는 이 주화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에 주조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1978년이면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이다. 당시 학생식당의 라면 한 그릇의 값이 80원 정도로 기억되는데, 백 원이면 가벼운 점심 한 끼 때우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반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돈으로는 자판기 커피 한잔도 빼먹기 힘들 정도이다. 쉼터를 이용하는 수많은 등산객들로부터 외면당한 이 동전은 그동안 급격히 추락한 화폐가치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세월에 따라 추락하는 것이 어찌 돈 뿐이겠는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 할지라도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흙으로 변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의 육체도 세월에 풍화되어 언젠가는 흙으로 되돌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사람들의 인생시계는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법정스님은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한 바 있다.

산을 내려오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비다. 이 봄비가 내리면 온갖 식물들이 소생하고 봄꽃이 피어날 것이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살 수는 없다. 내리는 봄비에 농작물을 파종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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