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다낚시

by 여송

최근,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 소비자동향연구소가 한국인의 국내여행 중 취미나 운동 활동 계획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낚시를 즐기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40%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작년까지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등산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낚시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해양스포츠, 골프 등이 즐기고 싶은 취미활동으로 나타났다.

등산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취미활동이며, 골프는 최근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접근성이 용이해짐에 따라 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종목이다. 반면, 낚시는 취미활동에 종사하려는 사람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1위의 자리로 올라선 것은 뜻밖의 결과라 생각된다. 낚시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어자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파인 한국의 중년 남성으로서 그동안 등산, 낚시, 골프 등 3대 취미활동에 종사하여 왔다. 등산은 2000년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즐겨 왔으며, 주로 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의 산을 중심으로 다녔었다. 이 종목은 운동량이 많아 심폐기능을 향상시키고 근력과 지구력을 증진시키며, 칼로리 소모량을 늘려 건강증진과 체중감소, 비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장운동을 촉진시켜 소화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 예방에도 기여한다. 등산의 골다공증 예방효과에 의문을 품고 있던 중, 아는 의사에게 등산이 어떻게 골다공증 예방에 기여하는지 물었더니, 산을 오르고 내리면 뼈에 압력이 가해져 골밀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와서는 등산 활동이 뜸해졌는데, 그 이유는 우선 대부분의 국내의 유명한 산을 한 번씩 등산하고 나니 그 산에 대한 신비감이 줄어들어 다시 찾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적으로 다소 부담스러워진 것도 이 취미활동에 소홀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다. 그러나 등산이 건강에는 최고의 취이라는 신념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골프는 1997년부터 시작하였으니, 등산보다 더 일찍 종사했던 취미활동이다. 초창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기회도 많지 않았으며,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아 골프를 즐기지 못했다. 최근 들어 골프인구가 늘어나고, 비용 또한 저렴하게 되어 점차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 등산이나 낚시에 소홀하다 보니, 이 취미활동에 종사하는 기회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3대 취미활동 가장 먼저 즐겼던 종목은 낚시였다. 강변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낚시를 했었다. 낚시는 민물낚시와 바다낚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집 가까운 근처에서 즐길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주로 바다낚시를 다녔는데, 그 이유는 강가에서 자라면서 그물이나 족대로 한꺼번에 수십 마리씩 민물고기를 건져 올리던 나에게, 낚싯대로 한참 만에 겨우 민물고기 한 마리씩 건져 올리는 어로 방식은 감질나고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낚시의 장점 중의 하나는 건져 올린 생선을 그 자리에서 바로 회로 떠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두리양식으로 길러낸 생선이 시장바닥을 점령한 상황에서, 갓 낚아 올린 자연산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로 맛본다는 것은 바다낚시꾼이나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민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덩치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전해 오는 묵직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손맛은, 팔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는 일종의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낚시의 쾌감을 맛보려고 낚시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갯바위나 해안절벽, 무인도 등을 찾는다. 그러다가 파도에 휩쓸려 생사의 갈림길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바다낚시꾼들은 배를 빌려 타고 고기가 잘 무는 곳을 찾아다닌다.



내가 처음 바다낚시를 시작했던 80년대 말에도 소위 포인트를 찾아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다. 어느 늦가을 저녁, 나는 다른 낚시꾼과 함께 삼천포 화력발전소 배수구를 찾기로 하였다.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에서는 뜨거워진 터빈을 식혀야 하는데(원자력 발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바닷물을 끌어올려 냉각수로 사용한다. 사용된 냉각수는 다시 바다로 방류되며, 이 냉각수는 주변 바닷물보다 온도가 높아 날씨가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철이 되면 물고기들이 냉각수 방류구 주위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날도 우리는 야밤에 발전소의 철조망 울타리를 펜치로 절단한 다음, 높이가 2미터가 넘는 위험한 옹벽을 타고 내려가 소위 포인트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냉각수 방류구 주변에 모여드는 어종은 감성돔과 숭어들로서, 바로 눈앞에서 펄떡거리며 냉각수를 거슬러 올라온다.

낚싯대를 조립하여 미끼를 끼운 다음 바닷물에 던져 넣고 낚시 삼매경에 빠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리더니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우리 보고 올라오란다. 우리는 꼼짝없이 순찰차에 실려 발전소 입구 파출소로 압송(?)되었다. 신분증 제시와 신상정보를 요구받고 전과조회를 마친 다음 큰 문제가 없어 다행히 훈방되었다. 당시 나는 차마 주 직업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부업인 농부라고 둘러댔다. 이제서나마 발전소 관계자들과, 한밤중에 고생한 경찰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지금도 재래시장이나 마트의 어시장에 진열되어 있는 생선들의 이름이나 맛을 대충 알 수 있는 것은 예전에 낚시를 다닌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싱싱한 생선을 구할 기회가 있으면 아직도 내 손으로 직접 회를 뜨곤 하는데, 이 역시 바다낚시를 하면서 배운 칼잡이 기술 덕분이다. 회를 뜰 때에는 우선 생선의 살을 뼈에서 발라내야 하며, 이 경우에는 살점이 뼈에 붙어있지 않게 깨끗하게 작업하는 것이 기술이다. 발라낸 생선살은 그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먼저 생선의 꼬리 쪽 끝 부분에 칼집을 낸다. 그다음, 칼날을 비스듬히 껍질과 생선살 사이에 고정시킨 후, 아래쪽의 껍질을 한 손으로 당기면서 다른 손에 잡은 칼을 살짝 밀어주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요즘에는 생선 껍질을 제거하는 기계도 등장하였다. 껍질을 벗긴 생선살은 살결과 수직으로 썰어내야 쫄깃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손맛을 느낄 수 있던 바다낚시는 그 후 급격한 어족 감소로 출조(出釣)하면 빈 쿨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90년대 중반 낚싯대를 접기로 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시골집 창고 구석에서 녹슬고 있는 낚싯대를 보면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처럼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가끔 바닷가에 갈 기회가 있으면 바닷속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예전에는 팔뚝만 한 농어나 숭어가 노닐던 방파제 주변이 최근에는 물고기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환경오염과 남획 등으로 바닷속이 황폐해져 생명체라곤 찾기 힘든 이런 환경에서 무슨 바다낚시가 되겠는가? 한 번 망가진 자연을 되돌리는 데는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아마도 남은 일생동안 이전처럼 바다낚시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얼마전, 남쪽 바닷가의 한 골프장에서, 또 다른 취미활동의 하나인 골프를 치면서 같은 팀으로 우연히 만난 한 분이 자신의 고향이 남해 바닷가이고, 아직도 그곳에 예전 집과 어로도구들이 남아 있다고다. 그분은 정년 후 고향에서 골프와 낚시 등을 즐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때를 놓칠 새라 혹시 골프와 낚시 동료가 부족하면 제가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고 했더 자기도 멤버가 모자라 물색 중이라 한다. 1인 골프도 가능한 미국 등 외국과는 달리, 최소 3명의 멤버 숫자를 채워야 골프를 할 수 있는 한국의 상황이 그날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장래에 3대 취미활동 중 두 가지를 즐길 수 있는 동료를 만날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에.

몇 년 후, 직장에서 은퇴하면 그동안 팽개쳤던 낚싯대를 다시 꺼낼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설렌다. 물론 예전같이 짜릿한 손맛을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눈이 멀거나 양식장을 탈출한 감성돔이나 농어들이라도 내가 던진 낚시 바늘을 물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들마저도 찾아주지 않으면 세월이라도 낚는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래깃국에 대한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