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다운 날씨

by 여송

연말까지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어 왔던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겨울 추위가 일찍 시작되었다. 농촌에서는 통상 12월 말이면 김장을 하는데, 예전에는 너무 포근한 날씨로 김장독의 김치가 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금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12월 초부터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잠시나마도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초겨울의 강추위에 한강마저 71년 만에 가장 빨리 결빙되었다고 TV에서 아우성이다.


서울보다 위도가 한참 낮은 이 곳의 아침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기록한 것도 모자라 밤새 눈까지 내렸다. 창고에 스노 체인이 있긴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차바퀴에 채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눈이 드문 남부지방에서 월동장구를 갖추지 않은 차들로 인해 도로가 엉망이 될 텐데, 설사 나 홀로 체인을 장착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날에는 아예 차를 운행하지 않고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핑계로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아침이 추운 것은 그렇다 치고, 낮 최고기온마저 영하 5~6도로 예보되어 하루 종일 추운 날씨가 계속될 것 같다.

멀리서 기차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지나간다. 전기로 움직이는 기차가 제대로 운행하는 걸 보니, 전선을 통해 흐르는 전류는 얼지 않았나 보다. 기차소리마저 허공에 얼어붙었는지 평소보다 작게 들린다. 한겨울의 추위에 바퀴가 얼어 레일에 달라붙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길가에 세워 놓은 자동차들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꽁꽁 얼어 있고, 이중으로 된 창문의 바깥 유리에는 하얗게 성에가 끼었다. 소나무 밑에 놓아둔 돌절구 통속에 고인 물이 동장군의 기세에 얼어 팽창하면서 절구에 금이 갔다. 이 절구통은 조상 대대로 곡식을 빻을 때 사용해 오던 것이다. 아무리 생명이 없는 사이지만, 한파에 꽁꽁 얼고 갈라진 몸을 따뜻한 온기로 녹여주고 싶다.


대륙의 발달된 고기압이 그 세력을 한반도로 확장하고 있는지, 강추위에 바람마저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어 체감온도를 더욱더 낮추고 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한 손자의 손을 잡고 스쿨버스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아무리 추워도 학교에는 가야 한다는 손자의 학구열과, 엄마를 대신해 등굣길에 나선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겨울철 한기(寒氣)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린다.


날씨가 추워도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농촌생활이다. 해가 산 위로 얼굴을 내밀자 들판의 비닐하우스에는 노부부가 달라붙어 밤새 쳐 놓은 덮개를 걷어낸다. 햇살만 비추면 비닐하우스 속은 한여름으로 돌변한다. 두 노인이 덮개를 걷는 작업을 빨리 끝내고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서 언 몸을 녹였으면 한다. 그 속에서는 간밤의 강추위에 몸을 움츠렸던 고추와 호박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드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것이다.


건너편 느티나무 아래 집 입구에서, 일 년 내내 목줄에 묶인 채로 생활하는 멍멍이는 아침 식사가 조금만 늦어도 밥그릇을 굴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어 밥 달라고 보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추위와 배고픔이 동시에 엄습하면 그 비참함의 정도는 산술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주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나를 처음 볼 때만 해도 그렇게 짖어대던 녀석이, 요즘에 와서는 안면을 조금 텄다고 그러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면서 약간의 애교까지 부리는 중이다. 나도 이 생명체에 대한 정이 조금 들었는지, 주인이 빨리 이 녀석에게 아침을 대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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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의 송아지들도 추운 겨울을 지내는 것이 고역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침 식사를 차려주어도 강추위에 일어나기가 귀찮은 듯, 지푸라기 깔린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커다란 두 개의 콧구멍을 통해 하얀 수증기만 수시로 내뿜고 있다. 악기(惡氣)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왕방울만 한 눈동자를 껌뻑거리며 여전히 일어날 생각조차 않고 있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강물도 겨울 한파에 가장자리가 얼어붙었다. 겨울철이라도 온화한 날이면 강물 속에서 간혹 물고기를 몇 마리 볼 수도 있으나, 추운 날씨에 이들도 바위틈이나 수초 속으로 숨어버려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하얀 두루미 한 마리가 식사 거리를 장만하지 못했는지, 강 한가운데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다. 기다랗게 목을 뺀 채 먹이를 찾고 있지만 별 수확이 없는 모양이다. 썰렁한 강물 위로 세찬 겨울바람이 지나가면서 수많은 물결들만 만들어낸다.

이런 추위 속에서도 기세 등등한 족속들이 있으니 바로 계족(鷄族)이다. 그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들판을 쏘다니면서 떨어진 곡식들을 주워 먹는다. 몸통은 닭털로 덮인 코트로 무장하고, 얼굴에는 살점 하나 없이 꼬챙이 같은 뼈에 울긋불긋한 가죽옷을 걸치고 있으니,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삭풍(朔風)인들 그들 앞에서는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비록 추위에는 굴하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벌레나 곤충들이 땅속으로 다 숨어버려, 겨울 내내 육식성 식사는 꿈도 꾸지 못하 초식으로 연명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옛날 같으면 이런 날씨에는 인간 족속들은 뜨끈뜨끈한 사랑방 아랫목에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화롯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곤 했었다. 요즈음은 시골집이라 해도 보일러로 난방을 하기에 윗목, 아랫목 구분도 없거니와, 같이 모여 이야기할 친구도, 고구마를 구울 화로나 아궁이도 없다. 시골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찌감치 방구석에 들어앉아 책이나 보며 추위를 피하는 것뿐이다. 허나, 이 추운 날씨엔 방 안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일러 온도를 올려놓아도 외풍이 세어 귀가 시릴 정도다. 실내가 이 정도니 바깥 추위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날이 어두워지니 동장군의 기세는 더욱 거세어져 집 뒤편의 대나무 가지가 거친 북서풍에 서로 부딪치면서 차가운 고함을 지르고, 이에 놀란 새들이 자다가 일어나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비둘기나 참새들이 그들의 보금자리인 대나무 숲 속에서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격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불도 강추위에 하얗게 얼었다. 도로 위에는 차가운 불빛만 가득할 뿐 인적이 끊겼다. 먹이를 찾아 집 주위를 배회하는 길고양이의 처량한 울음소리만이 한밤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지붕 위로 가로지르는 전선이 삭풍을 맞아 휘이익 비명을 지르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축 늘어진 전선을 두 팔로 받치고 있는 전봇대가 서낭당 앞 장승처럼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키가 커서 찬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이들이 느끼는 체감기온은 상상 이상인 듯, 밤새도록 윙윙거리며 춥다고 불평을 한다.


한밤의 정적을 깨고 무언가가 콘크리이트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듯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깼다.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수돗가에 놓아둔 양은 세숫대야가 강풍에 날려 마당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한겨울 모진 바람은 별의별 행동으로 사람을 혼나게 한다.


겨울이 춥다고 하나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날씨가 추우면 병해충들이 얼어 죽어 다음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물주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생성할 때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존재할 것과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으리라.


어떤 나라든, 국가가 혼란스러운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모처럼 찾아온 겨울다운 날씨처럼 올해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각자 자기다운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해 본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이 이른바 정명론(正名論)이다.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힘쓰고, 국민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과 임무를 다했으면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장래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욱 빛나듯이, 이 춥고 긴 겨울을 지나고 맞이하는 봄은 더욱더 밝고 따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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