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도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아직까지 아침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만 한낮 기온은 영상 1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봄비가 내리고 나더니 아침 기온마저 급격히 상승해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봄비는 겨우내 움츠렸던 식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집 앞,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비닐하우스 속의 상추도 따뜻해진 대기 속에서 파릇파릇 생기를 머금었다. 봄비를 맞더니만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지는 듯하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뿌려주는 물을 먹은 작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의 비를 맞은 농작물의 성장 속도에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비가 내리면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걷어 농작물이 직접 비를 맞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한겨울의 거센 북풍에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히면서 일렁이던 집 주변의 대나무들도 어느덧 가느다랗게 약해진 미풍에 이파리들만 살랑거리고 있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대나무들을 베어내지 않은 탓에 대나무 숲은 한낮에도 컴컴한 밀림처럼 어둡게 빛나고 있어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을 연상케 한다.
집 뒤편의 텃밭에는 한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모진 목숨을 이어온 잡초들이 푸른 색깔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요즘에는 한겨울에도 잡초들이 말라죽지 않고 잘 견디어 낸다. 이러한 섭생의 변화는 여러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우선, 지구온난화로 겨울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잡초들의 생육여건이 좋아져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일종의 진화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 잡초들이 추운 겨울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진화해 온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농부들에게는 예전에 비해 잡초제거 작업이 빨라지고,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달갑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의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봄비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 잡초들은 우후죽순처럼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잡초제거작업은 몇 배로 시간이 걸리고, 작업강도도 세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놈들을 빨리 퇴치해야 한다. 농사일이 모두 그렇듯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그에 대한 부정적 대가는 가혹하리만큼 몇 배로 확대되어 돌아온다.
잡초제거에 가장 효율적인 무기인 괭이를 들고 나와 작업이 시작되었다. 텃밭의 흙은 봄비로 물기를 머금은 데다가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부드러워져서 작업하기가 한결 용이하다. 가느다란 잡초의 뿌리들은 보드라운 솜처럼 서로 뒤엉켜 일정한 두께로 토양의 표피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을 밟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 오는 감촉은 마치 매트를 밟는 듯이 푹신푹신하다.
열심히 흙을 파헤치며 잡초를 뽑아내고 있는 중에 이상한 물체가 흙 속에서 뒤집어진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배가 볼록한 맹꽁이였다. 이 녀석은 잡초 뿌리를 이불 삼아 그 밑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한여름철이면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반짝반짝 윤기가 나던 피부는 겨울 추위에 메말랐고, 조그만 인기척에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던 다리도 순발력을 잃은 듯하다. 두 눈의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아 아직까지 눈을 뜨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녀석의 배를 손가락으로 살살 건드리니 기다란 두 다리를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켠다. 마치 한숨 잘 자고 일어났다는 듯이...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다리를 오므리더니 다시 숙면모드로 들어간다. 사람이나 동물 모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야지 다른 사람이 잠을 깨우면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맹꽁이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변온동물이다. 그들은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을 조절하여 생존해 나간다. 이들이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환경에의 적응능력이다. 이들은 또한 겨울철에는 동면(冬眠)을 통해 신진대사 활동을 줄임으로써 겨우내 단 한 끼의 식사 없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은 이 맹꽁이보다도 한참 떨어진다. 지금까지 지구 상에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들도 나름대로의 적응력과 생명력이 있기에 생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맨몸으로 겨울을 나는 맹꽁이의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나는 다시 부드러운 흙 이불을 덮어 주었다. 한숨 더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기를 기원하면서. 이 어리고 가냘픈 생명이 활동하기에는 아직까지 바깥 기온이 너무 차고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없다.
잡초제거 작업을 끝낸 후 집안으로 들어와 달력을 체크해 보니 경칩이 며칠 남지 않았다. 곧 개구리와 맹꽁이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따뜻한 봄이 되면 그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상대편을 유혹하여 자손을 번성시키겠지. 이는 수만 년 동안 그들의 조상들이 유지해 온 생존의 법칙이다.
이제 며칠 후면 텃밭의 맹꽁이도 이들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벌써부터 집 뒤편에서 맹꽁이 울음소리, 아니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녀석의 세레나데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내 마음속에는 화사한 봄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