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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Jun 14. 2018

죽순(竹筍)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초여름의 오수(午睡)를 즐기면서 드러누워 있는 야산들은 어느새 녹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물주는 더 많은 녹색 물감을 짜내어 산 위의 수목들을 채색하고 있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우주를 운행하는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한다.

   산 아래로 펼쳐진 벼논에는 엊그제 옮겨 심은 모들이 연녹색 빛줄기를 발산하고 있다. 이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점점 짙푸른 빛깔로 변할 것이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마저 푸른색으로 채색되어 나의 몸과 마음을 신록으로 물들인다.


  이양하는 「신록예찬」에서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고 하였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잎이 돋아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염천(三伏炎天)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연한 녹색)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혹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나 역시 한여름의 농록(濃綠-진한 녹색)보다는 봄이나 초하(初夏)의 신록, 그중에서도 담록을 좋아한다. 신록은 어린애같이 밝고 순수하다. 신록의 계절에는 앞으로도 녹음이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반면, 농록의 시기에는 아름다운 계절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젊고 아름다운 신록이나 담록의 계절이 짧듯이 미인은 목숨이 짧은 것이다. 재사다병 미인박명(才士多病 美人薄命)이라고 했던가? 재주도 없고 미인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자신을 이 고사성어로 위로해 본다.


  이 화려한 신록의 계절이 되면 농촌에서는 어김없이 해야 할 작업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죽순 제거작업이다. 시골집 뒤편의 대나무 숲에는 해마다 죽순들이 돋아난다. 금년 봄에는 잦은 비와 따뜻한 날씨로 죽순이 다른 해보다 많이 돋아났다. 집 주변의 죽순들이 대나무로 자라나면서 집을 훼손하고 텃밭에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미리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제때 수행하지 못하여 다 자라 버린 대나무를 잘라내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살이가 그러하듯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도끼날에 이미 잘려나간 대나무의 뾰족한 밑동에 발을 다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안전화를 신은 후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리에 칭칭 감기는 덤불들을 걷어내고 정글을 헤치듯 앞으로 나아간다. 빽빽한 대나무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덤불 사이에 숨은 죽순을 찾는 일도 보통은 아니다. 이에 비해 죽순을 꺾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식물은 연약해서 발로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이들을 담은 묵직한 마대자루를 메고 정글로부터 간신히 탈출함으로써 작업은 완료되었다.   


 

  요즘에는 죽순을 '제거'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제거'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버리거나 사라지게 하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쓸모없는 죽순을 집 주위로부터 없애버린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죽순이 귀해서 함부로 꺾을 수 없던 예전에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던 단어이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발이나 광주리, 소쿠리, 부채 등 여러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되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대나도 비싼 에 팔려 대밭이 있는 집은 부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죽순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가끔 대나무 숲 주변의 논밭에 자라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죽순만 산삼처럼 ‘채취’하여 식재료로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플라스틱 등 새로운 소재가 나온 이후, 대나무는 수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마침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였다. 넘쳐나는 식재료들로 죽순에 대한 관심 또한 멀어져 갔다. 삼라만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고생하여 ‘제거’한 죽순을 버리기는 아까워 죽순으로 추억의 음식을 만들기로 하였다. 앞마당에 백솥을 걸고 죽순을 껍질째 넣고 물을 한 솥 가득히 부었다. 죽순 특유의 아린 맛을 줄이기 위해서는 죽순을 삶을 때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아야 한다. 삶은 죽순을 한나절 정도 찬물에 담가 놓으면 아린 맛은 대부분 제거된다.


 

  죽순은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따뜻한 성질의 부추와 같이 나물로 무쳐 먹으면 금상첨화이다. 봄이나 여름에 올라오는 싹들은 대개 약간의 독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종족 번식을 위한 자신의 방어기전(防禦機轉)이다. 부추는 죽순이 가진 이런 독성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죽순과 부추는 서로 궁합이 맞는 식재료이다.


  죽순은 수분함량이 높은 반면 칼로리가 100g당 13kcal일 정도로 저칼로리 식품이며,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또한 단백질과 섬유질의 함량이 곡류와 육류에 비해 높으며,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칼슘이나 폴리페놀 등은 수용성이기 때문에 죽순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수시로 음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죽순 삶은 물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죽순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순은 아무런 인공적인 도움이 없이 자연 속에서 저절로 자라난 순수한 자연식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과 효능으로 인해 이 식물은 비만과 운동부족 등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현대인들에게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는 버림받았던 죽순이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삶은 죽순과 데친 부추를 초고추장에 버무려 죽순 나물을 만들었다. 모처럼 느껴보는 죽순의 담백한 맛과 아삭한 식감은 추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옛맛 그대로였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혀가 이 무미건조한 음식에 대해 즉각적으로 실망의 반응을 보인다. 씹을수록 구수하고 산뜻한 맛을 보이는 이 새로운 메뉴에 대해 이번에는 미각을 담당하는 중추신경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어 온다.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하면서 이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남은 죽순을 간장에 절여 장아찌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가득 찬 죽순을 보니 마음도 넉넉하다. 올여름에는 수시로 죽순을 맛보면서 예전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맑은 물처럼 담박하고 변함없는 우정과 교양을 기초로 한 군자의 교제를 담수지교(淡水之交)라 한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 대신에 담백하고 순수한 맛을 가진 죽순이야말로 군자들의 교제와 다름 아니다. 채근담(菜根譚)에 의하면 "진한 술과 기름진 고기, 맵거나 단 것은 진정한 맛이 아니다. 진정한 맛은 다만 담백할 따름이다(膿肥辛甘 非眞味 眞味 只是淡)"라고 하며 음식의 참맛을 갈파하고 있다. 공자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어진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하였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본모습을 화려한 화장품, 심지어는 성형수술로 가리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순수함과 깨끗함의 표상(表象)인 죽순으로부터 군자로서 지켜 할 도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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