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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by 여송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어렸을 때 우리가 자주 듣고 불렀던 동요이다. 기찻길이 동네 한가운데로 가로질러 나 있는 우리 마을에서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곤 했다. 이 동요 속에서 칙칙폭폭으로 표현되는 기차소리는 옛날 증기기관차가 내던 소리라서, 증기기관차를 구경하지도 못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일 것이다.

과거 고도의 경제성장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철도운송수단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나의 초등학교 시절인 60년대만 하더라도 주된 철도 교통수단은 증기기관차였다. 증기기관차는 석탄을 압축한 조개탄으로 보일러를 가열해서 나오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동력을 얻는 기관차로, 디젤기관차나 전기기관차에 비해 출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나의 고향역과 그다음 역 사이에는 경사가 다소 가파른 고갯길이 있었는데, 증기기관차는 힘이 약해 그 고갯길을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철로 변에 위치한 우리 집 근처까지 기차가 후진하여 내려온 다음, 보일러에 조개탄을 잔뜩 넣어 출력을 높이고 레일 위에 모래를 뿌린 후에야 고갯길을 오르곤 했었다.


증기기관차(출처: doopedia.co.kr)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도시까지 기차 통학을 했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디젤기관차이다. 이 기관차는 디젤엔진을 가동하여 전기를 생산한 다음, 이 전기로 모터를 회전시켜 동력을 얻는다. 디젤기관차는 증기기관차에 비해 출력은 높은 반면, 무게가 무겁고 부피가 커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 차는 발전소와 전기기관차가 결합된 형태로서, 기관차 상부의 발전소에서 디젤 엔진으로 생산한 전기를 하부의 모터로 보내 출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젤기관차를 모두 폐기할 수 없는 이유는 유사시 전력이나 통신시설이 파괴되는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전기기관차를 대신하여 긴급구호물자나 인력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다. 해방 후 전기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이 기관차로 생성된 전력을 가정에 공급하기도 했다. 디젤기관차 앞이나 옆에는 4자리의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첫째 자리의 숫자가 클수록 출력이 높다. 초창기 기관차 고유번호 첫자리 숫자는 대부분 3이었으며 이 정도의 출력만 하더라도 우리 집 근처 고갯길은 그럭저럭 넘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4, 5, 6, 7 등의 첫 숫자를 단 디젤기관차를 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은 7을 제외한 기관차는 보기 어렵다. 7000 단위의 기관차는 새마을호 등에 아직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출력은 3,000마력 정도 된다고 한다. 이 기관차는 객차를 10량 정도를 달고도 웬만한 고갯길을 평지와 같은 속도로 달릴 정도로 힘이 넘친다.


디젤기관차(출처: doopedia.co.kr)


2012년 경전선 선형개량공사가 끝나고 새로이 등장한 기차가 KTX이다. 이 열차를 이끄는 기관차는 외부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아 교류 모터를 회전시켜 동력을 얻는 전기기관차이다. 발전소가 필요 없다 보니 크기는 디젤기관차보다 작으면서 출력은 18,000마력이나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KTX(출처: doopedia.co.kr)




어렸을 때부터 기찻길 옆에서 자랐고, 한때는 기차 통학도 했기에 기차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다. 아직도 서울 등 외지에서 고향행 열차를 만나면 우리 집 앞으로 가는 기차구나 하면서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기찻길이 동네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안전사고가 잦았고, 그로 인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다 보니 기차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남아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사건이 있다.

중학생 무렵 어느 초여름 저녁, 우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 한가운데 철로 변으로 모였다. 여름철 철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훌륭한 놀이터다. 양쪽 레일에 걸터앉아 담소하기도 편하고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세찬 바람이 불어 시원할 뿐 아니라, 모기도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고향역 방향에서 서울발 순환열차인 통일호가 달려오고 있는데, 잠시 후 외지에서 우리 동네로 와서 머슴살이하던 20세쯤 되는 청년이 자기가 저 기차를 세워보겠다는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기차가 철로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경적을 울리기 시작하는 데도 그는 꼼짝 않고 있었다. 기차와 사람 사이의 거리가 100미터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기관사는 급제동을 걸었는데, 그 순간 레일 위의 기차 바퀴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기차가 미끄러지더니 그 청년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순간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보리밭 속으로 도망쳤고, 차에서 내린 기관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냥 두지 않겠다고 고함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기관사는 종점에 도착하여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우리 마을에 출동하여 기차를 세운 청년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세상살이가 고달팠던 청년은 그날 저녁 농약을 마시고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이들에게 인생은 한낮 소꿉장난에 불과한 듯 보였다.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부모님이 이틀 뒤, 아들이 머슴살이하던 주인집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관을 살 돈조차 없었던지 아들의 주검을 관에도 넣지 않고 단지 헝겊으로 칭칭 감기만 한 상태로 들고 나왔다. 사람이 죽으면 통나무처럼 뻣뻣해져 두 사람이 시체 양쪽 끝에서 들어도 휘지 않고 평평한 상태로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들은 아들을 손수레에 싣고 우리 동네 근교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향했는데, 수레 뒤에서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 아, 저승에서나마 좋은 부모 만나 잘 살거래이... “


그 청년의 무덤은 아직도 우리 집 건너편 공동묘지에 있다. 나는 그곳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 한 편이 아려 온다.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철길도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고, 레일마저 걷혀 이젠 조용하고 평온하기 그지없다. 기차 바퀴가 레일 위를 구를 때 나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에 지금까지 잠들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던 영혼들이 평온하고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고이 잠들기를 기원해 본다.


201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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