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장맛비로 주위의 산천초목들이 싱그럽게 자라났다. 봄에 싹을 틔운 식물들은 무덥고 습한 장마철에 부쩍 성장한다. 장마가 그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면 이들은 땅 속에 스며든 물과 햇빛,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열심히 영양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식물들은 이 영양분을 열매나 뿌리에 저장하여 다가올 겨울을 나고,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에게 식량으로 제공한다.
야생동물들의 생존 주기도 식물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은 봄에 새끼를 낳는다. 이들이 식물의 생존 주기를 따르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봄에 태어난 새끼는 어미의 보살핌 속에서 나날이 성장하여 여름철이면 대개 성체로 자라난다. 자연에 적응해 나가는 생명체들의 지혜가 놀랍다.
장마철이 되면 초가집 처마 밑에는 먹이를 물고 온 어미 제비와 먹이를 달라고 지저귀는 새끼 제비로 시끌벅적했다. 대여섯 마리의 새끼들은 각자 부리를 크게 벌려 자기 입에다가 먹이를 넣어 달라고 큰 소리로 지저귀며 보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열심히 산과 들을 누벼 배추벌레나 여치, 잠자리들을 물어 나르는 어미 제비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처마가 실종된, 두부모처럼 각이 진 양식 주택들이 농촌에도 등장하면서 이러한 정겨운 풍경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친 틈을 타 비 피해가 없는지 집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계단을 내려서는데 집 입구의 커다란 구상나무 아래에서 무언가가 퍼덕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새끼 참새였다. 집 주변의 둥지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이 가냘픈 생명체는 나를 보자마자 필사적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날개를 퍼덕여 겨우 날아오르자마자 이내 땅으로 고꾸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맘때면 새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어미 새의 모습을 닮아간다. 때를 맞춰 어미들은 새끼들에게 나는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다. 어미는 둥지 근방의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들이 나오라고 큰 소리로 다그친다. 심지어는 공포에 질려 안 나오려고 하는 제 자식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어미는 새끼들이 스스로 생존할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다. 가끔 산이나 들에서 제대로 날지 못하는 어린 새를 만나는 때가 있는데, 비행훈련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대개 어미가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다. 사람이나 천적이 새끼에게 접근하면 어미가 다가와 큰 소리로 소리치면서 위협한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능인 것이다. 새끼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무릅쓴 훈련을 통해 비행기술을 습득하고 날개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새끼 참새가 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끼가 놀라지 않기 위해 멀찍이 숨어서 한참 동안 관찰했지만 끝내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끼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녀석에게 다가간 다음, 도망가려는 새끼를 재빨리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노란 주둥이(黃口)는 이 조류(鳥類)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새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쥐눈을 닮은 쥐눈이콩을 다시 닮은 조그맣고 새까만 눈동자에는 공포와 경계심이 가득했다. 보드라운 털의 촉감이 손바닥에 와 닿았으나 몸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날개는 거의 다 자라 등 위에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꼬리도 기다랗게 엉덩이 뒤에 부채처럼 펼쳐져 있어, 비행 시 수평을 유지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데 무리가 없는 듯했다. 목 주위로는 하얀 띠가 생겨 참새로서의 외형은 거의 갖추고 있었다. 실처럼 약한 다리는 말 그대로 새다리처럼 야위고 가늘었다.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새끼의 몸을 관찰하던 중, 이 참새의 다리가 이상한 것 같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 녀석의 한쪽 다리가 옆으로 꺾어져 있는 게 아닌가! 이 참새 새끼는 인간으로 치면 소아마비라는 중병에 걸려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장애자로 태어난 것이다. 다리가 후천적으로 부러졌다면 부목을 대고 약이라도 발라 주어, 비록 제비는 아니지만, 박씨라도 물어다 주기를 기대하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새들이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두 다리로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 날개의 힘만으로 날아오르기는 무리라는 뜻이다. 땅에 내려앉을 때에도 다리를 자동차의 완충장치(shock absorber)처럼 사용하여 지면에 떨어질 때의 충격을 줄인다. 먹이를 구하고 이동을 위해 수시로 이륙과 착륙을 반복해야 하는 새들에게 튼튼한 다리는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연약하고 가련한 참새는 불행히도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새끼의 생존을 책임져야 할 어미도 어쩔 수 없이 제 자식을 포기한 것 같았다. 새끼의 천적이 되는 뱀이나 솔개 등은 집 주위에 없기 때문에 잡아먹힐 염려는 없으나, 그냥 두면 제대로 먹질 못해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우선 뭐든지 먹여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쌀을 잘게 빻은 싸라기와 생수를 각각 종이컵에 담았다. 새끼의 작은 키를 고려해 종이컵은 가위로 반쯤 잘라내었다. 어린 새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야에다 볏짚을 깔고 포근한 둥지를 만들었다. 낮에는 참새가 안정을 취하도록 집 뒤의 나무 아래 후미진 곳에 대야를 옮겨 놓았다. 비록 한쪽 다리는 불편하지만, 새끼 참새는 마음만 먹으면 둥지 정도는 날아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지쳤는지 저녁때까지 조용히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길냥이들의 습격을 받을까 봐 둥지를 1층 창고 속으로 옮겼다.
다음 날 아침에도 새끼는 다행히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었다. 눈동자에 나타나는 경계심과 공포감은 그대로였다. 인기척이 나면 머리를 지푸라기에 파묻어 숨기 바쁘다. 해칠 의사가 전혀 없고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종이컵을 들여다보니 모이나 물을 먹은 흔적은 없는 듯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둥지를 다시 나무 아래로 옮겨놓은 후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섰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둥지 쪽으로 다가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다가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린 새끼는 죽어있었다. 그동안에 모이나 물을 먹은 흔적은 역시 어디에도 없었다. 불쌍한 이 생명체는 먹이를 거부하고 굶어 죽은 것이다.
어렸을 적, 산에서 어미 잃은 산토끼 새끼 한 마리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다. 인형처럼 앙증맞고 귀여운 것이 사람만 보면 어두운 구석을 향해 도망 다니기에 빠빴다.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 종이상자에 싱싱한 고구마 줄기를 잔뜩 넣고 신문지로 덮어 어두컴컴하게 한 다음, 조용한 골방에 놓아두었으나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그들은 순수하고 애정 어린 내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한 채, 끝내 뻣뻣한 시체로 변하는 무심한 녀석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야생동물을 집에 데려다 키우면 대부분 얼마 되지 않아 죽는다. 특히 어미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새끼의 경우는 그렇다. 이들은 인간을 적으로 생각하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떨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것이다. 이는 이들과 인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장벽은 또한 동물이 만든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자연 속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향인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Walden)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더불어 소박하게 생활했다. 그가 쓴 「월든」은 이러한 숲 속 생활의 산물이다. 이 책에는 호수 주변의 동식물들에 대한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한 예로, 새끼 들꿩 한 마리를 손바닥에 위에 올려놓았는데도 두려워하거나 떠는 일 없이 가만히 서 있었으며, 이 새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들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참새는 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소로우의 어깨에 내려앉기도 했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더 영광스럽게 느껴졌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야생동물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공포감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비가 그렇다. 제비는 다른 야생동물에 비해 인간친화적이다. 이들은 주로 마루 위 처마 밑에 둥지를 트는데, 이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다. 옛날의 시골집은 처마가 높지 않아 팔을 뻗으면 둥지에 닿을 수도 있었다. 제비들이 이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전래동화 「흥부전」 때문일 게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제비는 보물이 가득 찬 박이 열리는 박씨를 물어다 주는 영험한 새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제비에 대해서는 해코지를 하지 않으며, 아픈 다리까지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우정 어린 태도에 대해 제비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행동으로 보답하는 것이리라.
결국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대하는 태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야생동물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장벽들을 걷어내야 한다. 인간을 바라보는 참새의 눈에 공포감 대신 친근감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살 수 없는 황폐한 환경에서는 인간 역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싸늘하게 식은 새끼 참새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으면서 고라니와 친구가 되어 동산을 뛰놀고, 종달새와 함께 모여 노래 부를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본다. 비록 우리의 세대에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후손들은 이 동화 속 그림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