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마루의 여고생

by 여송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고개가 많다. 대관령, 진부령, 추풍령 등과 같은 높고 험한 고개로부터 무악재, 미아리고개 등과 같이 규모가 작은 고개들까지 여러 종류의 고개가 온갖 지역에 산재해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마을과 마을 혹은 지역과 지역을 이어 주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를 통하여 각 지역에서 생산된 물자들이 교환되기도 하고, 인적 왕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고개를 통해 이웃마을 갑순이의 혼인 소식을 전해 듣고, 우리 동네 김영감의 부음(訃音) 소식을 전달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그리운 님이 철사 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던 곳도,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눈물로 넘어야 했던 보릿고개도 다 이 고갯길이었다. 따라서 고갯길은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발자국이요, 조상들의 삶의 흔적들로 채워진 인생길이었던 것이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이웃마을로 넘어가는 길에도 야트막한 고갯길이 나 있었다. 태곳적부터 내려오던 이 길은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아담하면서도 호젓한 길이었다. 이웃마을 사람들이 읍내 시장이나 읍사무소에 볼일 보러 갈 때에는 꼭 거쳐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통과하는 전형적인 고갯길 양쪽에는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야산이 이어져 있고, 거기에는 소나무와 아카시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고갯길의 가장 높은 고갯마루에는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 하나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 바위는 고갯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면서 그곳을 넘나들던 민초들의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평지로부터 능선에 이르는 고갯길의 길바닥에는 보드라운 황토가 깔려 있어, 그 길을 걸을 때는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푹신푹신한 촉감이 발바닥에 전달되곤 했다.


그 고갯마루의 약간 아래쪽으로 우리의 조그마한 밭뙈기 하나가 있었다. 이 밭에서는 수박과 참외가 잘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이 수박밭을 지키라는 임무가 나에게 주어졌다.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책 몇 권을 챙겨 원두막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방학 동안의 나의 일과가 되었다. 원두막에서 하는 일이라곤 책 보다가 졸리면 잠자고, 깨어나서 또 책 보다가 따분하면 밭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뿐이었다.


오후 3시쯤 되어 졸릴 무렵이면 어김없이 저 아래 논길로부터 한 여학생이 걸어 올라온다. 그녀는 읍내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여름방학 동안에 이루어지는 학교의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리라. 이 여학생은 고갯길 입구에 다다르자 가끔씩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한여름의 뙤약볕은 사정없이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간간이 불어오는 남풍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기도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고갯길을 올라오는 그녀의 볼은 마치 뤼브롱 산의 목동을 찾아가는 스테파네트 아가씨처럼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힘겹게 고갯마루에 다다른 여학생은 조용히 소나무 그늘진 바위에 걸터앉더니 책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녀의 짧게 자른 단발머리는 작두에 잘린 짚단처럼 가지런히 어깨 위에 정렬되어 있었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교복의 칼라는 산등성이에 만개한 아카시아 꽃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녀의 밝고 해맑은 얼굴은 청순하고 앳된 줄리엣을 닮았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앉아 있는 모습은 마음 착한 콩쥐를 연상하게 했다.


땀을 식히는 도중, 가끔씩 이 여학생은 고개를 들어 산 아래를 나려다보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여학생이 올라왔던 그 길을 따라 한 남학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를 발견한 여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고갯마루에 도착한 남학생은 조용히 여학생 옆에 앉았다. 그는 여학생이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훔치기 시작했다. 둘은 때로는 나직이, 때로는 환한 미소를 띠우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 시간 정도 지나자, 남학생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2 미터 간격을 두고, 여학생은 남학생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 한번 잡아보지 않고, 팔짱 한번 끼지 않은 채, 반대편 고갯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다시 그 고갯길을 오른다. 검은 운동화 신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던 그 길을 이젠 검은 타이어가 장착된, 200마력의 힘을 발산하는 쇠 수레에 편안하게 앉아서. 소나무 숲 사이로 고즈넉이 뻗어 있던 오솔길은 온데간데없고 그 길을 따라 널따란 신작로가 생겼다. 푹신푹신했던 황톳길은 시커멓고 딱딱한 콘크리트 길로 변모했다. 숲 속을 가득 메웠던 아카시아 향기와 솔송 내음은 사라진 지 오래된 듯했고, 대신 역겨운 아스팔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인이 바뀐 수박밭에는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고갯마루 정상에 차를 세웠다. 황소 뿔도 물러 빠진다는 삼복더위에 용광로처럼 달구어진 노면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열기가 얼굴을 확 덮친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고갯길 아래로 어느새 터널이 뚫렸고, 최신형 고속열차가 굉음을 내면서 빨려 들어간다. 청춘남녀의 밀애(密愛)의 반석(盤石)으로 사용되었던 바위는 쪼개지고 파인 후 어느 가족 묘지의 표지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길가에는 달맞이꽃이, 님을 기다리다 쓸쓸히 미소 짓는 여인처럼 애처롭게 피어 있다.



이곳에서 원두막을 지키던 까까머리 학생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살 깊게 파인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되어 그 자리에 다시 섰다. 그동안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할 수 있는 세월이 지났으니 이곳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한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젊은이만큼 젊어지고 순수하고 뜨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하며,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더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주름진다는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시구(詩句)를 또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인생은 수많은 고갯길을 오르내리면서 나아가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그 길은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로이기도 하다. 모든 고갯길이 그러하듯, 인생길도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세상에는 오르막만 있는 인생이나, 내리막만 있는 인생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르막길에서는 내리막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하고, 내리막길에서는 다가올 오르막에 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 고갯길을 오르내리던 그 여고생도 예전의 순수하고 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인생의 고갯길을 슬기롭게 넘나들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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