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川獵)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냇가에서 하는 사냥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짐승을 사냥한다는 수렵(狩獵)이라는 말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좀 더 의역해서 풀이하면 천렵이란 더위를 피하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끼리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를 말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물고기를 잡는 일을 왜 고기잡이라 하지 않고 천렵이라 했을까? 고기잡이라는 용어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로행위를 할 때 쓰는 용어이며, 따라서 단조롭고 일상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기를 "사냥한다"는 표현은 흥에 겨워, 들뜬 마음으로 고기를 잡으러 나선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된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풍류를 즐기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천렵이라는 놀이뿐만 아니라 어의(語義)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정학유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 월령에 천렵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앞 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殘風) 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水丹花)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罟)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磐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쏘냐
이 얼마나 멋스럽고 유유자적한 모습인가!
농가월령가에서는 4월에 천렵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는 음력 기준이라 양력으로는 5월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늦은 봄 혹은 초여름인데 천렵은 봄이나 가을에도 즐기지만 여름철, 특히 삼복중에 주로 이루어진다.
천렵의 방법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방식이나 도구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그 방법들을 정리해 본다.
낚시
오늘날까지도 많이 사용되는 고기잡이 방식이다. 낚시도 그 형태에 따라 대낚시, 줄낚시, 릴낚시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냇가에서의 대낚시는 붕어나 피리 등 작은 물고기만 걸려 주로 줄낚시를 많이 사용한다. 줄낚시는 긴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낚시를 매달아 놓은 낚시도구로 미끼는 청개구리를 이용한다. 저녁에 미끼를 끼운 낚시를 강을 가로질러 드리워 놓은 다음, 아침에 낚시를 걷는데 주로 가물치나 잉어처럼 큰 물고기가 잡힌다.
투망
이는 글자 그대로 던지는 그물이다. 투망에도 깊은 물에 사용하는 투망과 얕은 여울물에 사용하는 투망이 있다. 전자는 투망 크기가 다소 작고 끝부분에 무거운 납추를 달아, 물속에서 빨리 가라앉아 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깊은 물속에서 사용하므로 잉어나 가물치, 누치 등 큰 고기가 잡힌다. 후자는 끝부분에 납추 대신에 가벼운 금속 링을 달아, 자갈이 깔린 강바닥에서 끌어당겨도 돌은 달려오지 않고 고기만 끌려온다. 이 투망은 얕은 여울물에서 사용하며 주로 피리나 납지리 등을 잡는다.
투망을 치려면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 그 핵심은 투망을 던질 때 투망 앞부분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놓은 후 적절한 타이밍에 뒷부분을 쥐고 있는 왼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투망을 던져도 펴지질 않는다.
촉고
농가월령가에도 나오는 천렵 도구로, 투망이 둥그렇게 생긴 그물인데 반해 이는 길쭉하게 생긴 그물이다. 바다에서 꽃게잡이 할 때 사용되는 그물과 비슷하다. 강을 가로질러 촉고를 매어 놓고 대나무나 나무 막대기로 강물을 후려치거나, 여러 사람이 촉고를 끌고 다니면서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다.
족대
기다란 두 개의 대나무 사이에 그물을 매어 그 사이에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어구이다. 족대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강가나 연못의 수심이 얕은 곳에서 수초나 돌 사이에 숨은 고기를 잡는 크기가 작은 족대와 물살이 센 도랑에서 사용하는 큰 족대가 그것이다. 전자는 아직까지 흔하게 볼 수 있으나, 후자는 요즘에는 보기 힘들다. 큰 족대를 도랑물 속에서 벌려 놓으면 대나무 사이의 그물이 물살에 떠내려가면서 족대를 받치고 있는 사람의 두 다리에 걸치게 되는데, 이때 다리에 전해오는 촉감으로 고기가 들어왔는지 판단한다. 숙달된 사람은 그 촉감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탁류 속의 고기의 종류까지 알아맞힌다.
전기
전기를 이용하여 고기를 감전시켜 잡는 어로 방식이다. 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용 배터리를 사용한다. 한 번은 장난기 심한 사람이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인입선에 전선을 연결한 다음 강물 속에 집어넣자, 건너편 강가에서 빨래하던 여자들이 화들짝 놀라 물고기뿐만 아니라 사람을 잡을 뻔한 일도 있었다.
독극물
독성이 강한 농약이나 화학물질을 강이나 웅덩이에 뿌려 물고기를 잡는다. 가장 많이 쓰이는 독극물은 청산칼리로 알려진 시안화 칼리이다. 이 물질의 화학식은 KCN으로 시안 기를 가지고 있어 독성이 매우 강하며 칼륨 원소가 포함되어 물에 잘 녹는 백색의 고체이다. 주먹만 한 청산칼리 세 덩이 정도만 강물에 풀어놓아도 강 하류 500m 정도까지의 모든 생명체는 몰살한다.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폭음탄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섞어 폭발물을 만든 다음 병이나 깡통에 넣은 후, 물속에서 터뜨려 그 소리에 기절하거나 죽은 물고기를 잡는 어로 방식이다. 이 폭음탄은 일종의 사제폭발물로서 매우 위험하므로 역시 법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해머
무거운 쇠망치인 해머로 바위나 큰 돌멩이를 내리쳐 그 충격으로 바위 밑의 물고기가 기절하여 수면 위로 떠오르면 그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어로 방식이다. 이 방식은 바위나 돌이 많은 강 상류나 계곡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물고기가 솟구쳐 오르면 즉시 손이나 뜰채로 잡아야 한다. 우물쭈물하면 잠시 기절한 녀석들이 금세 정신을 차려 도망간다.
발
대나무나 싸릿대로 촘촘히 엮은 발을 논두렁의 수로나 실개천에 걸쳐 놓은 후, 물살따라 내려가던 물고기들이 발에 걸리면 손으로 이들을 잡는 천렵 방식이다. 이 발을 원통형으로 만든 것이 통발이다. 주로 얕은 물길에 사용되기 때문에 씨알이 작은 붕어나 미꾸라지 등이 잡힌다.
메
메란 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둥치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도구이다. 이 메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예가 재래식 방법으로 떡 만드는 경우의 떡메이다. 일반적인 메는 떡메보다 머릿 부분의 나무둥치가 크고 무거우며, 땅에 나무 말뚝을 박거나 흙을 다질 때 주로 사용된다. 이 메로 겨울철 얼음을 세게 내리치면 그 압력으로 얼음이 깨지면서 얼음 밑의 물이 솟구쳐 오르는데, 이때 물고기들도 함께 솟아오른다. 이 방식은 겨울철 얕은 개울에서 사용될 수 있다.
물 퍼내기
웅덩이나 도랑에 고인 물을 퍼낸 후 도망가지 못하고 남은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늦여름이나 초가을, 농작물의 수확기로 접어들어 농수로에 더 이상 농업용수를 공급하지 않을 시기에 사용된다. 초창기에는 양동이나 대야를 사용하여 사람의 힘으로 물을 퍼내는 원시적인 어로 방식이 사용되었으나, 동력용 양수기가 공급된 후에는 훨씬 수월하게 이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칠월로 접어들면서 한낮의 날씨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서인지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여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이면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있다가 "천렵하러 가자"는 소리에 다들 들뜬 마음으로 강가로 내달렸던 추억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때마침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 이곳 시골집을 방문하려는 모양이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는 냇가에 백솥을 걸어 놓고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로 어탕을 끓여 쐬주나 한 잔 하면서 어지러운 세상살이로 인한 심신의 피로를 푸는 천렵 같은 신선놀음이 어디 있겠는가?
혹시나 하는 기대로 찾은 강에는 물고기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 빈 강물만 흐르고 있다. 남쪽 먼 바다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바람은 피해 가고 비만 뿌려, 모진 세상에도 살아남아서 냇가 어딘가에 숨어 있는 피리 새끼 몇 마리라도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