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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Sep 06. 2017

사라져 버린 직업-땅꾼

  뱀은 언제 봐도 징그럽다. 배를 땅에 대고 기는 모습 하며,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는 행동들은 사람들의 저주를 받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조그맣고 톡 불거진 눈은 간사하기 짝이 없다. 오죽했으면 간사한 사람이 사시(斜視)처럼 눈을 뜨고 사리에 맞지도 않는 행동을 할 때 그의 눈을 뱀눈 같다고 표현할까?

  지금은 뱀을 보기도 힘들고,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이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어 뱀을 잡는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징그럽게 생긴 뱀을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땅꾼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긴 쇠꼬챙이와 신발주머니 같이 생긴 보자기를 메고 다녔다. 쇠꼬챙이는 끝이 'ㄱ'자 형태로 구부러져 있어 뱀의 머리를 누르기 쉽게 되어 있다. 보자기는 천으로 만들어져서 잡힌 뱀이 그 속에서 질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땅꾼들은 뱀이 보이면 쇠꼬챙이로 재빨리 뱀의 머리를 누른 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뱀의 목을 집어 뱀이 꼼짝 못 하게 한 다음 뱀 보자기에 넣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도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뱀은 인기척이 나면 도망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뱀의 머리를 누르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독을 가진 뱀을 잡는 경우에 필요하고, 독이 없는 뱀의 경우는 그냥 맨손으로 뱀을 집어 보자기에 넣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이렇게 잡은 뱀들은 도회지의 생사탕(生蛇湯) 집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곳은 일종의 건강원으로, 살아있는 뱀을 달여 팔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 요즈음에는 다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이 간판들이 달린 가게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어렸을 적에 뱀을 잡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이 길로 나선 이유는 배고픔 때문이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날, 배고픔은 일상이었고, 육류나 생선 같은 동물성 식품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겹도록 하루해가 긴 여름철, 출출해지거나 한 잔의 술이 생각날 때면 스스럼없이 뱀 사냥 가자고 하면서 쇠꼬챙이와 신발주머니를 준비하곤 했다. 우리는 뱀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적인 땅꾼은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이 직업에 가끔씩 발을 들여놓는 일종의 아마추어 땅꾼이었던 셈이다.

  뱀은 겨울에는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봄부터 가을에 걸쳐 활동하는데, 행동이 활발한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뱀을 잡는 적기이다. 이 시기에 뱀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뱀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뱀은 변온동물이라 기온에 따라 체온을 조절하지만,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는 뱀도 서늘한 곳을 좋아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수풀 속이나 커다란 바위 밑에서 더위를 피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장소 중의 하나가 묘지 앞의 상석 밑이다. 한 번 데워지면 잘 식지 않는 한옥의 구들장처럼, 선선한 밤중에 냉각된 상석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도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뱀은 이 상석 밑에서 똬리를 틀고 소위 한여름의 피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도 그러하지만, 뱀도 이렇게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쉬느라 경계가 소홀해지고 방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땅꾼은 혼자서 뱀을 잡으러 다니지만, 마을 주변 야산의 상석 밑을 표적으로 삼았던 우리들은 3인 1조로 행동하였다.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우두머리가 있었다. 뱀 잡는 기술과, 상석 밑의 어둠 속에서도 뱀 종류와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나이로도 제일 연장자였다.

  상석을 발견하면 두목은 땅에 엎드려 돌 주변의 풀을 헤집고 어두컴컴한 상석 밑의 뱀 종류와 숫자를 파악한다. 무리 속에 독사가 포함되어 있으면 쇠꼬챙이를 끄집어낸 다음, 나머지 두 조수에게 상석을 들라고 명령한다. 상석이 들어 올려지고 백주의 대낮에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던 뱀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순간, 두목의 꼬챙이가 재빨리 독사의 머리를 누른다. 나머지 능구렁이, 꽃뱀들은 맨손으로 보자기에 집어 담았다.

  당시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던 뱀은 10종류 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중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뱀은 물뱀, 꽃뱀, 능구렁이, 까치독사, 쇠살모사, 구렁이 등 6종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이들의 모양과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해 보기로 한다.   

물뱀(출처 : 손상호, 이용옥, 주머니 속 양서·파충류 도감, 황소걸음, 2007)

   물뱀은 무자치라고도 하며 논이나 도랑 근처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이 뱀은 물을 좋아하여 헤엄도 잘 치며, 논이나 풀 속의 개구리, 메뚜기 등을 먹고 산다. 독이 없으며, 산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배 부분에는 검은색 네모 무늬가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자기방어수단이 없 사람 등 천적을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 가장 흔하다 보니 값도 가장 싼 뱀이다.

능구렁이(출처 : 국립중앙과학관 -  포유류·양서·파충류 정보)

  능구렁이는 땅꾼들 사이에서는 능사로 불리는, 독이 없는 뱀이다. 붉은색의 피부에 몸길이는 짧은 편이다. 주로 산이나 밭에서 서식한다. 가을철 고구마를 캐면서 땅 속에 있던 이 뱀을 여러 마리 발견한 적이 있다. 쇠스랑으로 밭을 파는데 고구마 대신 뱀이 뒤집혀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들은 기절초풍하겠지만 우리는 '웬 횡재냐' 하면서 담담하게 이 녀석들을 고구마 광주리에 주워 담았다. 이 뱀 한 마리가 고구마 한 광주리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이었으니... 특히 두꺼비를 문 능구렁이는 약효가 있다고 했다. 이 녀석도 인기가 있는 뱀이라 값이 제법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꽃뱀(출처 : 국립중앙과학관 - 포유류·양서·파충류 정보)

   꽃뱀은 화사(花蛇), 유혈목이, 너불대 등 그 명칭이 다양하다. 피부에 꽃처럼 울긋불긋한 무늬가 있어서 꽃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호색을 띠기 때문에 가을이 되어 풀들이 말라 누렇게 변하면 몸 색깔이 갈색으로 변한다. 예전에는 이 뱀이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목 주위에 독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사로 분류되었다. 독니가 목구멍 깊숙한 곳에 있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해서 무독인 뱀으로 알려진 것 같다. 우리도 이 뱀은 독이 없는 줄 알고 맨손으로 다루었다. 힘이 세고 날렵하여 보신용으로 인기가 있으며, 독사와 비슷한 다소 고가의 값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간혹 꽃뱀은 남자만 무느냐고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까치독사(출처 : 손상호, 이용옥, 주머니 속 양서·파충류 도감, 황소걸음, 2007 )

 까치독사는 살모사의 일종으로, 예전에는 많이 발견되었으나 지금은 개체수가 줄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었다. 이 뱀은 머리가 삼각형이며, 꼬리가 짧고 뭉틀한 모양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는 뱀 중 가장 맹독을 지닌 독사이다. 몸 표면에 까치처럼 희고 검은 무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까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논이나 강가에서 발견되는 물뱀과 달리, 주로 산이나 밭처럼 물기 없는 곳에서 생활한다. 생사탕 집에서는 이 뱀이 구렁이 다음으로 비싼 값이 매겨져 있었다.

쇠살모사(출처 : doopedia.co.kr)

  쇠살모사는 까치살모사보다 몸집이 작고 생김새도 가늘어 날렵하게 생겼으며, 피부색도 연한 편이다. 이 뱀도 살모사의 한 종류이며, 머리는 삼각형이고 떼를 지어 겨울잠을 잔다. 그러다 보니 가끔 공사현장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한다. 독을 가진 뱀으로, 주로 무덤가의 돌로 쌓아 올린 축대 등에서 서식한다. 주 먹이는 들쥐나 개구리 등이다. 뱀 집에서는 까치독사와 같은 값을 쳐 주었다.  

구렁이(출처 : 서울동물원 동물원 정보)

   구렁이는 우리나라의 뱀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뱀이다. 다 자란 구렁이는 길이가 2m 정도 된다. 독은 없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뱀 중의 귀족이라 할 수 있다. 몸집의 크기에 걸맞게 행동이 느리고 점잖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란 말은 이 뱀의 속성을 잘 표현한 속담이다. 민가 주위에서도 많이 발견되며, 그래서 그런지 이 뱀과 관련된 설화나 우화가 많다. 예전에는 집 안이나 주위에서 사는 구렁이를 집 지킴이라고 하여 이를 숭배하는 토속신앙도 있었다. 집 지킴이가 나가거나 죽으면 그 집에 액운이 따른다는 믿음도 있었다. 독사의 20배 정도의 값을 쳐 주었으니, 구렁이 한 마리를 잡는 날은 횡재하는 날이었다. 환경오염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바닷가 섬에서 주로 활동하는 섬치라는 뱀도 있는데, 몸집이 크고 가물치처럼 얼룩덜룩한 피부를 가졌다. 이 뱀은 우리 주변에는 볼 수가 없었고, 생사탕 집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아마추어 땅꾼이지만 뱀을 잡아본 경험이 있기에, 독사에 물리면 죽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의 독사인 살모사나 꽃뱀(화려한 외모답게 무늬만 독사)은 독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들로부터 물려도 죽는 경우는 드물다. 땅꾼들도 뱀에 물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본 바로는 죽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독사에 한쪽 다리를 물리면 그 다리는 두 배 정도의 크기로 붓는다. 이런 상태에서 보름 정도 지나면 부기가 빠지면서 정상으로 돌아온다. 요즘엔 해독제가 널리 보급되어 있기에, 뱀에 물리면 즉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큰 문제는 없다. 그렇다고 뱀에 물려 좋을 것은 없으며, 야외 활동 중에 뱀을 만나면 조용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가을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뱀도 월동준비를 서두른다. 그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봄부터 먹이활동을 하여 영양분을 비축한다. 이 시기가 뱀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여름보다는 가을에 뱀을 조심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년 봄, 시골집 주변을 정리하면서 화단과 텃밭 사이의 돌담 틈에서 뱀 허물을 별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 주위에는 붉은 벽돌로 담장이 둘러져 있어, 뱀이 이 텃밭을 근거지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시골의 지붕 서까래에서까지 뱀 허물을 보아왔던 우리들에게, 텃밭의 뱀 허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산과 들에서조차 보기 힘들어진 뱀이 우리 집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을 따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늦은 가을, 집 뒤편 소나무 정원수 아래에서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짙은 갈색으로 변장한 꽃뱀이었다. 녀석은 날씨가 쌀쌀지자  양지바른 곳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놈은 남의 터전에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했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이들 조상들에게 저지른 과거의 만행(?)에 대한 죄의식이 마음 한 구석에서 발동하여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필요하면 얼마든지 자리를 내어줄 테니 편안하게, 그리고 마음껏 쉬려무나...'


  그로부터 일 년 정도 지난 8월 중순쯤, 나는 시골집 대문 바로 앞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무늬도 화려한 꽃뱀이었다. 차가 몇 번을 치고 다녔는지 뱀의 울긋불긋한 가죽이 아스팔트 위에 코팅이 되어 있었다. 아스팔트가 졸지에 명품으로(뱀가죽은 지갑이나 가방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됨) 치장을 했다.

  욕심 많은 인간의 손을 피해서, 농약과 폐수, 쓰레기로 오염된 논과 밭을 건너서, 간신히 살아남은 가련한 이 생명체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는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젠 이 허약한 동물이 살아갈 공간은 한 뼘도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측은한 마음도 잠시, 나는 이 뱀이 우리 집에서 살던 그 뱀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비록 나 자신도 이들의 생존을 위협했던 과거가 있는 사람이지만, 아무리 하찮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명체라도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이 세상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땅꾼의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는 오늘도 우리 집 텃밭에서 작년 가을 마지막으로 본 뱀이 다시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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