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이면 생각나는 음식은 냉면이나 콩국수이다. 냉면은 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가 어렵고, 육수 또한 들어가는 재료가 많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해서 가정에서 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트에 가면 인스턴트 냉면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이 재료로 만든 냉면과 가정이나 냉면전문점에서 내어 놓는 냉면과는 그 맛에 차이가 난다.
반면, 콩국수는 주재료인 콩을 구하기도 쉽고 요리하는 과정도 어렵지 않아 일반 가정에서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메뉴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철, 시중에서 냉면집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콩국수를 메뉴로 내어 놓은 식당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콩국수를 파는 식당에서는 콩을 삶아 콩국을 만드는 것조차도 번거롭다면서 볶거나 삶은 콩을 빻아 만든 콩가루를 납품받아 물에 개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콩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주재료인 콩이다. 콩은 우리 땅에서 자라 늦가을에 수확하는 메주콩이 좋다. 수확시기가 늦어 시골에서는 이 콩을 늦콩이라고 하는데 다른 콩에 비해 알이 굵고 고소한 맛이 더하다.
콩국수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콩을 불리는 것이다. 콩은 수확 후 보존을 위해 바싹 건조시켜 놓았기 때문에 최소한 5시간 이상은 물에 담가 불려야 한다. 불리지 않고 바로 삶은 콩은 딱딱하여 갈기가 힘들고 고소한 맛도 줄어든다. 불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찬물 대신 따뜻한 물을 사용하면 된다.
불린 콩은 삶아야 하는데, 이 삶는 작업이 콩국수 만드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삶는 시간이 너무 짧으면 삶은 콩의 강도가 역시 딱딱해진다. 반대로 너무 오래 삶으면 물러지고 메주 냄새가 나며 고소한 맛 역시 떨어진다. 콩을 불린 정도에 따라 삶는 시간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끓은 후 불을 낮춘 상태에서 10분 정도 더 삶다가 불을 끈 후 10분 정도 뜸을 들이는 것이 적당하다.
그다음 단계는 삶은 콩을 믹서나 맷돌에 넣고 가는 작업이다. 삶은 콩을 그대로 갈면 콩국의 맛이 텁텁하고 뒷맛이 개운하지 못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은 콩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콩알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살짝 비틀면서 힘을 주면 쉽게 껍질이 까진다. 콩의 양이 많지 않을 경우에만 이 작업이 가능하다.
삶은 후 껍질을 제거한 콩
콩을 가는 시간도 콩국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데 오래 갈수록 그 맛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난다. 콩을 갈 때 첨가하는 물의 양 역시 콩국수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물을 너무 많이 부으면 콩국의 맛이 밋밋해지고, 너무 작게 넣으면 걸쭉해져서 믹서를 사용하는 경우 갈리질 않는다. 특히 여름철, 콩국수에 얼음을 넣는 경우에는 물을 많이 넣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콩국이 만들어지면 최종적으로 소금을 첨가해서 간을 맞추면 된다.
콩국이 완성되면 그다음에는 국수를 삶아야 한다. 국수 역시 삶는 시간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삶는 시간이 짧으면 쫄깃한 맛은 있는 반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반면 너무 긴 시간에 걸쳐 삶으면 면발이 불어 맛이 없어진다. 경험상, 콩국수용 국수는 물국수나 비빔국수용보다 다소 오래 삶는 것이 맛과 소화 작용이라는 건강 측면에서 보다 나은 것 같다.
삶은 국수는 물기를 뺀 후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콩국을 부어주면 콩국수가 완성된다. 콩국수에는 물국수와 달리 부추나 호박나물 같은 고명을 얹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콩국 본연의 고소한 맛을 느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콩국수에도 깨소금이나 오이채를 얹어 주면 고소한 맛이나 시원한 맛을 배가시킬 수 있다.
가난했던 옛적, 여름철의 주된 점심메뉴는 국수였다. 국수 중에서도 멸치육수로 만든 물국수가 주 메뉴였고, 손이 많이 가는 콩국수는 자주 먹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믹서는커녕 맷돌도 귀했던 시절이라, 콩을 갈기 위해서는 동네 유일의 맷돌 소재지인 방앗간을 찾아야 했다. 콩국수를 만드는 날이면 어머니는 삶은 콩을 머리에 이고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방앗간으로 향했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모처럼의 별미인 콩국수를 맛본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맷돌을 돌렸다. 열심히 돌리다 보면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가 빠지는, 소위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여름철, 주말이나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오면 점심 메뉴로 수시로 콩국수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 고향집 텃밭에 해마다 최우선으로 심는 작물은 콩이다. 어머님은 생전, 수입 콩으로 메주를 쑤어 보니 발효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 후 해마다 손수 콩을 재배하셨다. 그 콩은 보관, 운송, 판매에 이르는 긴 시간을 견디기 위해 방부처리를 해야 하므로, 메주 띄우는 데 필요한 메주곰팡이 등 미생물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어머니 가신 후 텃밭의 콩 농사는 이젠 아들이 승계받아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오늘도 텃밭에는 한 달 전쯤 심은 콩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나는 수시로 이 소중한 작물을 돌본다. 나에게 필요한 콩의 분량만을 재배하기 때문에 콩밭의 면적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농사일이란 작물의 품종이나 양과 관계없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김매기, 거름주기, 병충해 방제 등 수많은 농부의 손길이 수확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수확이 끝난 후의 선별, 건조, 보관 등 후속 작업에도 녹록지 않은 손길이 필요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콩밭을 매노라면 그야말로 베적삼이 땀에 흠뻑 젖는다. 비록 칠갑산이라는 가요에 나오는 아낙네는 아니고, 포기마다 눈물 대신 땀방울을 심지만. 그렇지만 앞으로 맛볼 콩국수와 된장국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생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할 정도로 아미노산이 풍부하면서도 동물성 식품이 가지는 콜레스테롤 등 인체에 해로운 성분은 거의 없다. 또한 이 식물은 여름철 흘린 땀이나 떨어진 입맛으로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들을 보충해 주기 때문에 쇠약해진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여름에 즐겨 먹는 콩국수는 땀과 더위로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들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다. 여름에는 땀으로 체내의 질소가 다량 배설되므로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데 콩은 칼로리나 지방질은 적은 반면, 단백질은 풍부한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피로 회복을 돕고 혈관을 튼튼하게 유지시켜 동맥경화 예방 및 노화 지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콩밭에서의 작업 후 점심메뉴는 당연히 콩국수이다. 이를 위하여 작년에 수확하여 냉장고에 고이 모셔놓았던(?) 콩을 아침 일찍 물에 담가 놓았다. 콩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쉽게 변질되지 않아 오래도록 두고 먹을 수 있다. 집 앞 텃밭에 심어 놓은 오이와 부추도 부재료로 챙겼다. 이러한 식재료들은 내가 직접 재배하여 콩국수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쓸 수 있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수만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사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먼 옛날, 어머니가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구면서 국수 몇 가닥을 내 입에 넣어 주실 때 느꼈던 쫄깃하고 고소했던 그 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국수는 집에서 직접 재배한 우리밀로 만든 것으로서, 요즘 마트에서 파는 수입밀로 만든 국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리밀이 거의 사라진 지금, 예전의 국수 맛을 보기란 불가능하다.
비록 국수 맛은 이전의 맛이 아니지만, 내 손수 재배한 콩으로 만든 콩국의 맛은 예전 그대로이다. 나는 이 한 그릇의 음식에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맛본다. 아쉽게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추억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