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자주 있다. TV가 보급되기도 전인 1949년에 발표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년'에 의하면, 주인공 윈스턴은 쌍방향으로 음향과 영상이 전달되는 '텔레스크린'(Telescreen)이라는 장비로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불과 50여 년 만에, 우리는 CCTV라는 현대판 텔레스크린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함으로써 오웰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말았다.
9월 하순, 제24호 태풍 짜미가 괌 부근에서 발생하여 북서쪽으로 이동할 때만 해도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비슷한 위치에서 발생한 25호 태풍 콩레이가 오히려 우려되었던 것은 일종의 영감(靈感)이라고나 할까? (우리에겐) 다행히 짜미는 타이완 동쪽 해상에서 진로를 급격히 동쪽으로 틀어서 일본으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콩레이 역시 비슷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더니, 짜미만큼 동쪽으로 치우치지 못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다. 콩레이의 진로가 부산 근방을 통과할 것 같다는 후속 예보는 결국 직감적인 우려를 달갑잖은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발전된 기상예보시스템으로 인해 2~3일 전에 예측된 태풍 경로는 대부분 큰 오차가 없다. 당장 시골 텃밭에서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농작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태풍이 동반하고 있는 폭우로 인한 1층 창고의 비 피해도 염려된다. 언덕 아래 저지대에 위치한 시골집은 그리 많지 않은 비에도 빗물이 넘쳐들거나 스며들어 자주 피해를 입곤 했다. 도회지의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걱정거리이다.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걱정만 하기보다는 태풍 대비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직장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서둘러 시골집으로 향했다. 태풍 전면에 발생한 구름들로 하늘은 잿빛이나 다행히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기상청에 의하면 콩레이는 이틀 후 남해안을 스치고 지나갈 것으로 예보되었다. 태풍이 아직 먼 곳에 있어서인지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텃밭의 콩은 소위 메주콩이라는 만생종이라 수확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들깨는 노랗게 익어가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다. 이 녀석들을 지금 당장 베어야 하나, 아니면 완전히 익힌 다음 수확해야 하나? 인생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의사결정의 연속인 것이다. 비록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한 햄릿의 독백만큼 심각하진 않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의 의사결정 기준은 이론적으로는 명확하다. 여러 가지 대안 중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완전히 익지 않은 들깨를 수확하면 수확량이 줄어들고 맛도 떨어진다. 반대로 충분히 익은 들깨를 수확하려면 곧 다가올 태풍의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두 방안을 놓고 고민하다가 상대적으로 더 익은 들깨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일단 의사결정이 내려지자, 그 후속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 익어 잎과 열매가 노란 들깨만을 골라 줄기의 아랫부분을 전정가위로 자른 다음, 2층 베란다에 가지런히 세웠다. 이곳은 지붕이 앞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아직 덜 익은 들깨를 베면 어떡하느냐고 충고를 한다. 시골집에 상주하면서 수시로 농작물을 돌볼 수 있는 그들과 주말에 가끔 들러 이들을 관리하여야 하는 아마추어 농부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들깨의 부분적인 수확이 끝나자마자 집 주위의 배수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상당량의 작업은 저번에 이미 해 놓았기에 이번에는 간단히 끝났다. 곧이어 1층 창고의 출입문을 천막으로 덮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경우, 빗방울은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필요치 않다. 태풍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기에 비스듬히 쏟아지는 빗방울이 창고의 새시 문짝을 세차게 때리면서 빗물이 문틈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이러한 사건(?)으로 창고 속의 곡식과 농기계들이 빗물에 젖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급히 이곳을 방문한 주된 이유가 바로 이 작업 때문인 것이다.
태풍 대비를 위한 중요한 작업이 마무리되자 곧바로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 텃밭에서 역시 태풍 대비를 하던 할머니가 나의 저녁 땟거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상추 좀 가져가서 먹으란다. 못 이기는 척하면서 상추 한 움큼을 뜯었다. 보드라운 가을 상추가 주 메뉴인 상추쌈 정식이 저녁 메뉴로 즉각적으로 결정되었다. 저녁식사 후 후식으로 먹기 위해 할머니의 감나무에서 탐스럽게 익은 감도 몇 개 땄다.
태풍이 남해안을 지나가기로 예보된 토요일, 새벽부터 빗줄기가 강해지고 바람도 점차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지구 상의 대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earth null school’에 의하면 현재 태풍의 위치는 제주도 부근까지 올라와 있다. 이 사이트의 동영상은 남해안 지역의 풍향은 대체로 북동풍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실제로 바람은 남향집 뒤쪽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이었다.
오전 9시가 되자 비바람이 더욱 강해져서 창문을 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찬 바람에 집 뒤의 강인한 대나무들조차 무척추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집 건너편, 마을의 수호신으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바람의 방향이 북동풍에서 서풍으로 바뀌었다. 태풍의 중심이 이 지역을 지나갔다는 신호인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분 후, 빗줄기가 약해지고 바람도 점차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곳이 태풍의 영향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비가 그치고 서쪽 하늘부터 점차 개이기 시작했다. 즉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 피해상황을 점검했다. 1층 창고 출입문의 비가림막은 그 난리 속에서도 무난했고, 수확을 포기하고 남겨 둔 들깨들도 꿋꿋이 잘 버텨 주었다.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들깨 포기마다 설치해 둔 지지대가 이번 태풍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유비(有備) 면 무환(無患)인 셈이다.
집 주변의 상황을 살피러 대문을 나섰다.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강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염려스러워서 모인 것이다. 자연히 내 발길도 그곳으로 향했다.
하루 만에 200mm가 넘게 쏟아진 집중호우를 이 강은 홀로 오롯이 받아내고 있었다. 강변에 외롭게 서 있는 외딴집은 가까스로 침수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강바닥이 주위의 지면보다 높은, 이른바 천정천(天井川)인 이 강의 제방이 붕괴되면 주위가 온통 쑥대밭이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듯 도도히 흐르는 강물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난관이 따른다. 파종 후의 병충해, 한여름의 가뭄과 폭염, 수시로 다가오는 태풍 등의 재난을 극복해야만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으로 태어나 일생을 마칠 때까지의 인생 여정에 어찌 꽃길만 있으랴? 수많은 가시밭길과 고갯길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길이 험난하다고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삶에 대한 만족과 보람은 이러한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커지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맡기려는 사람에게는 그의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고, 배를 주리게 한다고 했다. 숱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온 위인들의 빛나는 업적이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고 이루어 낸 인간승리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채근담(菜根譚)에 의하면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하는 한 벌의 화로와 망치이니, 능히 그 단련을 받으면 몸과 마음이 함께 이익이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 몸과 마음이 모두 손해를 본다(橫逆困窮 是鍛鍊豪傑的 一副鑪錘 能受其鍛鍊 則心身交益 不受鍛鍊 心身交損)'고 했다. 인간이 역경에 처하고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생기고 굳은 의지와 강한 인내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푸르다. 활짝 핀 코스모스 꽃 위로 가을의 전령인 청령(蜻蛉)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유래를 찾기 힘든 폭염과 수확기에 찾은 태풍 등 어려운 고비들을 무사히 넘긴 올 가을의 결실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알차고 풍요로워 보인다.