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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부지방의 두 조각상

by 여송

미연방을 구성하는 50개 주(州) 중에서 다코타(Dakota)라는 지명을 가진 주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남 다코타(South Dakota)이고 다른 하나는 북 다코타(North Dakota)이다. 이 주들은 미 본토의 중부내륙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오지이다. 두 주 모두 내륙지방이고 위도가 높아, 겨울 기온이 영하 50도 가까이 내려갈 정도로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이곳은 산악지형에다가 농지도 협소하여 중부 남쪽의 대평원(Great Plains)과는 달리 농업도 발달하지 못했으며, 인구밀도도 낮은 편이다. 두 주를 동서로 횡단하는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뜸하고 민가도 거의 없어, 주유소가 나타날 때마다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필수사항이다.

다코타라는 지명은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들은 라코타(Lakota)족 등 다른 부족들과 함께 수(Sioux)족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코타 주와 그 주변에는 수 폴스(Sioux Falls)나 수 시티(Sioux City)등 이들 부족들의 지명을 딴 도시들이 많다. 이들은 다코타 주의 산악 지역을 주 근거지로 하여 들소나 사슴을 사냥하거나 목축을 하면서 그들만의 삶을 이어왔다. 이들 부족들이 누볐던 숲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검은 빛깔을 띠었기에, 그들은 이곳을 검은 언덕(Black Hills)이라 불렀다.

미국의 변방지역인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남 다코타 주의 러쉬모어 산(Mt. Rushmore)에 대통령 인물상(Parade of Presidents)이 생기고 난 후이다. 1923년 사우스 다코타 주의 역사학자 로빈손(Doane Robinson)은 블랙 힐스의 바위산에 미국의 정치와 경제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4명의 대통령[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함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의 얼굴을 조각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조각가였던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을 초청하여 작업을 부탁하였다. 1927년 8월 작업이 시작되었고 1941년 3월,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작업자인 보글럼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후 보글럼의 아들이 아버지의 작업을 이어받아, 14년이 지난 1941년 10월 드디어 완공을 보게 된다. 4명의 대통령들의 얼굴은 길이가 각각 18m나 되며, 이 작업으로 생긴 깨진 돌조각은 무게가 거의 50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조각의 대상이 된 대통령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기에, 미국인들은 이곳을 “민주주의의 전당”이라고 부른다.

한편,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러쉬모어에서 27km 정도 떨어진 블랙 힐스 산자락에는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내어, 전설적인 인디언 족장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를 조각하는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크레이지 호스는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미친 말“이지만 ”성난 말“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이 조각상은 러쉬모어의 대통령 인물상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8년에 착공되었다. 작업이 시작된 50년이 지난 1998년, 겨우 얼굴 부분만 만들어졌다. 크레이지 호스가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의 규모는 전체 높이 170m, 폭 200m, 얼굴 27m로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 작품이 완성이 되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예술품은 대통령의 인물상보다 규모가 훨씬 크며,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품이 될 것이라 한다.

크레이지 호스는 수(Sioux)족을 이끌고, 1876년 블랙 힐스의 리틀 빅 혼(Little Big Horn) 전투에서 커스터(George Custer) 중령의 미 제7기병대를 전멸시킨 영웅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불패를 자랑하던 커스터 중령은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 크레이지 호스는 비록 이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미국 기병대의 끈질긴 추격으로 남은 부족을 이끌고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는 네브래스카 주의 로빈슨 요새에 수용됐다. 1877년 9월, 배신한 인디언 전사가 그를 붙잡은 사이, 그 틈을 노리고 미국 병사가 찌른 총검에 숨졌다. 당시 그는 약관 35세의 나이였다. 그의 부모는 그를 사우스 다코타의 상처 난 무릎(Wounded Knee)이라는 곳에 묻었다.

크레이지 호스와 백인들이 리틀 빅 혼에서 전쟁을 벌였던 이유는 블랙 힐스에서의 금광 발견으로 인하여, 서부개척에 나선 미국인과 그곳을 터전으로 생활하던 인디언 사이의 충돌 때문이었다. ‘강이 흐르고 풀이 자라는 한, 다코타의 블랙 힐스는 영원히 수(Sioux) 인디언의 신성한 땅으로 남는다’는 1868년 미국 대통령과 인디언 사이에 체결된 협약을 무시하고, 미국인들이 황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은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lkowski, 1908∼1982)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러쉬모어에서 대통령 인물상을 조각할 때 보글럼의 조수로 잠시 일했던 경험이 있으며, 이것을 계기로 그는 인디언 추장이던 헨리 스탠딩 베어(Henry Standing Bear)의 요청을 받고 전설적인 인물을 조각하는 작업에 참가한다. 그 역시 역사적인 조각상의 기초 작업만 끝낸 채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은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그 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도 거부한 채, 관광객들의 입장료와 후원금으로 힘든 이 역사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러쉬모어 산의 대통령 인물상을 방문한 때는 1997년이었다. 조각상 앞에 서니 그 웅장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미국의 문화는 대체로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그렇고 디즈니랜드 등이 그렇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는 대부분 규모는 작으나 화려하고 섬세하다. 다보탑과 석가탑, 고려청자 등이 그 예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인물상을 조각한 수백 명의 작업자들의 명단을 새긴 기념비가 서 있다. 조각 작업을 하다 희생된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는 장비나 기술이 열악하여 로프에 매달려 망치와 정으로 조각을 하였기에 인적, 물적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념관 안에는 당시의 작업 모습이 사진으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대통령의 코 위에서 작업하는 작업자가 파리 만하게 보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러쉬모어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산 위, 큰 바위에 페인트로 말을 탄 사람 모습을 그러 놓은 것이 보이기에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저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백인 남성으로부터 인디언 추장이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그것이 크레이지 호스와의 첫 대면이었다. 당시에는 조각 작업의 초창기로 바위에 하얀 페인트로 밑그림 정도만 그러 놓은 것으로 보였다. 황혼의 햇살을 받아 검게 빛나는 그 바위 덩어리는 인디언의 얼굴색이었고, 러쉬모어의 하얀 대통령 얼굴과는 대조적이었다.

러쉬모어 산의 대통령 인물상은 미국 민주주의와 번영을 상징한다. 반면, 같은 지역에 위치한 인디언 전사(戰士)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은 백인들의 침략에 대한 인디언 원주민들의 저항의 표상(表象)이다.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두 집단을 대표하는 조각상이지만 모두 함께 공존한다. 이것이 다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포용하여 발전과 번영을 이루어 내는 미국의 저력이다. 원래 다코타라는 말은 수(Sioux) 부족의 말로 친구나 동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들은 친구이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가 싸움이 끝난 현재 다시 동지로 남아 공존하고 있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의 한 주보다도 좁은 코딱지만 한 땅덩어리에서, 남북이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로까지, 그것도 단일민족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1997년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으로 모두가 힘든 생활을 영위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미국에서 달러당 900원에서 2,000원으로 오른 환율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해 수제비로 연명해야 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 두 놈은 수제비 질렸다고 맛있는 것 좀 사달라고 보채기 일쑤였다. 어느 나라든, 회사든, 가정이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국땅에서 실감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도 10여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우리는 언제 러쉬모어에 있는 대통령 인물상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을 배출할 것인가? 모르긴 해도 조만간 이 꿈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의 대변자이며, 그 국민 중에서 선출된다. 이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성숙하지 않는 한, 훌륭한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의 정탐 내용을 기초로 선조 앞에서 일본 침략의 가능성을 보고할 때에도 동인과 서인이 당파 싸움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여 결국 나라가 일본군에 짓밟혔듯이, 한 나라가 멸망할 때에는 반드시 내부의 문제로 국력이 약해진 다음 외부세력에 의해 무너진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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