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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Oct 18. 2017

가까이 다가오는 공동묘지

  인간은 누구나가 죽는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만약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라. 그렇지 않아도 돈과 권력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현실 속에서, 이것들로 죽음마저 피할 수 있다면 이들을 차지하기 위해 온 세상이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인간이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해도 죽음은 분명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은 두렵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젊었을 때에는 죽음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못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특히 또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나도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실감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희랍의 소포클레스는 "인간에 있어서 최선(最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차선(次善)은 하루 바삐 죽는 것이다"라고 하여 생명에 대해 부정적, 허무적 생명관을 가지고 죽음을 찬양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거나 죽음을 달관하려는 데 관심을 가져왔고, 이러한 방법들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해 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 3가지의 기본적 감정을 갖는다고 하였다. 첫째는 죽음이 무섭다는 감정이요, 둘째는 죽음이 슬프다는 감정이고, 셋째는 죽음이 허무하다는 감정이다. 부단한 수양과 끊임없는 정진(精進)으로 삶을 초월한 소수의 수행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은 죽음이 지닌 이러한 3가지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을 보다 순순히 대하려면 평소부터 죽음에 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공동묘지가 빤히 보이는 집에서 자라왔기에 죽음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고향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어른들의 장례를 치를 때에는 사자(死者)의 관을 실은 상여가 동네를 향하여 절을 두 번 한 후 집 건너편 공동묘지로 향한다. 이 상여는 항상 우리 집 앞을 통과해야만 했기에,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자주 보아왔다. 집에서 공동묘지까지는 300여 미터,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70∼80년 인생을 살다가 가는 길 치고는 너무나 짧다. 이 길을 따라 사자(死者)의 관을 덮을 명정(銘旌)이 앞서고 그 뒤로 수십 개의 만장(輓章)이 나부끼며 장례행렬을 이끈다. 혼백을 실은 영여(靈輿)와 상여가 이어지고, 상여 뒤에는 통곡하는 상주들과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한 호상꾼들이 뒤따른다. 한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상여 뒤의 호상꾼들의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공동묘지 바로 아래에는 조그만 도랑이 있다. 이 도랑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여서 일단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귀(不歸)의 객이 된다. 여기부터는 여자 상주들은 더 이상 상여를 따라갈 수 없어 사자(死者)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 한다. 초상을 치러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장례절차 중 입관, 하관 등 사자(死者)와 최후의 이별을 맞이하는 단계가 있으며, 유족들은 각 고비마다 슬픔을 억누르고 다음 단계로 진행해야 한다.

  도랑을 건너면 바로 공동묘지 입구인데 양쪽에는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에는 탁구공만한 열매가 열린다. 이 열매는 표면이 울퉁불퉁하면서 매우 딱딱해서, 이걸로 머리를 맞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저승사자로서, 죽은 이를 생전에 지은 죄와 쌓은 덕에 따라 자기 몸에 달린 열매로 또다시 죽도록 두들겨 팬 다음 지옥으로 보내거나, 귀빈 대접을 한 후 천당으로 안내한다고 예로부터 동네 어른들로부터 수시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찾은 공동묘지 입구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조그만 묘목에서 거대한 거목으로 성장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서 있다. 마치 저승사자의 위용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위축이 된다. 두 그루 중 한 그루는 벼락을 맞아 죽고 한 그루만이 남았다. 저승사자도 벼락에 맞아 죽나 의아한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가 공동묘지에 입학(?)한 후 생전에 저지른 업보의 대가를 치를 때 두 저승사자 대신 한 저승사자로부터만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니 다소 위안이 된다. 물론 맞지 않고 귀빈 대접을 받는 것이 더 낫겠지만...

  초상을 치를 때마다  상여가 지나, 공동묘지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곳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공동묘지 입구에 음산하게 서 있던 상엿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네 초상이 나면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던 상엿집, 누구나 한 번은 이 집에 보관된 상여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해야 했던 그 집이 세상의 변화와 함께 없어졌다. 이젠 장례식 때 상여를 사용하지 않으니, 상엿집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공동묘지 자체보다 상엿집이 더 무서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쨌든, 공동묘지와 더불어 공포의 대상이었던 상엿집이 없어져 공동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심적 부담이 다소 줄어든다.

  어린 시절 누런 잔디로 단정하게 옷을 입은, 올망졸망한 무덤들 사이로 모굴스키를 타듯 얼음썰매를 타고 스릴 있게 내려오던 곳이 어느덧 잡목이 무성한 숲으로 변해버렸다. 매장 대신 화장을 하게 되면서 바뀐 장묘문화가 공동묘지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 폐교된 농촌의 학교처럼 이곳으로 새로 입학하는 학생(學生)은 없고 기존의 무덤들조차 돌보는 후손들이 끊어지니 공동묘지가 황폐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긴 이 바쁜 세상에 어느 후손이 옛날처럼 상여로 초상 치르고 벌초나 성묘를 하겠는가?

  어떤 무덤의 봉분 위로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무덤의 주인공은 전생에 무슨 업보(業報)가 있기에 죽어서도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어야만 하는가? 나머지 무덤들도 언젠가는 이런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결국 시간상의 차이일 뿐, 그 결과는 동일하다 - 궁극적으로는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무덤이 파헤쳐진 곳도 있다. 한낮인데도 등줄기가 오싹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벌초나 성묘를 감당할 길이 없어, 매장된 조상의 유해를 화장하여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으로 다시 장례를 치른 경우이다. 세상살이가 그렇듯,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혼자서 옛날 방식만 고집하면 본인만 소외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누구든지 묘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좌우에 위치한 수많은 무덤들 앞 비석에는 그 주인을 알리는 낯익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향 마을에 살면서 생을 마감한 어른들이다. 그 무덤 사이로 보이는 낯익은 이름 하나 - 어릴 적부터 같이 동고동락했던 죽마고우이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급하게 이곳에 와서 누웠는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평소 술을 좋아하던 친구의 영전(靈前)에 소주 한 잔을 따라놓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 생전 술 한 번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회한(悔恨)을 이제 와서, 이 한 잔의 술로 달램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기 바랄 뿐이다.

  공동묘지 위에서는 건너편 고향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우리 집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예전에는 멀기만 했던 거리가 이제는 많이 가까워짐을 실감한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집까지의 거리가 더욱더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리라.

  공동묘지를 내려와서 집에서 200미터쯤 되는 거리에 섰다. 아마 이곳이 현재 내 인생의 좌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묘지 입구까지는 기껏해야 100미터 정도, 이미 지나온 200미터는 되돌릴 수 없는 거리이다. 앞으로 남은 100미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만 남았다. 이 100미터나마 열심히 달려서 마지막 순간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미련 없이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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