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여사에게

by 여송

냉이 여사!


아침저녁으로 따뜻해진 공기가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소. 그동안 별고 없었소?


혹독한 추위와 뺨을 때리는 강풍 속에서도 여사는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모진 겨울을 견뎌내었소.


쑥이나 씀바귀들이 춥다고 자신들의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 달래와 미나리는 강추위를 피해 땅 밑에 숨어버릴 때도 여사는 핼쑥한 이파리를 펼친 채 온몸으로 추위에 맞서곤 했었소.


난초가 화분에 담겨 추운 겨울을 따뜻한 실내에서 보내고, 양귀비가 온실속에서 관능적인 붉은 빛깔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을 동안, 여사는 쓸쓸한 시골 길가나 황량한 들판에서 누구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홀로 추운 겨울을 버티어 내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소.


여사는 피렌체에서 만난 피자 여사만큼 화려하지도, LA의 비벌리 힐즈에서 소개받은 스테이크 여사처럼 풍만하지도 못하오. 발가벗은 채로 접시 위에 드러누운 베이징의 북경오리처럼 느끼한 것은 더더욱 아니오.


여사가 피우는 하얗고 자그마한 꽃은 장미꽃처럼 화려하지도, 튤립처럼 정열적이지도 않소. 게다가 그 꽃은 재스민이나 라일락처럼 향기가 나는 꽃도 아니오.


어렸을 때부터 여사를 보아왔고 그 이후로도 계속 만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여사에게 별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는 여사를 논밭의 잡초로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귀찮은 존재라고까지 생각해 왔소.


더구나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 맛을 동경하곤 했으며, 여사 따위는 무미건조한 존재라며 식재료로서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소.


몇 해 전 초봄, 집 앞의 텃밭에서 캔 냉잇국을 처음으로 맛본 순간, 냉이 여사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소. 입안에 감도는 여사의 향기는 그 어떤 음식에서도 맛볼 수 없는 감미롭고 향긋한 맛이었소. 그 맛은 혀끝이나 코 속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세속적인 맛이 아니라, 긴 세월과 모진 풍파를 견뎌 내야 나는 깊고 심오한 영혼의 맛이었소.


자신의 인격이나 지식을 과대 포장하고, 가진 것을 과시하려는 허황된 풍조가 만연한 이 불신의 세상에서, 여사는 자신의 향기마저 흙 속의 뿌리에 감추면서 세상에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겸손의 미덕을 지닌 사람이었소.


"세상에 가장 빛나면서 가장 약한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질그릇이고 하나는 여자의 얼굴이다"라고 한 어느 영국 소설가의 말도 여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 생각되오.


마음을 가꾸기보다는 얼굴 피부에 더 신경을 쓰고, 머릿속을 채우기보다는 머리카락 손질에 더 관심을 가지는 현 세태 속에서도 여사는 본연의 수수한 모습으로 조용히 내면의 교양을 쌓아오고 있었소.


인생의 황혼길에 서서 옛날 일을 추억하고 옛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소. 그러나 이제 와서 여사를 다시 보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옛날을 추억해서만은 아닌 것 같소. 그것은 여사야말로 험난한 인생길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이기에 그런 것 같소.


인간성과 윤리의식이 상실되고 허영과 기만이 창궐하는 이 혼돈의 위성 속에서, 여사의 고귀한 인격과 진실된 삶의 철학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소?


어느덧 내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내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오. 여사에 대해 애정이 깊어지는 건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또 다른 증상이라 생각되오. 이제 남은 인생 동안 여사 곁에서, 여사의 고매한 성품과 의젓한 자태를 배우려고 하오.


오늘도 여사의 향긋한 체취가 그리워 앞마당의 냉이를 캐어 냉잇국을 끓였소.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사람이 보다 원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듯,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딘 여사의 향기로운 인품을 존경하오.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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