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는 나그네의 발걸음도 동지와 소한을 가로질러 대한으로 향하고 있다. 이 무렵이 일 년 중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아직까지는 큰 추위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엊그제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남쪽 지방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하얀 눈을 기대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빗줄기는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월이 갈수록 겨울은 따뜻해지고 여름은 더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겨울방학이면 꽁꽁 언 강에서 썰매나 얼음 배를 타던 옛 시절들은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얼음 한가운데 나 있는 공기구멍(우리는 이를 숨구멍이라 불렀다)에서 자맥질하던 청둥오리들은 자취를 벌써 감춘 지 오래다. 보다 더 추운 만주나 시베리아로 날아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얼음조각 하나 발견할 수 없는 강가에선 텃새인 백로 한 마리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누런 강물 속을 주시하고 있다. 이 모두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지 싶다.
춥지 않은 겨울 날씨가 우리의 동심을 앗아간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단독주택에서 생활해야 하는 농촌 사람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날씨다. 난방시설이 빈약하고 단열처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시골집에서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날씨가 가장 반가운 손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의 고향집은 전기보일러로 난방을 하는데 이 난방시스템은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 사이의 심야전기로 보일러의 물을 데워 열을 비축한 다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에 온수를 순환시키는 이른바 축열식 난방이다. 보일러 용량도 크게 하고 전기도 펑펑 사용하여 한낮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낮에 따뜻하게 지내면 온수가 냉각되어 오후나 초저녁에는 썰렁한 냉골에서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
농촌에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하는 또 다른 공신은 햇볕이다. 태양이 없는 세상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햇볕이 중요하지 않은 계절이 있겠냐만 추운 겨울에 내리쬐는 햇살만큼 따뜻한 것은 없다. 차디찬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한 줄기 햇볕은 얼어붙은 대지에 온기를 불어넣고 뭇 생명들로 하여금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햇살은 또한 투명한 유리 창문을 통해 방 속 깊숙이 스며들어 방안에 온기를 제공한다. 방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은 실내 상활로 움츠러진 내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추운 겨울을 보다 활기차게 보내게 한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햇볕들을 방 안으로 들일 수 있다면 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도 있다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중략)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정진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 중에서-
가을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말리는 데 있어서 햇볕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요즘같이 춥고 지루한 겨울철, 시골에서만큼 햇볕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하늘을 두껍게 덮었던 먹구름이 물러나고 구름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흘러내리고 있다.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손바닥 만한 햇볕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 햇볕은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따스한 입김을 내뿜는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내 몸과 마음도 이 입김 한 숨에 한결 가벼워진다. 이 부드러운 햇볕 조각들을 주워 모아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그 온기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