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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May 31. 2018

칭찬과 격려의 긍정적 효과

  시골집에서 나의 새벽잠을 깨우는 것은 새소리이다. 봄이나 여름에는 집 앞의 정원수,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뒤편의 대나무 숲이 새들의 보금자리이다. 이들은 동이 틀 무렵이면 각기 다른 화음으로 한 편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그들의 공연은 긴 여음이 되어 나뭇가지 곳곳에 걸려 있다. 자명종이나 핸드폰 알람의 딱딱한 기계음 대신, 친환경적이고 자연적인 새소리에 저절로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새가 내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기상할 때에는 몸도 가뿐하다.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새도 그들의 컨디션에 따라 지저귀는 톤이 다른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면 새들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경쾌하게 노래한다. 은방울 소리처럼 가볍고 투명한 이 노랫소리는 파아란 창공으로 솟아올라 산산이 흩어진다. 반면, 우울하거나 의기소침할 때면 그들은 저음의,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우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 울음은 어둠 속에서 짙게 깔리는 연기처럼 조용히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말이나 행동이 감정의 재배를 받는 것은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마찬가지인 듯하다.


  오늘 아침에는 집 앞에 자리한 벚나무에 동네 새들이 다 모였다. 이들은 농염하게 익은 버찌 열매로 푸짐한 아침밥상을 차렸다. 덩치 큰 비둘기부터 작고 날렵한 참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조잘거리면서 이른 아침의 진수성찬을 즐긴다. 벚나무에 버찌가 열렸는지 새가 열렸는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버찌가 지고 나면 바로 옆에 위치한 보리수가 익기 시작하며, 그들의 타깃도 자연스럽게 옆 나무로 이동한다. 이러다 보니 정작 버찌나 보리수의 주인인 인간은 언제나 뒷전이다. 그는 텃밭작업 중 가끔 새들이 먹고 남은 열매를 한 움큼 따서 갈증이나 허기를 달랠 따름이다.  



  때로는 일주일 만에, 어떤 때는 2~3주 만에 방문한 고향집에서 새의 노래나 감상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때우고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첫 번째 작업은 텃밭의 잡초 제거. 시골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기가 다르듯이, 잡초도 시기마다 자라나는 종류가 다르다. 한 종류의 잡초를 제거하고 나면 다른 잡초들이 돋아난다. 이른 봄 파종기부터 늦가을 수확기까지,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기 내내 잡초와 씨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조막만 한 호미로 백 평이 넘는 텃밭에서 수시로 돋아나는 잡초를 일일이 뽑는 작업은 그야말로 페넬로페의 베짜기이다.  


  소나무 밑에 심은 더덕도 몇 주 전 싹을 틔우더니 그 사이 제법 자랐다. 덩굴식물의 속성에 따라 더덕 넝쿨이 주변에 서 있던 도라지 줄기를 칭칭 감고 올라갔다. 그냥 두면 도라지가 고사할 판이다. 연한 더덕 넝쿨이 다치지 않도록 뒤엉킨 줄기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면서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동안 많이 자라 주었구나, 도라지와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    


  농작물을 돌볼 때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점에서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독백이다. 비록 혼자만의 중얼거림으로 끝나지만 한편으로는 텃밭 작업에서 오는 지루함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이 보다 튼튼하게 성장하도록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도 단독주택 마당에 심겨 있는 나무나 꽃에게 말을 건다고 하였다. 그녀는 일 년 초 씨를 뿌릴 때도 흙을 정성스럽게 토닥거려주먼서 말을 시킨다.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싹트면 반갑다고, 꽃피면 어머머, 예쁘다고 소리 내어 인사한다. 꽃이 피지 않으면 왜 안 피냐고 독촉하면 곧 피고, 비 맞고 쓰러져 있을 때 흙을 돋워 일으켜 세우면서 바로 서 있으라고 야단치면 다시는 넘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칭찬이나 격려가 동물들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여러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애견훈련소에서 개를 훈련시키는 경우, 개가 주어진 과업을 무난히 수행하면 맛있는 간식을 상으로 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 개에게 제재나 벌칙을 가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성취했을 때 칭찬이나 격려로 보답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937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인간관계론」에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리더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칭찬이나 격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 보다 우호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불멸의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목소리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 같다’는 주위의 비난에 초창기부터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였다.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칭찬과 격려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듯하다. 다소 벗어난 주제인 클래식 음악이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은 동물에 비해 칭찬이나 격려의 효과가 가시적,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 효과를 논리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데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비록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칭찬과 격려가 식물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내가 심고 가꾸는 작물에 대해 생뚱맞게 칭찬과 격려를 계속하는 것도 이와 같은 신념 때문이다.


  제초작업을 간신히 끝내고 나니 땅콩 이식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식 시기를 놓쳐 웃자란 땅콩 모종을 노지에 옮겨 심어야 한다. 이 작업이 늦어진 데에는 사연이 있다. 종자용 땅콩을 밭에 직접 파종(직파)하면 절반 정도만 발아한다. 땅콩이 가지고 있는 단백질은 양질이다 보니 쉽게 상하게 되고, 변질된 땅콩은 생명력을 잃어 싹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한 땅콩도 이것을 좋아하는 새들이 쪼아 먹어 남아나는 것이 없을 정도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농가에서는 땅콩 종자를 연결 포트(계란 판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에서 발아시킨 다음 밭에 옮겨 심는다.


  한 달 전쯤, 연결 포트에 시골집 텃밭의 흙으로 땅콩 종자를 심었다. 이 포트를 도시의 사무실로 가져가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았다. 흙으로만 채워진 휑한 플라스틱 용기에 수시로 물을 주면서 나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어서 싹을 틔어 고향땅으로 이사 가야지...”


  며칠 뒤, 땅콩 싹이 하나씩 올라오더니 연결 포드를 꽉 채웠다. 물론 발아를 하지 못한 종자들도 부지기수다. 땅콩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 이식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될 무렵, 그때서야 딱딱한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아도 연약하고 병색이 짙은 어린 모종이었다.


맨 앞쪽 중앙의 작은 모종이 늦둥이


  땅콩은 발아가 어렵지만 일단 발아된 싹은 대부분 생존한다. 두 조각으로 구성된 땅콩 알맹이는 발아하는 과정에서 두 장의 떡잎으로 분리되는데,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 배아가 떡잎에 저장된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지막이 태어난 늦둥이 땅콩은 떡잎이 될 땅콩 조각이 썩어버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싹을 틔운 것이다. 정상적인 땅콩이 떡잎이라는 양 부모의 사랑과 모유를 듬뿍 받고 성장한 아이라면, 늦둥이 땅콩은 부모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난 흙수저인 셈이다.


  나는 다시 믿는다. 이 가련하고 나약한 생명체가 생명의 끊을 놓지 않은 것은 그동안 계속된 나의 칭찬과 격려 때문이었다고.



  늦둥이 땅콩 모종을 위해 이식 작업은 당분간 연기되었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난 어린싹의 강한 생명력에 찬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도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꿋꿋이 살아가라는 격려도 계속되었다. 아울러 이식 시기가 도래한 정상적인 땅콩 모종들에 대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열흘쯤 지나자 늦둥이 땅콩 모종도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줄기나 잎의 색깔도 녹색으로 바뀌었다. 이젠 고향으로 이사 가도 좋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동안 다른 땅콩들은 웃자라 키가 너무 커버렸고 줄기도 야위었다. 그러나 이사가 늦어지는 데 대해 불평하는 땅콩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늦둥이 막내 쪽을 바라보며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뙤약볕 속에서 땅콩 모종 이식 작업이 시작되었다. 연결 포트 아랫면을 손가락으로 아래에서 위로 눌러 주면 실타래처럼 엉킨 뿌리 부분이 쏙 올라온다. 웃자란 땅콩들을 먼저 옮겨 심고 마지막으로 늦둥이를 조심스럽게 연결 포트로부터 분리하였다. 이 가련한 생명체가 이곳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땅 속에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당부하면서 이식 작업은 끝났다.



  다른 땅콩보다 키가 월등히 작은 늦둥이도 땅콩 밭 한 모서리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이식 시기를 놓쳐 웃자란 땅콩들의 연약해진 허리가 춤추듯 봄바람에 흔들린다. 이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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