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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여행(2)

by 여송

여행 12일째인 9월 12일, 우리는 아침 일찍 서쪽 출입구를 통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진입했다. 이 공원은 미국 북서부 와이오밍, 몬태나, 아이다호 3개 주에 걸쳐 있으며, 이곳을 방문한 미국 국민이 채 10%도 안 될 정도로 오지에 위치해 있다.

1872년,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이 이곳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공원답게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다.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원시적인 생태계와 화산지형의 진수를 보여주는 지질학적 특성이다. 온천수에 포함된 유황 성분에 의해 바위가 누런 색깔을 띠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옐로스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공원은 로키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해발 고도가 높으며(평균 해발 2,400m), 3,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45개나 포함하고 있다. 대륙 분기선 역시 이 공원을 통과한다. 그 결과, 이 선의 서쪽 부분에서 발원한 강(스네이크 강)은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고, 동쪽에서 발원한 강(옐로스톤 강)은 대서양 쪽으로 흐르다가 최종적으로 멕시코 만에 이른다. 이 강들을 따라 흐르는 강물은 대부분이 온천수다. 이 물을 한국으로 가져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적인 생각이 들었다.

공원 내에는 야생의 회색 곰, 늑대, 사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온천이 10,000개가 넘는다. 길가의 손바닥만한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수시로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온천의 일종이다.

공원 중심부에 위치한 칼데라호인, 너비 45km, 길이 75km의 거대한 옐로스톤 호수가 화산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 호수는 해발 2,300 여 m에 위치해, 북미주의 호수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옐로스톤은 하나의 거대한화산이다. 만약 이 화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지 모른다. 이러한 위험한 폭발물 위에서 엘크나 무스 등 야생동물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사실 옐로스톤은 15년 전 미 중부지방을 여행할 때 방문했던 적이 있다. 이번 미 북서부와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니 따분하기도 하거니와, 웅장하고 아름다운 로키 산맥의 경치를 다시 보고 싶어 옐로스톤에서부터 유타 주의 브라이스(Bryce), 자이언(Zion), 아치스(Arches), 캐년랜즈(Cannyonlands)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여정에 포함시킨 것이다.

옐로스톤을 15년 만에 다시 방문하고 느낀 첫 소감은, 1988년 대형 산불로 타버린 수목들은 새싹을 틔어 생태계가 점차 회복되고 있으나, 야생동물의 종류와 개체 수는 급감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곳곳에서 연기를 내뿜던 간헐천의 수와 온천수의 수량도 확연히 줄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오지에 위치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엄격한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 역시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기후변화나 환경오염이라는 재앙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런 옐로스톤의 8자형 도로를 따라 여행을 하던 중 이번 여행의 종지부를 찍게 하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오후 5시경 하부 폭포(Lower Fall)에 이르렀을 무렵, 여행 일정도 빠듯하고 해서 폭포 아래로 내려가길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집사람은 이제 다시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내려가서 폭포의 생동감을 마지막으로 느껴보자고 한다. 이 폭포 역시 15년 전에도 본 적이 있으며,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거리도 멀어 내려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으나, 여자 앞에서는 함부로 눈도 치뜨지 못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중년 남자이기에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따라 내려갔다.

이 폭포는 높이가 94m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배 가량 높고, 수량 또한 풍부해 옐로스톤 관광시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이다. 폭포 바로 옆까지 다다라 우렁찬 굉음과 무시무시한 물살을 대하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폭포의 생동감을 만끽하고, 이제는 다시 못 볼 비경을 망막 속에 각인하였다. 갈 길 바쁜 나그네의 처지를 한탄하며 발걸음을 돌려 내려온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지그재그로 된 가파른 경사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집사람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순간,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급히 되돌아가니 길 옆 통나무 의자 위에 누워 있는 한 여자, 다가가 보니 얼굴은 창백하고 손발은 파랗게 물들어져 있었다.

급히 손발을 주무르고 마사지를 하면서 괜찮으냐고 물으니 그래도 괜찮단다. 일단 응급조치로 체온을 따뜻하게 한 다음 증상을 물으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고 했다. 한국에서 등산하면서 주워들은 상식으로 고산병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여기는 해발 2500m쯤 되는 고지이기에 예민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가던 미국 사람들마다 "Are You OK?"라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일단 차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되었다. 내 등에 업히라고 하니 기어이 걸어갈 수 있다고 했다. 팔을 내 목에 걸고 부축하여 지그재그 오르막길을 몇 번이나 쉬면서 올라가길 반복한 끝에 드디어 차에 도착했다.

공원 안내지도를 보니 다행히 공원 내 가까운 곳에 클리닉(Clinic)이 있다. 그곳으로 차를 몰아 도착하니 중년의 남자가 휠체어를 가지고 나와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여러 가지 의료기기들과 산소통이 준비되어 있었고 또 한 명의 백인 남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혈압, 심전도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시행한 후 수액주사와 진통제인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오후 6시경 클리닉에 도착한 후, 업무시간인 8시가 훨씬 지난 9시까지 치료한 결과, 두통은 다소 완화되었으나 의사인 듯한 사람이 이대로 하산하기에는 무리라고 하면서 헬기로 큰 병원으로 후송하자고 했다. 인간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것 같아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는 약 300km 정도로 헬기로는 한 시간, 자동차로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환자를 헬기로 수송하는데 필요한 서류에 사인한 후 밤 10시쯤 되니 헬기가 나타나 집사람을 싣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병원의 두 남자와 옆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Ranger(공원경찰)과 악수한 후, 차를 몰고 깜깜한 옐로스톤 밤길을 빠져나와 전속력으로 아이다호 주의 남쪽 도시 아이다호 폴스(Idaho Falls)로 향해 달렸다. 밤이 되어 모든 차량의 출입이 금지된 공원 안의 도로가에는 야행성 동물들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아 눈에 불을 뿜기도 하고, 도로 위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불상사 속에서도 한밤중에 옐로스톤 도로를 나 홀로, 그것도 속도 무제한으로 달리는 특권(?)을 맛보았다.

새벽 1시경 아이다호 폴스의 병원(Eastern Idaho Regional Medical Center)에 도착하여 응급실 벨을 누르니, 병원 직원이 옐로스톤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친절히 병실로 안내한다. 다행히 집사람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 말로는 여러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고 예상대로 고산병 증세인 듯하다고 했으며, 옆에 있던 간호사가 병원 주변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었다.

미국의 병원 시스템은 환자의 치료가 최우선이다. 옐로스톤의 클리닉에서부터 이 곳 아이다호 병원까지 환자의 치료, 후송 과정까지 수납하고 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은 환자를 일단 치료부터 해 놓고 집으로 청구서를 보낸다. 환자의 진찰이나, 치료, 수술을 위해서는 돈부터 납부해야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비록 집으로 날아오는 청구서 금액을 보면 기절하겠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환자 수송을 위해 동원된 헬기를 운영하는 회사인 Oregon Aviation company에서 보낸 청구서엔 $34,000이 청구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헬기를 탑승하고 4,0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되는 셈이다. 다행히 우리는 보험에 가입하고 있어서 치료비는 전액 보험처리, 헬기 탑승비용은 $2,000 정도만 우리가 부담하고 나머지는(얼마로 합의했는지 모르지만) 보험회사가 부담하는 선에서 헬기 운영회사와 보험회사 간에 합의가 되었다. 이렇듯, 미국에서 생활하려면 건강보험은 필수이며, 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치료는 받을 수 있으나 거기에 대한 대가로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여행 13일째가 되는 다음 날 아침, 집사람은 거의 다 회복되어 여행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마지막 일정으로 예정된 유타 역시 고산지대라 그곳 여행은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8시,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말이 쉬워서 귀가지, 이곳으로부터 프레스노 까지는 2~3,000km는 될 듯싶었다. 자동차의 크루즈 컨트롤을 75마일(120km)에 맞춰 놓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네바다주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데에만 12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연속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후 8시쯤, "Welcome to California"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 경계 지점의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경사가 가파르고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좁은 도로가 시작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고, 도로 한복판에 사슴처럼 생긴 동물이 서있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View Point, Elev. 9900ft"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아뿔싸, 우리가 이 한밤중에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해발 3,000m의 험준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고 있구나! 순간, 온몸에 맥이 탁 풀리며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망대는 대부분 시야가 탁 트인 정상 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인지, 다행히 곧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험난한 길을 1시간 정도 걸려 내려오니, 저 멀리 민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확실히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에 온 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편한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 차를 운행하니 캘리포니아 중부를 가로지르는 5번 고속도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새크라멘토 남쪽쯤 되는 듯했다.

여기서 집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한밤중에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프레스노 집에 도착하여, 11,000km에 이르는 길고도 험난했던 "아주 특별한 여행"을 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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