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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Apr 23. 2018

세상에서 제일 비싼 상추

  주말을 맞아 찾은 고향마을에는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을 뒷동산의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와 개나리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저 멀리 산허리에는 배꽃이, 비록 메밀꽃은 아닐지라도,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빛나고 있다.


 

  마을을 두 동강 내면서 곧게  뻗어 있던 철로가 걷힌 자리에는 최근에 심은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고, 그 뒤로 우뚝 솟은 느티나무가 가녀린 연둣빛의 잎사귀를 막 피우고 있다. 이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수령이 3~4백 년은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젠 더 이상 자라지도, 늙지도 않은 채 한결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봄이 되어서 피는 꽃들은 개화 시기가 서로 다르다. 가장 먼저 피는 매화는 보통 2월 하순이나 3월 중순에 개화하고, 그 뒤를 이어 진달래, 벚꽃, 복사꽃, 배꽃, 철쭉 등의 순서로 핀다. 이들 꽃이 지고 나면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하며, 이 무렵은 대개 5월 초순에 해당된다. 그런데 올봄에는 온갖 종류의 꽃이, 심지어 나뭇잎까지도 동시에 피었다. 지난 3월의 이상고온과 지구온난화가 그 원인이지 싶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차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괜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요란한 디젤 기관차의 엔진 소리와 기차 바퀴가 레일 위를 구를 때 나던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은 이젠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들이 사라진 마을은 온통 적막과 고독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가끔씩 들려오는 까치의 울음소리가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린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 동네 안으로 들어섰다. 한 농가 옆의 텃밭에서는 두 여인이 봄철을 맞아 분주히 텃밭을 가꾸고 있다. 90의 나이를 목전에 둔 할머니와 50대의 딸이 때맞춰 내린 봄비에 고추와 오이 모종을 심고 있다. 할머니의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에는 검은색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고, 주름진 얼굴에는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처럼 이 할머니도 가난한 시골 농촌으로 시집와서 어려운 시집살이를 해 왔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나름대로의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살이라는 행로가 내리막은 아닐지라도 평지로 계속 이어져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가 보다. 어려운 농촌 살이도 할머니의 복에 겨웠는지 그녀의 남편이 집을 나가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할머니는 홀몸으로 4남매를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말년에는 다소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가 했더니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는 불행까지 당하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도 한쪽 발목이 90도 가까이 꺾인 채로 유아용 보행기에 의지하여 힘든 걸음걸이를 해야 한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그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후처도 그녀의 삶을 찾아 나섰다.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왔건만, 이 할머니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알렉에 대한 테스의 복수심도, 네흘루도프에게 버림받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카투샤의 절망감도 그녀의 얼굴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향집으로 향하던 승용차가 할머니의 텃밭을 지나칠 무렵 파란 색깔의 상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상추는 유달리 추웠던 지난 겨울 동안 조그만 비닐하우스 속에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다가 최근 내린 봄비로 싱싱하고 먹음직스럽게 자라났다. 상추를 보자 오늘 저녁 메뉴로 상추쌈이 활동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울러 이 할머니의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차를 급히 세우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지매, 상추가 참 잘 자랐네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아지매이다. 생전의 나의 어머니에게 “형님”하면서 항상 살갑게 대하던 이 할머니에 대해 내가 그때 부르던 그 호칭이다. 나라고 흐르는 세월을 어찌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오냐? 잘 왔다.”    


  “상추 한 움큼만 주세요. 오늘 저녁에 먹게.”  

  

  “그래? 얼마든지 뜯어 가거라.”    


  나는 빽빽이 자란 상추 포기를 비집고 상추 잎 여남은 장을 땄다. 상추가 어찌나 싱싱하던지 조금만 당기거나 굽혀도 잎이 찢어지고 줄기가 부러져 버린다.


  작업이 끝난 후 지갑 속에서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그려진 지폐 한 장을 끄집어내어 소위 ‘아지매“에게 건넸다.   

 

  “아지매, 여기 상추값요.”    


  아지매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흙 묻은 손으로 나의 손목을 툭 치면서 손사래를 친다.  

  

  “왜 이래, 상추 잎 몇 장을 가지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옆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딸에게 다가가 엄마 드리라고 하면서 그녀의 작업복 호주머니에 지폐를 구겨 넣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행동이 그녀의 순박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친정을 방문하여 일손을 돕고 있던 중이었다.   

  

  고향집에 들어와서 뜯어온 상추를 깨끗이 씻은 다음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뺐다. 이 상추 한 장이 5천 원 가까이 먹혔으니 세상에서 제일 비싼 상추임에 틀림없다. 이런 비싼 상추로는 밥이나 고기를 싸 먹으면 안 되고, 반대로 고기에 상추를 싸서 먹어야 이치에 맞을 것 같다. 그것도 1 다음에 + 부호가 다섯 개 정도 붙은 특등 한우고기로...


 

  오늘 구입한 상추가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먹혔다는 건 중요치 않다. 내가 지불한 대가에 비해 그로 인한 만족도나 효용(utility)이 크면 그 거래는 손해 본 것은 아니다.

     

  다음 날 아침, 집 뒤편 대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싱그러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현관문을 밀고 나서는데 문 앞에 커다란 비닐봉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지 속에는 굵고 때깔 좋은 양파가 가득 들어 있다. 어제 받은 상추 값이 부담스러워 이른 아침 아지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조용히 갖다 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제과회사의 초코파이 포장지에 커다랗게 ‘情‘이라고 쓰인 것을 본 적이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이 파이 하나를 건네는 광고 영상을 TV에서 본 적도 있다. 이들이 주고받는 것은 단순한 과자 한 봉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그 情인지도 모른다.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황량한 이 행성에서 세상은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인간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두 대립되는 이론 중에서 아직 전자를 믿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갑자기 파아란 창공 위로 한 대의 비행기가 나타나더니 내 머리 위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출동하여 실종된 생떽쥐베리의 비행기인 듯했다. 같이 타고 있던 ‘어린 왕자’가 깔깔 웃으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곳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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